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와 구영배, 과도한 자기 확신이 남긴 무리수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4. 8.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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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김범석 넘으려 M&A 통한 영역 확장에만 몰두…독이 된 야심 
성공한 경영자의 오류 고스란히 답습…과속 질주 폐해, 시장과 소비자에게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국내 벤처기업 성장의 역사에서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과 구영배 큐텐 대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국내 대학의 '기업가 정신과 창업' 교과목에서 두 기업가의 성공은 비즈니스 케이스 분석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두 창업주는 롤모델 이상의 상징성도 지녔다. 지나친 스포트라이트와 자신감이 독이 되었을까. 김 위원장과 구 대표는 현재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왼쪽)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7월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른쪽)2023년 10월23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M&A 통한 무한 몸집 키우기로 제 발등 찍다

국내 플랫폼 산업의 역사는 크게 네이버의 이해진과 카카오의 김범수 두 축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국내 이커머스 산업의 역사는 쿠팡의 김범석과 G마켓을 창업한 구영배로 설명이 충분하다. 수많은 도전자가 플랫폼과 이커머스의 장밋빛 전망을 읽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시장은 항상 1인자와 2인자에게만 모든 패권과 권한을 부여했다. 김범수에게 이해진은, 구영배에게 김범석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전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던 2020년, 카카오는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언론은 '진격의 카카오'로 이를 표현했다. 다수의 매체가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과 카카오의 폭풍 성장에 찬사를 보냈다. 카카오가 성장 곡선을 그리던 3년 전, 카카오의 성장에 비판적인 견해를 모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자 꽤 많은 이가 카카오의 성장에 회의적인 이유를 필자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티메파크(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싱가포르산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을 각인시킨 구영배 대표 역시 11번가 인수에 나섰을 때 승부사라고 그를 치켜세운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다. 누군가는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에 의도적으로 진입한 그를 전략적인 승부사라고 칭송했다. 적자 기업을 인수하면서까지 무리수를 키워나간 그를 경계한 이는 없었다.

김 위원장과 구 대표의 성공 전략은 발 빠른 인수합병과 사업 확장으로 요약된다. PC방에서 게임으로, 게임에서 플랫폼으로 영역을 전환하며 성공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예리한 통찰력을 믿었다. 지하상가 옷가게를 오픈마켓으로, 오픈마켓에서 풀필먼트(Fullfillment)로 영역을 전환하며 확장의 길을 개척한 구 대표는 자신의 냉철한 판단력을 믿었다. 성공을 거듭한 방식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풀필먼트는 상품 입고부터 재고관리, 분류, 배송은 물론 반품 등 사후처리까지 모든 업무를 일괄 처리하는 서비스다).

김 위원장에게 네이버는 넘어야 할 산이다. 콘텐츠, 이커머스, 금융, 모빌리티 등 모든 영역에서 네이버와 경쟁한 김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주가 각종 규제와 비판에 시달렸던 교훈을 잊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영역 확장에만 몰두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부터 골목상권 침해 논란까지 카카오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경쟁사를 넘겠다는 그의 욕심은 화를 불렀다.

구 대표에게 쿠팡은 넘어야 할 산이다. 온라인쇼핑의 선구자인 그는 G마켓을 창업, 오픈마켓 모델을 도입하며 2006년 이커머스 업계 최초의 나스닥 상장 신화를 이루었지만 이커머스는 이제 풀필먼트 서비스로 중무장한 쿠팡과 쿠팡을 뺀 나머지 기업으로 평가될 정도로 쿠팡의 포지션이 확고하다. 이른바 티메파크 등 적자 기업 인수를 통해 글로벌 풀필먼트에서 경쟁사를 넘겠다는 그의 야심은 독이 되었다.

김범수 위원장은 과거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2007년 지금의 네이버인 NHN을 떠나며 100명의 기업가를 육성하겠다고 다짐한 그의 선언은 지금도 벤처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기업가 정신을 국내에 더 많이 확산시켜 유능하고 사업에 창의적인 감각을 지닌 기업가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김 위원장. 그가 카카오를 경영하며 관리와 통제보다 권한 위임과 자율성을 강조한 이유다.

방향성 불분명한 확장은 반드시 좌초한다는 교훈 남겨

구영배 대표는 G마켓 시절부터 고객중심 경영을 외쳐온 인물이다. 인터파크 재직 시절 추진한 구스닥(Goodsdaq) 프로젝트와 이후 만든 G마켓은 그의 성인 구(Goo)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스토리다. 큐텐(Qoo10) 역시 구 대표의 '구(Goo)십(10)'을 의미한다. 고객중심을 외쳤지만 브랜드부터 사업관리까지 중심은 오직 구 대표에게 집중됐다.

기업가에게는 기업가 정신뿐만 아니라 경영자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으며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사업을 하는지 명확한 미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안내하듯이 기업가의 철학은 사업 확장과 브랜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확장은 구성원을 모래알로 만들고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 몫으로 전가된다. 방향성이 불분명한 확장은 반드시 좌초한다.

182만 명이 카카오페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던 2021년, 카카오페이 주가가 급등하자 경영진은 상장 후 한 달 만에 무려 9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후 주가가 급락하며 투자자들은 피해를 봤고 경영진은 수백억원의 차익을 거둔 후 회사를 떠났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한 피해 금액은 최대 1조원까지 추정됐으나 경영진은 초기부터 사죄와 보상에 관해 무성의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그동안 성공한 경영자가 보여준 심리적 오류를 분석해 주요 결과를 다음과 같이 도출했다. 첫째,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착각의 오류. 둘째, 자신의 능력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평균 이상의 오류. 셋째, 성공은 늘 자신의 통찰력 덕이라고 믿는 자기 귀인의 오류. 이 세 가지 오류는 성공한 경영자가 범하는 치명적 실수다. 김 위원장과 구 대표는 지난 20년간 업계에서 개척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잇단 성공을 거듭하며 언제든지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의 통찰력이 뛰어나기에 '성공은 나만 해낼 수 있다'는 과도한 자기 확신이 무리수를 부른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의 과도한 자기 확신은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급발진과 같다. 과속으로 질주하는 동안 너무 많은 폐해를 시장과 소비자에게 남겼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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