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보수 재집권 위한 3가지 필요조건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4. 8. 3. 09:01
[유창선, 정치를 읽다] ①리더십 ②실용보수 ③역동적 경쟁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이재명 전 대표였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논란거리를 몰고 다녀서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비토(거부)층이 많았던 그인지라 중도층의 마음이 정권을 교체하자는 쪽으로 흘러갔다. 즉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염증을 낸 민심에서 비롯한 반사이익 덕분에 이긴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들이 했어야 할 일은 자신들의 능력을 통해 국민의 '진짜 지지'를 얻고 새로운 보수 정치 시대를 여는 일이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에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자칫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이단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하락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의 국민의힘이라면 보수 재집권은 요원하다는 얘기가 나오게 됐다. 이 전 대표가 상대였기에 간신히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보수는 국민이 원하는 국정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중심에 윤 대통령의 구시대적 리더십이 있다. 윤 대통령은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채 고집스러운 사고를 앞세운 일방적 통치에 매달렸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느닷없이 이념 전쟁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이며 보수 정치가 과거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대는 다원화하고 복잡해진 환경을 맞이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층·세력 간 타협은 불가피한 일이다. 토론·협상을 거쳐 절충·조정해서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 정치의 요체가 된 세상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불편해하고 토론을 멀리했다. 자신의 판단만 절대시하다가 정치 시계를 뒤로 돌려버렸다. 게다가 주변에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국정을 운영하니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2022년 정권교체를 선택한 민심이 보수에 실망하고 다시 떠나간 것은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의 리더십이 드러낸 한계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 세력의 차기 대선 후보는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며 국민의 다양한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넓은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 재집권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방통치적 사고를 가진 리더는 더는 지지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집권 이래 '용산출장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대통령만 추종하다가 결국 민심이 떠나가게 만들었다. 정권을 잡았으니 새로운 보수의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보수 정치의 질서를 구축할 법도 했건만,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혁신'은 언제나 용두사미로 끝났고, 국민의 눈에 과거의 낡은 보수와 그다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변화·혁신이 들어서야 했을 자리에 대신 자리한 것은 친윤, 비윤, 반윤을 따지고 낙인찍는 구시대적 계파정치였다.
이는 국민의힘을 이끌어가는 중심 세력이 여전히 바뀌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결과다. 22대 총선 결과는 여전히 국민의힘의 변화·혁신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의원 108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은 90명. 이 가운데 영남권 당선 의원이 43명으로 48%에 달하는 반면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당선한 의원은 19명(21%)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영남당'의 한계에 갇힌 국민의힘이다. 이념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권 의원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기에 그 벽을 넘어 새로운 보수로 변화·혁신하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당 진영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그랬듯,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수 정치권에서 그만한 힘을 갖고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혁신의 길을 만들어갈 리더가 나오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리더가 당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테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 정치가 살 길은 이념보수가 아니라, 사회 변화를 감당하는 실용보수로 가는 데 있다. 이는 이념보수층의 지지를 넘어 중도층의 지지까지 받는, 확장성을 가진 새 보수의 길을 의미한다. 이미 4월 총선 결과가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한 110여만 명의 보수층이 열광한다고 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자기들끼리 아무리 환호한들 넓은 민심의 바다 위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보수 재집권은 불가능하다.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민주당은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 그리고 '이재명 일극 체제'의 양상을 거리낌 없이 보이고 있다. 여권 세력이 저 모양이니 겁날 것이 없는 게다. 사실 여권이 어지간한 모습만 보여주면 민심의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보수 세력에 대한 환멸이 민주당의 치부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니 한심할 지경이다.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조기 퇴진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보수 세력은 이를 넘어서며 2027년 재집권을 위한 정치를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임에도 여전히 무사태평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웰빙 정치'라는 조롱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이미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한,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들과 리더십이 중심에 서는 것만이 보수가 2027년 재집권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임을 자각할 때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가 2027년 대회전을 한동훈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고 기대해선 안 된다. 한 전 위원장은 아직 국민적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친 정치인이 아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등판해서 비대위원장을 맡고 선거를 지휘했지만, '한동훈 정치'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보수층 내에선 한 전 위원장만이 새로움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많지만,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에서 나타났듯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가 똑똑한 인물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정치가 성적순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가 우군을 넓혀가는, '광폭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더 지켜볼 일이다. 보수 정치권에선 그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상황도 염두에 두고 대안을 준비해 둬야 한다.
