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다른 그녀’, 로맨스·코미디 엇박자로 그린 기묘한 세태
한국 사회에서 청년 세대는 여러모로 힘들다.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포기와 좌절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세태가 그 방증이다. 2024년 상반기 통계청 발표를 보면, 청년층에서 경제활동은 물론 구직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심각한 사회문제이기에 앞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청년의 도전 정신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식의 타박은 맞지 않다.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청년들의 몸부림은 기성세대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하다.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JTBC)가 20대 청년의 구직활동과 로맨스를 신체 변이 모티브로 버무려 기묘하게 연출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의 주인공 이미진(정은지)은 20대 취업준비생이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8년째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환경직 공무원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낙담하던 중 몸이 바뀌는 저주에 걸리기까지 한다. 해가 뜨면 50대 몸으로 변했다가 해가 지면 20대 몸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늙어버린 몸, 20여년 전 실종된 이모 임순(이정은)의 신상으로 시청 시니어 경력단절자 공공근로 인턴에 지원하고 최연소 합격자가 된다. 계지웅(최진혁) 검사실 실무관 보조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면서 쌓은 실력을 발휘해 직무 역량도 인정받는다.
20대 몸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취업을 50대 몸으로 이뤄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원래 내 모습으로” 일하지 못해서 슬프지만, 그래도 “일을 해서 즐겁다”는 말을 달고 산다. 하루아침에 늙어서 불행한 것보다, 정체가 발각되어 일자리를 잃을까봐 더 불안하다. 그에게 일자리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청년층에서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는 이유가 능력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는 유추가 가능한 대목이다.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인턴 제도’를 악용해 임금을 착취하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현실이 청년 실업 문제의 원인은 아닌지 궁금하다.
20대 후반의 여성이 50대 초로의 몸으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상황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실력을 갖추고도 취업이 어려운 20대 여성과 늙었다는 이유로 실력을 부정당하고 밀려나는 50대 여성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계지웅도 처음에는 임순을 “나이 많은 아줌마”라서 거부했다. 심지어 “경력은 없는데 나이 많고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이라고 면박했다. 그러나 임순의 업무 처리 능력은 완벽했다. 직장 상사의 취향에 맞춰진 회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한다. 50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깨지는 장면이다.
임순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이미진은 나약하고 수동적이다. 2인 1역의 장치를 이용해 20대 여성을 신데렐라로 정형화한 꼴이다. 계지웅은 이미진을 보호하고, 사회복무요원이자 톱스타인 고원(백서후)은 임순을 걱정한다. 이미진이 계지웅과 고원 앞에서만 어색한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사랑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납치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흑기사처럼 나타난 계지웅에게 울면서 안기는 모습도 두 사람의 로맨스를 강조하기 위한 억지에 가깝다. 작가와 연출자의 로맨스에 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의 연기력 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난삽하다. 50대 임순의 몸으로 20대 이미진의 감성을 발랄하게 표현하는 이정은의 탁월한 연기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억지스러운 로맨스만 아니면,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이 드라마는 길 위에서 느닷없이 세상과 이별해야 했던 무수히 많은 생명에 관한 문제의식도 뛰어나다. 가출인지 납치인지 명확하지 않은 실종 상태가 20년 넘게 이어지는 극적 상황이 죽음의 진실조차 밝히지 못한 정치 현실을 환유하기 때문이다. 임순은 20대 조카의 몸을 빌려 연쇄 실종과 살인 사건 진실 규명에 나선다. 해석의 비약에도 그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물론, 수해로 인한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사망한 해병대 청년의 극적 현신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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