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의 종말, 괜찮을까… 다시 ‘현금 쓸 권리’를 말한다[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8.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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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얼마나 자주 이용하나요. 현금 꺼냈는데 ‘카드 결제만 됩니다’란 얘기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이제 현금을 환영하는 곳보다 현금을 거부하는 곳이 더 많아진 듯합니다. 스타벅스가 ‘현금 없는 매장’을 도입하고(2018년) 서울시가 ‘현금 없는 버스’ 운행을 시작한 지(2021년)도 이미 몇 년 지났으니까요.

그런데 현금 없는 사회, 편리하긴 한데 정말 더 안전할까요. 우리보다 앞서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갔던 나라들은 왜 다시 ‘현금 사용 권리’을 이야기할까요. 오늘은 현금 없는 사회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지폐와 동전이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사라질 것인가.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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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뻔한 호주 현금 운송회사

은행의 현금지급기(ATM)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2018년과 비교하면 1만4000개 넘게 사라졌다는데요. ATM 이용이 급감하면서 수수료 수익이 너무 쪼그라들었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선 운영 비용도 건지기 어려운 애물단지가 된 거죠.

현금 이용이 줄면 타격을 입는 건 ATM 수수료만이 아닙니다. 은행 지점과 ATM으로 현금을 옮겨주는 운송회사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나라보다도 현금 결제 비율이 낮은(오프라인 결제 기준 한국 10%, 호주 7%) 호주에선 현금 운송회사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사실상 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아마가드(Armaguard)가 파산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죠.
현금운송은 현금 사용량이 줄면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고 있는 업종이다. 사진은 호주 아마가드의 현금 수송차량 모습. 아마가드 홈페이지
현금을 덜 쓴다는 건 아마가드 운송 트럭에 실리는 지폐와 동전량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현금 운송은 차량에 무장한 경비원이 탑승해야 하는 데다, 호주 국토가 워낙 광활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죠. 적자 수렁에 빠진 아마가드는 지난해 말 ‘현금 운송 사업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대로 가면 곧 문 닫게 될 거란 경고 내지 협박이었죠.

운송회사가 망해서 지폐가 인쇄된 공장에서 은행과 ATM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반강제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판이었는데요. 호주 정부와 중앙은행, 민간은행, 대형 소매점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수십차례 회의 끝에 주요 은행과 대형마트 등 8개 고객사가 아마가드에 5000억 호주달러(약 446억원)를 긴급 투입하기로 지난 6월 결정했죠.

이 돈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간은 12개월이라고 합니다. 1년 안에 현금운송 사업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위기가 반복될 수도 있는 건데요. 호주 컨설팅 기업 아말감 스트레티직의 앤드류 에델은 이 문제가 공공정책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 네트워크 부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문제는 누가 지급하고, 그 금액을 어떻게 계산합니까?” 호주 중앙은행에 따르면 현금을 쓰지 못하면 큰 불편에 처할 인구는 전체의 약 4%, 10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아태지역 국가별 오프라인 결제수단 비중을 보여주는 표. 한국은 현금 결제 비율이 10%로 아태지역 국가 중엔 뉴질랜드·호주·중국·홍콩 다음으로 낮다. 신용카드 결제 비율은 58%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출처는 영국 결제회사 월드페이의 ‘글로벌 페이먼트 리포트 2024’

현금과 디지털, 무엇이 더 위험할까

현금은 인프라 유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고액 현금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 점이 스웨덴이 일찌감치 무현금 국가로 나아간 이유 중 하나인데요.

2000년대 중반 스웨덴에선 은행·상점에 대한 강도 사건이 급증했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보고된 강도 건수가 9398건에 달했다고 하죠. 이 때문에 ‘현금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강도에 시달리는 은행, 버스 노조는 현금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벌였죠.

