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도박장’ 오명 벗을까...코인에 칼 빼든 정부
시세조작 및 부정거래 실시간 모니터링
적발시 엄격한 처벌
[비즈니스 포커스]
국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최근 서로 높은 예치금 이용료율(이자율)을 내걸고 치열한 투자자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빗썸은 지난 7월 24일 원화 예치금에 대한 이용료를 2.2%로 정했다. 이외에도 업비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이 각각 1.0~2.0%의 예치금 이용료를 책정한 상태다.
애초 대부분의 거래소는 예치금 이용료를 1%대 수준에서 정했으나 더 많은 고객을 자사 거래소로 이끌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며 이자율을 조금씩 높여나가는 추세다. 예치금 이용료란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가상자산으로 교환되지 않고 원화로 남아 있는 고객의 돈을 위탁운용해 내는 수익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이자를 뜻한다. 은행에 돈을 넣어놓으면 매달 통장으로 꼬박꼬박 이자가 입금되는 것과 같은 구조다.
거래소들이 이처럼 고객들에게 기존에 없던 예치금 이용료를 갑작스럽게 지급하게 된 이유는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다. 정부가 7월 19일부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전격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법에서는 거래소가 반드시 고객들에게 예치금 이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게 되면 형사처벌이나 과징금을 부과받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가상자산이 국내에서도 마침내 본격적인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정부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발동하면서다.
그간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었던 가상자산의 거래에 앞으로 각종 제약이 생기면서 시장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급등락을 반복했던 각종 코인의 가격이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시행하게 된 배경은 명확하다. 그동안 가상자산 투자는 이른바 ‘온라인 도박장’이라는 오명이 씌워질 만큼 투기 성격이 강했다.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 등이 빈번하게 발생해왔음에도 가상자산과 관련된 법이 사실상 전무했던 탓에 이를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일명 ‘코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쏟아지면서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다.
투자자 안전핀 마련에 초점
물론 이전에도 가상자산을 규제 대상으로 삼은 법령이 전무했던 건 아니다. 지난 2021년 3월 개정한 ‘특정금융정보법’을 꼽을 수 있다.
개정안에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 가상자산사업자가 다른 사람에게 가상자산을 100만원 이상 전송할 때 송수신인의 이름과 가상자산 주소 등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보관하게 하는 ‘트래블 룰(travel rule)’ 등 각종 규제를 넣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만으로는 가상자산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 등 각종 불공정거래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이번에 탄생하게 된 것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다. 이 법은 법안명처럼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가상자산 불공정거래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처벌을 하기로 했다. 법안을 보면 정부는 시세조종 행위와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등 세 가지 행위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했다.
특히 이 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 거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코인 시세조종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통정매매 등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스캠 코인’(사기 목적 가상화폐)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무려 세 가지 방법으로 시세조종을 원천 봉쇄한다.
첫째는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서다. 거래소는 상장된 가상자산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야 하며 이상 거래 조짐이 보일 경우 금융당국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현재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이 같은 방침에 맞춰 이상 거래 상시 감시시스템 구축을 마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자체 모니터링, 제보센터 운영 등을 통해서도 시세조종을 적발하기로 했다.
반쪽짜리 규제 지적도 나와
유명 연예인 등이 투자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로 가상자산 가격을 급격히 올린 후 관련자들이 한꺼번에 매도하여 이익을 실현하고 일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정부는 이런 행위도 불공정거래로 규정하고 일절 금지하기로 했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자신이 발행한 가상자산을 매매하는 것도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미공개정보 이용으로 간주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금융당국 조사 및 수사기관의 수사를 거쳐 불공정거래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및 과징금을 부과한다.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에 상당한 벌금이 부과된다. 부당이득이 5억~50억원이면 3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사례에 따라선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은행처럼 가상자산거래소들이 투자자들이 맡긴 돈에 대한 이용료, 즉 일종의 ‘이자 지급’도 의무화했다. 방식은 이렇다. 가상자산거래소의 예치금 관리기관은 공신력과 안정성, 현행 운영체계 등을 고려해 은행으로 정했다. 은행은 이용자의 예치금을 자기 재산과 구분해 국채, 지방채 등 안전자산에 운용할 수 있다. 대신 이에 대한 예치금 이용료를 이용자에게 지급한다.
또 가상자산거래소는 가상자산 가치의 80%를 인터넷과 단절된 ‘콜드월렛’에 보관해야 한다. 해킹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 밖에 해킹, 전산장애 등 사고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가상자산거래소가 보험·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가격이 널뛰기를 반복했던 가상자산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코인 거래소 관계자는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행위가 모두 불공정거래가 됐다”며 “이를 위반하면 엄격한 처벌까지 받게 돼 예전처럼 가상자산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성 투자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물론 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보다 투명해질 것이라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법안 시행이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의 경우 ‘발행(가상자산공개·ICO)’과 ‘유통’으로 구분되는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유통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며 “투자자들의 스캠 코인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ICO 관련 규제가 전혀 담기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 대형로펌의 가상자산 전문 변호사도 “어떤 것들이 미공개 중요정보의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애매모호하다”며 “해당 법에서는 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라고 추상적으로 이를 규정하고 있어 이를 두고 향후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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