더구나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 체제'를 세우며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자초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당헌·당규 개정 등을 통해 이재명 전 대표 이외의 다른 인물은 감히 대권 후보 경쟁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의 권리가 대폭 강화되고, 원내에서도 친명계가 압도하는 환경에서 그가 아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등장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전 대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2027년 대선에 재도전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다방면에 걸쳐 치밀하게 구축해 놓은 셈이다. 정당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한 광경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정치다. 그래서 '이재명 일극 체제'라는 조어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대단히 부끄러운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보수에도 해당된다. 현재까진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권의 유일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팬덤층이 상당하다. 그러나 경쟁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재명 일극 체제'가 내준 공간을 마찬가지로 차지하기 어렵게 된다.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경쟁이 부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당과는 다른, 예측 불허의 역동적 경쟁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할수록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경쟁력은 커지게 돼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다른 당내 주자들과 의미 있는 경쟁을 거치지 않고, 독주하며 대선을 치른 것도 그의 본선 경쟁력을 기대에 못 미치게 만든 요인이다.
● 총선 참패 다 잊은 듯한 국민의힘 ‘가관’
● ‘김건희 문자’ 공방전, 이런 모습 보여야 했나
● 혁신’이 들어설 자리에는 親尹, 反尹, 非尹이….
● 이념보수 아닌 사회 변화 감당하는 실용보수
● 경쟁으로 ‘이재명 일극 체제’ 민주당과 대비 이뤄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광경을 보노라면 한마디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2년 전 국민은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를 이루게 해주고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안겨줬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싫어서 표를 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허구한 날 '친윤(親尹)' '반윤(反尹)' 타령만 하다가 집권 여당이면서도 22대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 2027년 대통령선거는 금방 다가온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정권을 다시 넘겨주는 일 없이 재집권하려면 올해 총선 참패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절치부심하며 새로 태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전당대회 과정에서 드러난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민심에 부응하는 집권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비전 경쟁은 보이지 않고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친윤 대 비윤(非尹)'을 따지는 목소리만 가득했다. 벌써 총선 '폭망'을 다 잊은 듯한 모습이다.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 2027년 대통령선거는 금방 다가온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정권을 다시 넘겨주는 일 없이 재집권하려면 올해 총선 참패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절치부심하며 새로 태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전당대회 과정에서 드러난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민심에 부응하는 집권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비전 경쟁은 보이지 않고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친윤 대 비윤(非尹)'을 따지는 목소리만 가득했다. 벌써 총선 '폭망'을 다 잊은 듯한 모습이다.
韓 김건희 문자 '읽씹' 논란 = 길 잃은 보수 표상
게다가 느닷없이 '김건희 문자' 공방전이 벌어졌다. 한 언론인에 의해서 불거진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올해 1월 김 여사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등 사과 의향을 전한 사실이 알려진 것.
한 언론에 의해 공개된 문자 전문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하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를 하고 싶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다" 등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이 이를 '읽씹(읽고 무시)'했고, 결국 김 여사의 사과가 불발돼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는 한 전 위원장의 당권 경쟁자들에겐 공격 명분이 됐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전 위원장에겐 큰 부담이다. 김 여사가 몸을 낮추며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는데도 묵살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권당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 방식으로 공적·정무적 논의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한 전 위원장의 교과서적 해명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꼬여 있는 매듭을 풀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리더십을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시작은 사적 문자였다 해도, 이를 공적 논의로 발전시킬 방법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동훈식 정치'가 협소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침묵하다가 이때다 싶어 한 전 위원장 협공에 나선 다른 후보들의 모습도 보기에 우습다. 이런 주제가 과연 국민이 집권 여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사안이어야 한 걸까. 총선 참패 이후 길을 잃고 헤매는 보수 정치의 표상을 보는 것만 같다.
한 언론에 의해 공개된 문자 전문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하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를 하고 싶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다" 등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이 이를 '읽씹(읽고 무시)'했고, 결국 김 여사의 사과가 불발돼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는 한 전 위원장의 당권 경쟁자들에겐 공격 명분이 됐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전 위원장에겐 큰 부담이다. 김 여사가 몸을 낮추며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는데도 묵살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권당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 방식으로 공적·정무적 논의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한 전 위원장의 교과서적 해명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꼬여 있는 매듭을 풀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리더십을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시작은 사적 문자였다 해도, 이를 공적 논의로 발전시킬 방법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동훈식 정치'가 협소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침묵하다가 이때다 싶어 한 전 위원장 협공에 나선 다른 후보들의 모습도 보기에 우습다. 이런 주제가 과연 국민이 집권 여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사안이어야 한 걸까. 총선 참패 이후 길을 잃고 헤매는 보수 정치의 표상을 보는 것만 같다.