특히 2009년 9월 일어난 헬리콥터 강도사건은 그 정점이었습니다. 헬리콥터를 탄 도둑들이 스톡홀름 보안업체 지붕에 착륙했고요. 30분 만에 3900만 크로나(약 50억원)를 훔쳐, 헬리콥터를 타고 달아났죠. 이후 범인들은 잡혔지만, 도난당한 현금 대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의 헬리콥터 강도사건은 그 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소설로도 나왔다.
위험한 현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2012년 12월. 스웨덴 지급결제 시장의 혁명을 가져온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는데요. 바로 6개 은행이 공동으로 출시한 스위시(Swish)입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수수료 없이 돈을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지불 서비스이죠. 오프라인 상점에선 QR코드 스캔을 통해 스위시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스위시 이용자는 800만명(스웨덴 인구는 1045만), 하루 평균 2회 이상 쓸 정도로 인기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은 스웨덴 결제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켰습니다. 스웨덴에서 버스·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이제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많은 상점, 박물관, 레스토랑도 카드나 모바일 결제만 허용하죠. 심지어 대부분 은행 지점도 현금 취급을 중단했습니다. 현금을 싸 들고 은행 창구를 찾아가도 계좌에 입금할 수 없단 뜻이죠. 어느 나라가 무현금 국가에 가장 가깝냐고 묻는다면 이제 누구나 스웨덴을 가리킬 겁니다. 참고로 스웨덴은 성인 인구 10만명당 ATM 수가 28개로 유럽에서 가장 적습니다(2020년 기준. 한국은 259개로 세계 2위).
스위시는 스웨덴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모바일 지불 서비스이다. 송금뿐 아니라 오프라인 결제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된다. 스위시 홈페이지
현금에서 멀어진 스웨덴은 정말 더 안전해졌을까요? 일단 강도사건 신고건수는 2019년 이후 크게 줄어드는 추세입니다(2023년 6402건). 가게나 은행의 현금 취급이 확 줄어든 게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 나오죠.

하지만 범죄가 강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사기 같은 디지털 범죄 사건은 2년 만에 두배로 증가했습니다(2021년 하반기 4억5900만 크로네→2023년 하반기 11억 크로네). 앞서 말씀드린 모바일 결제 앱 스위시를 쓰려면 휴대전화에 뱅크ID라는 디지털아이디가 깔려있어야 하는데요. 바로 이 뱅크ID를 탈취해 계좌에서 돈을 빼내는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겁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지폐를 버리기 위한 스웨덴의 움직임이 범죄자들의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는데요. 스웨덴 금융시장부의 니클라스 와이크만 장관은 은행의 보안 강화를 촉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디지털화를 겪어왔고, 은행은 그 발전 덕분에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제 현실이 이를 따라잡았고, 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금 소멸은 막자는 움직임

현금 없는 사회는 편리합니다. 지갑을 꺼내고, 지폐와 동전을 세고, 거스름돈을 챙기는 그 복잡한 과정을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줄여주니까요. 가게도 잔돈 준비 같은 번거로움이 줄어들고요. 일단 디지털 결제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렵습니다. 예전처럼 ‘현금이 왕’인 시대는 끝났고, 오히려 현금이 역차별받기 일쑤죠.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닐까요. 현금 사용이 줄어서→ATM 같은 인프라가 사라지고→돈 뽑기 어려우니→현금 사용은 더 줄어드는 상황인데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보니 현금 유통 인프라가 유지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만약 이대로 인프라가 무너지고 현금이 사라진다면, 은행계좌가 없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툰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극소수라고 해서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요.
ATM 기기의 급감은 현금 없는 사회의 결과이자 원인이 된다. 게티이미지
그래서 유럽에선 현금 지키기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현금 이용을 다시 늘리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멸종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죠. 현금 결제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3%)로 꼽히는 노르웨이가 그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는 최근 금융계약법을 개정해 소비자의 현금 지불 권리를 대폭 강화했는데요. 자동판매기나 무인 가게가 아닌 모든 판매점은 현금을 받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만들었죠.

이전에도 노르웨이엔 ‘항상 현금으로 결제할 권리가 있다’는 법조항이 있긴 했는데요. 그런데 이 ‘항상’이라는 게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오히려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랄까요(한국은행법 48조에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 법률은 사문화됐고, 노르웨이 식당·상점·미용실 곳곳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고 써 붙여 놨는데요. 그래서 이번 개정안에선 현금을 받아야 하는 곳과 아닌 곳을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처벌규정도 추가했고요.

아일랜드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법안도 의미 있습니다.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안인데요. 아일랜드 3대 상업은행의 ATM 수를 얼마로 유지할지를 재무부 장관이 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은행이 함부로 ATM을 폐쇄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상당히 과감한 조치입니다.

한국도 북유럽만큼은 아니지만 현금 이용률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상황이죠. 한국에서도 현금 쓸 권리를 이야기할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현금 인프라는 공공재라는 논리, 여러분은 동의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할까요. By.딥다이브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2015년 팀 쿡 애플 CEO가 애플페이를 소개하며 했던 말이죠. 그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현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현금 사용량이 줄면서 현금 운송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긴급 구제를 받았지만, 현금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금이 없으면 더 안전할까요? 가장 빠르게 무현금 국가로 나아가는 스웨덴에선 강도사건이 최근 몇년새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온라인 금융사기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현금이 완전히 멸종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노르웨이는 ‘현금 사용 권리’를 법제화했고, 아일랜드는 ATM 수를 정부가 정하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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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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