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통합, 지역언론이 외면한 완주의 목소리는
[해설] 전주 본사 둔 지역일간지·지역방송, 통합 추진 전주시·전북도 중심 보도
반대 여론 강한 완주 목소리 전하는 언론 부족…통합인지 흡수인지, 통합이 상생인지 따져봐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지난 22일 “전주시와 완주군이 통합되면 특례시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주·완주 통합(흡수)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6일 김 지사가 완주군민과 대화를 하겠다며 완주군청을 방문했지만 통합에 반대하는 주민들 저항에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전주에 본사를 둔 전북 지역일간지들을 일제히 이를 비판했다. 지역일간지들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두지만 통합 당위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통합의 핵심 논리는 '지역소멸에 대응' 차원이다. 전북일보는 지난 24일 사설에서 “국가 지방 전략에 따라 메가시티로 가느냐, 올해 출범한 전북특자도의 특례를 최대한 활용하느냐 기로에 서있다”며 “지방소멸 위기와 함께 시군의 소지역주의로 몸살을 앓는 전북 상황도 결코 여의치 않아 이마저도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다. 여기서 지적한 '소지역주의' 때문에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막아선 안 된다”(30일 전북도민일보 사설 제목)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논의는 우범기 전주시장이 지난 1월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시작됐다.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로 당선된 우 시장은 전주·완주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같은해 11월부터 최근까지 26개 두 지자체의 상생협력사업을 추진해왔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자체 시 승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 시점에서 통합 반대 입장이란 말이기도 하지만 통합을 하더라도 '완주군'이 '완주시'로 승격해야 형식상이나마 대등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통합 추진은 왜 전주시에서 나왔을까? 배경을 살펴보면 전주시 인구감소세와 무관하지 않다. 전주시 인구는 지난달 기준 63만9000여명으로 지난 2021년 65만7000여명, 2022년 65만1500여명, 2023년 64만3000명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반면 완주군 인구는 증가세다. 2021년 9만1000여명, 2022년 9만2000여명, 2023년 9만7000여명, 올해 6월 기준 9만9000여명이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 인구가 증가한 완주군은 전북도내 기초지자체 중 인구 증가 1위를 기록했다.
곧 인구 10만을 눈앞에 둔 완주군은 시 승격 기준인 인구 15만 명까지 약 5만 명 남았다. 통합 찬성론자들이 내건 특례시 승격 기준은 인구 100만 명이다. 두 지자체를 통합하더라도 약 25만 명이 부족하다. 인구는 6배, 예산은 2배 이상 전주가 많기 때문에 완주 쪽에선 통합이 아니라 '흡수' 아니냐 주장도 나온다. 통합의 중요한 절차인 주민투표는 지방시대위원회와 행정안전부의 통합방안 마련 등을 거치면 내년쯤에나 가능하다. 완주군민 25%가 참여해 과반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지역일간지에선 대체 왜 김 지사 방문에 그토록 강하게 항의했는지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다. 전주에서는 1997년, 2009년, 2013년 세 번에 걸쳐 통합을 추진했지만 완주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번이 네 번째 시도다. 특히 2013년 6월26일 완주군민 대상 주민투표(투표율 53.2%)에서 55%가 반대했고, 45%가 찬성했다. 당시 완주군에서는 통합을 추진했지만 주민 다수의 반대로 통합이 무산됐는데 이 과정에서 완주가 둘로 쪼개진 것이다.
지난 1월30일 전주KBS '생방송 심층토론'에서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는 “2013년 주민들이 서로 극심하게 싸운 상처가 아직 남아 있어 (통합이) 현재 금기어처럼 돼 있다”며 “만약 찬성 측에서 강하게 나오면 반대 운동도 거세지겠지만 (상처 등 이유로) 지금은 크게 대응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통합추진단체가 만들어지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자 통합반대 대책위가 꾸려졌고 25일 만에 3만2785명의 주민이 반대입장을 서명해 지난 12일 전북자치도에 제출했다.
통합 반대 측에선 '통합했을 때 완주에 득보다 실이 많다'고 보고 있다. 유 기자는 “통합 찬성의 근거는 '지역발전'과 '역사복원' 등 다소 추상적인데 완주 주민들이 손해보는 것은 '혐오시설 이전 가능성', '예산 축소', '복지 감소', '주도권 상실' 등 피부에 직접 와닿는 것들”이라고 전했다. 완주군민 다수의 반대 서명에도 김 지사가 지난 22일 “통합은 지역생존 문제”라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 23일 완주신문 사설 제목은 <도지사는 완주군을 버렸다>였다.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언론에서는 크게 두 가지 논조를 보이고 있다. 첫째는 완주군민을 잘 달래보자는 쪽이다. 일부 언론에선 주민투표 표계산에 돌입했다. 찬반 논리를 다 드러내놓고 타 지역 행정통합 사례의 명암을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선 모양새다. 전북일보 30일자 2면 <완주·전주 통합 관건 '투표율'>에선 “통합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투표 참여율과 찬성비율이 통합추진의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9일 전주MBC도 저녁뉴스에서 <“만 명 이상 늘어난 완주 인구”…통합 향방 가를까?>를 보도했다.
해당 보도들을 보면, 지난 2013년 투표 때보다 완주군 인구가 1만2000여명 늘었는데 이러한 인구 증가가 전주와 인접한 곳에서 젊은층이 유입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당시 3900여표 차이로 부결됐으니 이번에 증가한 인구를 잘 설득하고 통합 찬성 측 사람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하면 통합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를 위해 전북일보 30일자 사설처럼 “감성이 아닌 이성적 시각으로 차분하게 토론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선 통합 반대주민들을 비판한다. 새전북신문은 30일 사설 <통합 반대한다고 물리력으로 막다니>에서 “전주와 완주 시군통합은 그 시급성과 당위성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며 “하지만 완주군민들은 이를 결사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북도민일보는 24일 사설 <전주·완주통합 추진 중지 모아야>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완주군의회에 “통합으로 인한 주민수혜 축소나 세부담 등 주민 불이익이 있다면 중지를 모아 해결하면 될 일인데 갈라파고스적 사고에 갇혀 있는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전주시장뿐 아니라 전북도지사도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생존방안으로 이를 내걸면서 왜 완주군을 설득하기 보다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걸까? 완주신문에선 정치적 이유라고 분석한다. 25일자 보도 <도지사 통합 추진은 재선 위한 결단>을 보면, KBS전주 여론조사에서 김 지사 재선에 대해 뽑을 의향이 있다(47%)와 없다(43%)는 의견은 오차범위에서 팽팽했고 전주시에선 긍정평가가 45%, 부정평가가 47%로 나타났다.
전북 지역은 민주당내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지사 재선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김 지사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카드가 필요했고, 전북도민 70% 이상이 찬성하는 두 지자체 통합 논의를 들고 나왔다는 해석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지역언론에서는 보기 힘든 지적이다.
이번 통합 논란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주 주민들 입장을 전하는 완주신문은 올 들어 '완주·전주통합반대특별위원회 활동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 이는 2010년 완주군의회에서 타 지역 사례를 조사해 기록한 내용이다.
이를 통해 원주시·원주군 통합사례, 청주시·청원군 통합사례, 이리시·익산군 통합사례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사례 등을 통해 통합 이후 교통·복지 등 실제 주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통합 과정은 대등했는지, 주민들 의사는 정치·행정에 잘 반영되게 됐는지, 소외된 지역에 유해시설이 들어서진 않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힘의 논리로 통합을 강하게 추진하는 지금, 행정통합이 진짜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고 두 지자체의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인지 지역언론에서 차분하게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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