반사이익으로 정권 잡고 '불통' 리더십 보이니…
이런 모습으로 과연 2027년 대선에서 '보수 재집권'이 가능한 일일까. 작금의 상황을 놓고 보면 비관적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2022년 대선 승리를 통해 보수 정권이 들어선 결과는 보수가 잘해서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시 대선 정국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러 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분열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이재명 전 대표였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논란거리를 몰고 다녀서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비토(거부)층이 많았던 그인지라 중도층의 마음이 정권을 교체하자는 쪽으로 흘러갔다. 즉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염증을 낸 민심에서 비롯한 반사이익 덕분에 이긴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들이 했어야 할 일은 자신들의 능력을 통해 국민의 '진짜 지지'를 얻고 새로운 보수 정치 시대를 여는 일이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에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자칫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이단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하락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의 국민의힘이라면 보수 재집권은 요원하다는 얘기가 나오게 됐다. 이 전 대표가 상대였기에 간신히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보수는 국민이 원하는 국정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중심에 윤 대통령의 구시대적 리더십이 있다. 윤 대통령은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채 고집스러운 사고를 앞세운 일방적 통치에 매달렸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느닷없이 이념 전쟁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이며 보수 정치가 과거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대는 다원화하고 복잡해진 환경을 맞이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층·세력 간 타협은 불가피한 일이다. 토론·협상을 거쳐 절충·조정해서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 정치의 요체가 된 세상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불편해하고 토론을 멀리했다. 자신의 판단만 절대시하다가 정치 시계를 뒤로 돌려버렸다. 게다가 주변에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국정을 운영하니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2022년 정권교체를 선택한 민심이 보수에 실망하고 다시 떠나간 것은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의 리더십이 드러낸 한계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 세력의 차기 대선 후보는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며 국민의 다양한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넓은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 재집권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방통치적 사고를 가진 리더는 더는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사회 변화 감당하는 실용보수
국민의힘의 변화 여부도 보수 재집권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중대 변수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 민심과 대통령 간 정치적 가교 구실을 하면서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 운영을 유도하는 것이 여당의 역할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집권 이래 '용산출장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대통령만 추종하다가 결국 민심이 떠나가게 만들었다. 정권을 잡았으니 새로운 보수의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보수 정치의 질서를 구축할 법도 했건만,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혁신'은 언제나 용두사미로 끝났고, 국민의 눈에 과거의 낡은 보수와 그다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변화·혁신이 들어서야 했을 자리에 대신 자리한 것은 친윤, 비윤, 반윤을 따지고 낙인찍는 구시대적 계파정치였다.
이는 국민의힘을 이끌어가는 중심 세력이 여전히 바뀌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결과다. 22대 총선 결과는 여전히 국민의힘의 변화·혁신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의원 108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은 90명. 이 가운데 영남권 당선 의원이 43명으로 48%에 달하는 반면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당선한 의원은 19명(21%)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영남당'의 한계에 갇힌 국민의힘이다. 이념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권 의원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기에 그 벽을 넘어 새로운 보수로 변화·혁신하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당 진영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그랬듯,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수 정치권에서 그만한 힘을 갖고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혁신의 길을 만들어갈 리더가 나오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리더가 당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테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 정치가 살 길은 이념보수가 아니라, 사회 변화를 감당하는 실용보수로 가는 데 있다. 이는 이념보수층의 지지를 넘어 중도층의 지지까지 받는, 확장성을 가진 새 보수의 길을 의미한다. 이미 4월 총선 결과가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한 110여만 명의 보수층이 열광한다고 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자기들끼리 아무리 환호한들 넓은 민심의 바다 위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보수 재집권은 불가능하다.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민주당은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 그리고 '이재명 일극 체제'의 양상을 거리낌 없이 보이고 있다. 여권 세력이 저 모양이니 겁날 것이 없는 게다. 사실 여권이 어지간한 모습만 보여주면 민심의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보수 세력에 대한 환멸이 민주당의 치부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니 한심할 지경이다.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조기 퇴진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보수 세력은 이를 넘어서며 2027년 재집권을 위한 정치를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임에도 여전히 무사태평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웰빙 정치'라는 조롱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이미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한,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들과 리더십이 중심에 서는 것만이 보수가 2027년 재집권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임을 자각할 때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이다.
