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 아홉, 세 가족 캠핑…계곡과 하늘과 별과 동요 [ESC]
이웃사촌 모여 오토캠핑장으로
“엄마! 아빠! 창문이 뜨거워!”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채 짧은 팔을 뻗어 창문을 만져보던 3살짜리 둘째가 화들짝 놀라며 우리를 불렀다. “여름이니깐 뜨거운 게 당연하지! 오늘 같은 날엔 놀이터의 미끄럼틀도 조심해서 타야 해! 화상 입을 수도 있어!” 의기양양하게 여동생을 가르치는 8살 첫째를 바라보며 나와 아내는 미소를 머금었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맛비가 연일 내리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빠, 이번 주말에 우리 캠핑 갈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친구들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라며 시무룩한 얼굴로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던 첫째였다. 매일 같이 날씨를 살폈지만, 먹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습적인 폭우로 지난달에도 한차례 캠핑 약속을 미뤘던 터라 아쉬움은 더 컸다. 아들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 일기예보는 극적으로 바뀌었고, 다행히 이번 캠핑 약속은 지킬 수 있었다. 한껏 들뜬 아이들의 모습에 차창 너머의 눈부신 햇빛이 무척 감사했다.
아이스박스 꽉꽉 채워
차량 트렁크에 한가득 실린 짐의 무게만큼 아이들의 설렘도 큰 이번 여행은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1박2일 오토 캠핑이다. 최소한의 식음료와 야영 장비를 배낭에 담고 떠났던 그동안의 백패킹과는 출발 준비 과정부터 사뭇 달랐다. 7월의 두번째 토요일 아침, 손수레를 끌고 집에서 주차장까지 두 번을 왕복하며 캠핑 짐을 가득가득 차에 실었고, 아이스박스는 겨우 닫힐 만큼 먹고 마실 거리가 빼곡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장선천이다. 운주면 고당리 왕사봉 동쪽 산록에서 발원해 금당리와 장선리, 완창리를 지나 충남 논산천을 통해 금강으로 흘러가는 장선천은 운주계곡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완주소방서 운주119지역대를 지나 오른편의 짧은 다리를 건너자, 각양각색의 유원시설 팻말이 즐비한 도로가 펼쳐졌다. 계곡 가장자리에 줄지어 늘어선 평상과 그늘막은 마치 우리에게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녹음이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 10㎞쯤 오른 끝에 마주한 붉은색 철제다리를 건너자 동그란 안경에 머리를 질끈 묶은 한 여성이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예약자분 성함이? 아, 오늘 세 팀 예약 맞으시죠?”
계곡의 최상류에 있는 이곳은 불모지였던 산중의 땅을 중년의 부부가 손수 개간한 캠핑장이다. 어느덧 캠핑장을 운영한 지 12년째라는 부부의 안내에 따라 캠프사이트에 도착한 우리는 시동을 끄고 안전띠를 풀었다. 차 문을 열자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야호! 도착이다!”를 외치며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나무 그늘이 드리운 캠프사이트 한편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세 가족, 아이만 아홉인 이번 여행은 우리 집의 첫째와 이웃집의 셋째, 그리고 또 다른 이웃의 첫째가 미취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다. 가족구성원의 수가 많은 만큼 챙겨야 하는 짐도 많지만, 즐거움과 보람은 곱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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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장마, 맑디맑은 물
차에 실린 캠핑 장비를 캠프사이트로 옮기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아빠! 우리 계곡에 언제 내려가? 너무 더워!”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내며 휴대전화의 날씨 앱을 열었다. 현재 기온 31도. 시원한 계곡 물이 그리울 법도 했다. 캠프사이트에서 계곡 앞까진 불과 서른 걸음 남짓. 내리던 짐을 마저 옮긴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 물이 발끝에 닿는 순간, 마치 전기가 오른 듯한 자릿함에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곡 물의 수온에 금세 적응한 아이들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성큼성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며칠간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수량은 풍부했고, 흘러오는 물은 더없이 맑았다. 도시의 장난감은 필요치 않았다. 시선이 닿는 자연물은 모두 아이들의 놀잇감이었다. 크고 작은 돌을 주워 둑을 쌓기 시작했고, 가둬진 물웅덩이는 곧 아이들의 작은 수영장이 되었다. 고무보트와 튜브에 공기를 불어 넣으며 본격적인 물놀이가 시작됐다.
캠프사이트로부터 150m쯤 거슬러 오르자 가로 폭이 10m는 족히 넘을 법한 널따란 자연 물놀이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도 아이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물속에 뛰어든 우리는 운주계곡의 자연을 온몸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고무보트 위에 올라타 햇살을 느끼며 젖은 몸을 말리고, 그러다 더위가 느껴질 때면 다시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내맡겼다. 한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족대를 들고 물속을 노니는 한 무리의 버들치 떼를 눈으로 좇으며 물고기잡이에 매진했고, 또 다른 아빠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남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늘진 계곡가 한편에 의자를 펼치고 앉아 물놀이에 열중하는 아빠들과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엄마들의 미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푸르른 한여름의 골짜기를 메아리쳤다.
한바탕 물놀이를 마치고 나니 허기짐이 몰려왔다. 텐트로 돌아와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탁자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입맛도 취향도 제각각인 아홉 아이들의 기호에 따라 메뉴도 다양했다. 불판 위에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이 노릇하게 익어갔다. 동그란 팬에는 매콤한 주꾸미볶음이 지글거렸고, 두부가 데워지는 냄비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만끽한 끝에 포만감이 차오를 무렵, 서서히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장작불을 피워 볼까요?” 한 아빠의 제안에 나와 다른 아빠는 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놓았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였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려네~” 동요경연대회 참가를 앞둔 초등 2학년 아이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하늘에 별이 가득해요.”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반주 삼아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말을 음미하며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던 한 엄마의 나지막한 외침에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과 함께 운주계곡의 밤은 깊어갔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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