현금의 종말, 괜찮을까… 다시 ‘현금 쓸 권리’를 말한다[딥다이브]
현금, 얼마나 자주 이용하나요. 현금 꺼냈는데 ‘카드 결제만 됩니다’란 얘기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이제 현금을 환영하는 곳보다 현금을 거부하는 곳이 더 많아진 듯합니다. 스타벅스가 ‘현금 없는 매장’을 도입하고(2018년) 서울시가 ‘현금 없는 버스’ 운행을 시작한 지(2021년)도 이미 몇 년 지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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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뻔한 호주 현금 운송회사
은행의 현금지급기(ATM)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2018년과 비교하면 1만4000개 넘게 사라졌다는데요. ATM 이용이 급감하면서 수수료 수익이 너무 쪼그라들었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선 운영 비용도 건지기 어려운 애물단지가 된 거죠.
운송회사가 망해서 지폐가 인쇄된 공장에서 은행과 ATM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반강제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판이었는데요. 호주 정부와 중앙은행, 민간은행, 대형 소매점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수십차례 회의 끝에 주요 은행과 대형마트 등 8개 고객사가 아마가드에 5000억 호주달러(약 446억원)를 긴급 투입하기로 지난 6월 결정했죠.
현금과 디지털, 무엇이 더 위험할까
현금은 인프라 유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고액 현금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 점이 스웨덴이 일찌감치 무현금 국가로 나아간 이유 중 하나인데요.
2000년대 중반 스웨덴에선 은행·상점에 대한 강도 사건이 급증했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보고된 강도 건수가 9398건에 달했다고 하죠. 이 때문에 ‘현금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강도에 시달리는 은행, 버스 노조는 현금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벌였죠.
하지만 범죄가 강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사기 같은 디지털 범죄 사건은 2년 만에 두배로 증가했습니다(2021년 하반기 4억5900만 크로네→2023년 하반기 11억 크로네). 앞서 말씀드린 모바일 결제 앱 스위시를 쓰려면 휴대전화에 뱅크ID라는 디지털아이디가 깔려있어야 하는데요. 바로 이 뱅크ID를 탈취해 계좌에서 돈을 빼내는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겁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지폐를 버리기 위한 스웨덴의 움직임이 범죄자들의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는데요. 스웨덴 금융시장부의 니클라스 와이크만 장관은 은행의 보안 강화를 촉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디지털화를 겪어왔고, 은행은 그 발전 덕분에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제 현실이 이를 따라잡았고, 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금 소멸은 막자는 움직임
현금 없는 사회는 편리합니다. 지갑을 꺼내고, 지폐와 동전을 세고, 거스름돈을 챙기는 그 복잡한 과정을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줄여주니까요. 가게도 잔돈 준비 같은 번거로움이 줄어들고요. 일단 디지털 결제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렵습니다. 예전처럼 ‘현금이 왕’인 시대는 끝났고, 오히려 현금이 역차별받기 일쑤죠.
이전에도 노르웨이엔 ‘항상 현금으로 결제할 권리가 있다’는 법조항이 있긴 했는데요. 그런데 이 ‘항상’이라는 게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오히려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랄까요(한국은행법 48조에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 법률은 사문화됐고, 노르웨이 식당·상점·미용실 곳곳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고 써 붙여 놨는데요. 그래서 이번 개정안에선 현금을 받아야 하는 곳과 아닌 곳을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처벌규정도 추가했고요.
아일랜드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법안도 의미 있습니다.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안인데요. 아일랜드 3대 상업은행의 ATM 수를 얼마로 유지할지를 재무부 장관이 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은행이 함부로 ATM을 폐쇄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상당히 과감한 조치입니다.
한국도 북유럽만큼은 아니지만 현금 이용률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상황이죠. 한국에서도 현금 쓸 권리를 이야기할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현금 인프라는 공공재라는 논리, 여러분은 동의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할까요. By.딥다이브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2015년 팀 쿡 애플 CEO가 애플페이를 소개하며 했던 말이죠. 그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현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현금 사용량이 줄면서 현금 운송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긴급 구제를 받았지만, 현금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금이 없으면 더 안전할까요? 가장 빠르게 무현금 국가로 나아가는 스웨덴에선 강도사건이 최근 몇년새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온라인 금융사기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현금이 완전히 멸종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노르웨이는 ‘현금 사용 권리’를 법제화했고, 아일랜드는 ATM 수를 정부가 정하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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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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