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살인' 유족 "반복되지 않도록" -취[재]중진담
유난히도 더운 밤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조용했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경찰과 구급차가 들이닥쳤습니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잠깐 산책을 나온 사이,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흉기 공격을 당했습니다.
잠시 뒤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이었습니다.
이번 '취[재]중진담'에서는, 이른바 '일본도 살인'으로 불리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달 29일 밤 11시 30분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정문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날 길이만 80cm 짜리 도검인 '일본도'가 범행도구로 사용된 잔혹한 사건이었습니다.
숨진 피해자는 40대 남성으로, 잠깐 집 앞에 담배를 한 대 피우러 나온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A 씨는 남성을 해한 뒤 자신의 집으로 도망쳤다가, 출동한 경찰에 1시간 만에 긴급체포됐습니다.
A 씨와 숨진 남성은 서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뚜렷한 원한 관계도 없었습니다.
단지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어서 범행했다"는 A 씨의 진술만이 전해질 뿐이었습니다.
당시 A 씨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고, 사건 발생 사흘 뒤 결국 구속됐습니다.
경찰은 현재 A 씨에 대한 마약 정밀 감정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A 씨가 사건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 1일, 취재진 앞에서 A 씨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자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잠깐의 고민도 없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겁니다.
이후 법정에서 약 1시간 반 동안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온 A 씨는 법원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일본도는 중국 스파이를 처단하기 위해 샀으며,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이들을 처단하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은 "심신미약이 아니며, 멀쩡한 정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A 씨의 정신 질환이 추정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정신 질환 유무에 대한 진단 등 객관적으로 확인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경찰은 우선 A 씨의 주변인들을 상대로 A 씨의 정신 상태 등에 대한 자료 조사를 이어나갈 방침입니다.
또, A 씨와 피해자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 등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 등을 감안해 A 씨의 신상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피의자 A 씨가 법정에서 구속의 기로에 놓였던 그 순간,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숨진 40대 피해자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9살, 4살 배기 아들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게 됐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와 배우자도 넋을 잃고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남편이자 아들인 남성을 떠나보냈습니다.
유족 측은 이처럼 동기도 불분명한 살인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보완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유족 뿐만은 아닐 겁니다.
지난해 조선의 신림역 살인 사건, 최원종의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을 지나 최근까지도 동기와 대상이 불분명한 상태로 흉기가 사용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감과 피로감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까지 발생한 '이상 동기 범죄'는 53건이었고, 이 중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피해자의 발인식이 진행되던 그때, 경찰청은 소지허가가 내려진 도검들을 대상으로 전수 점검을 벌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8월 한 달 동안 82,641정의 도검 소지자에 대해서 범죄경력 발생 여부와 가정폭력 발생 이력 등을 확인한 뒤, 부적격자들의 소지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신규 허가 신청자의 정신 질환 여부를 서류를 통해 확인하고, 향후 주기적인 허가 갱신이 이뤄지도록 '총포화약법' 개정도 추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검 전수 점검'이 일련의 이상 동기 범죄들을 막을 근본적인 해결이 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 순찰 인력 등이 제한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이상 동기 범죄를 경찰 혼자 막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상 동기 범죄는 범인의 정신 질환 등과 연계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관계 당국이 이들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특정 지역, 시간대, 특정인에 대해 중복적으로 112 신고 접수가 될 경우, 이를 토대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한정적인 경찰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연장현 기자 / tallyeon@mbn.co.kr]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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