국민적 검증 과정 거쳐야 하는 한동훈
보수 재집권을 위해 또 하나 필요한 것은 경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이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두말할 것 없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다. 7월 23일 전당대회 국면에서 총선 패배 책임론,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에도 불구하고 독주 양상이 바뀌지 않았다. 여권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팬덤층도 두껍고, 무엇보다 기존 보수 정치인들이 확장성에서 한계를 드러낸 데 반해 중도층까지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잠재력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보수가 2027년 대회전을 한동훈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고 기대해선 안 된다. 한 전 위원장은 아직 국민적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친 정치인이 아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등판해서 비대위원장을 맡고 선거를 지휘했지만, '한동훈 정치'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보수층 내에선 한 전 위원장만이 새로움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많지만,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에서 나타났듯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가 똑똑한 인물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정치가 성적순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가 우군을 넓혀가는, '광폭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더 지켜볼 일이다. 보수 정치권에선 그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상황도 염두에 두고 대안을 준비해 둬야 한다.
더구나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 체제'를 세우며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자초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당헌·당규 개정 등을 통해 이재명 전 대표 이외의 다른 인물은 감히 대권 후보 경쟁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의 권리가 대폭 강화되고, 원내에서도 친명계가 압도하는 환경에서 그가 아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등장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전 대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2027년 대선에 재도전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다방면에 걸쳐 치밀하게 구축해 놓은 셈이다. 정당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한 광경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정치다. 그래서 '이재명 일극 체제'라는 조어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대단히 부끄러운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보수에도 해당된다. 현재까진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권의 유일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팬덤층이 상당하다. 그러나 경쟁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재명 일극 체제'가 내준 공간을 마찬가지로 차지하기 어렵게 된다.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경쟁이 부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당과는 다른, 예측 불허의 역동적 경쟁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할수록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경쟁력은 커지게 돼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다른 당내 주자들과 의미 있는 경쟁을 거치지 않고, 독주하며 대선을 치른 것도 그의 본선 경쟁력을 기대에 못 미치게 만든 요인이다.
실용주의 후보들 간 대권 경쟁
보수 정치엔 한 전 위원장 외에 '오세훈'이라는 대안이 있다.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이유로 뚜렷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진 않고 있지만 2026년 임기가 끝나고 나면 대권 도전 태세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오 시장은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변화시키려는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의 정체기를 벗어나는 리더십을 보였다. 그를 한 전 위원장과 경쟁할 만한 상대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시장 재임 기간 나타낸 탈(脫)이념적 실용주의다. 오 시장은 보수 정치의 고질적 레퍼토리인 보수-진보 나누기 이념 시정에 매달리지 않고 시민 전체를 상대로 한 실용주의적 정책을 내놓곤 했다. 이는 그가 대선 행보에 나섰을 때 높은 중도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그에겐 2011년 서울시장직 자진 사퇴의 '원죄'가 있다. 그는 당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 복지를 주장하며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찬반 투표를 제안했다가 투표율이 미달되자 시장직을 사퇴한 바 있다. 이 선택은 2012년 대선을 앞둔 중대한 시점에 서울시장을 민주당에 자진해서 넘긴 행위로 간주, 보수 진영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오 시장에 대한 국민의힘 당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오 시장이 대선 후보가 되는 길은 서울시장으로서 거둔 실적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를 등에 업고 한 전 위원장과 경쟁을 거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전략이 될 것이다. 아직 이른 얘기이지만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실용주의면서도 중도 외연 확장이 가능한 후보들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재명 일극 체제'와 대비를 이루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재집권을 이루는 길은 사실 뻔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종종 자기도취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길을 놔두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의 선택은 결국 보수 정치인들의 몫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들의 것이다.
오 시장은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변화시키려는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의 정체기를 벗어나는 리더십을 보였다. 그를 한 전 위원장과 경쟁할 만한 상대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시장 재임 기간 나타낸 탈(脫)이념적 실용주의다. 오 시장은 보수 정치의 고질적 레퍼토리인 보수-진보 나누기 이념 시정에 매달리지 않고 시민 전체를 상대로 한 실용주의적 정책을 내놓곤 했다. 이는 그가 대선 행보에 나섰을 때 높은 중도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그에겐 2011년 서울시장직 자진 사퇴의 '원죄'가 있다. 그는 당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 복지를 주장하며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찬반 투표를 제안했다가 투표율이 미달되자 시장직을 사퇴한 바 있다. 이 선택은 2012년 대선을 앞둔 중대한 시점에 서울시장을 민주당에 자진해서 넘긴 행위로 간주, 보수 진영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오 시장에 대한 국민의힘 당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오 시장이 대선 후보가 되는 길은 서울시장으로서 거둔 실적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를 등에 업고 한 전 위원장과 경쟁을 거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전략이 될 것이다. 아직 이른 얘기이지만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실용주의면서도 중도 외연 확장이 가능한 후보들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재명 일극 체제'와 대비를 이루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재집권을 이루는 길은 사실 뻔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종종 자기도취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길을 놔두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의 선택은 결국 보수 정치인들의 몫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들의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동아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