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인간과 역사 성찰 없으면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오키나와는 잘 모르는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위안소가 140개나 설치됐고 조선인 군부 1만여 명이 동원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곳에 묻혔다.
2023년 3월, 소설가 김숨은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인 군부들이 생활했던 곳을 답사하기 위해 가이드 김지혜씨와 대학 재학 중인 통역 전효리씨와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존재했던 흔적마저 잊히고 지워진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인 군부를 복원하고 싶었고, 특히 위안부 배봉기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서 더듬고 싶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먼 곳에서 생활한 것인지, 그곳까지 가는 동안 어떤 심정이었을지. 할머니의 마음을 스케치하듯 그리고 싶었다.
어둡고 칙칙한 숲속에서 일본군이 줄을 질질 끌고 가고, 그 줄의 끝에는 한 남성과, 그를 껴안은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시리즈 그림의 하나인 「구메지마 학살2」와 마주했다. 그림에는 구메지마(久米島)에서 재일조선인 구중회씨 가족이 학살된 상황이 그려져 있었다. 질문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왜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서쪽으로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구메지마까지 오게 됐을까. 어쩌다가 일본군으로부터 스파이 혐의를 받게 됐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잔인하게 죽어가야만 했을까. 어쩌다가 그는⋯.
마침 이틀 전 구메지마에 다녀온 학예사 우에마 가나에씨가 있었다. 김 작가 일행은 배경이 된 사건과 구메지마라는 낯선 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구중회씨 일가족 학살 사건은 답사를 오기 전 미리 읽었던 오세종 교수의 책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를 통해서 이미 접한 상태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너무 끔찍해 소설화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들은 두 시간 넘도록 작품 앞에 서서 질문과 답을 이어갔다. 마치 “벌을 받듯”. 그 순간, 소설이 시작됐다.
소설가 김숨이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제도의 작은 섬 구메지마에서 일본군 수비대가 스파이 혐의로 조선인을 포함해 주민 20명을 학살한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오키나와 스파이』(모요사출판사)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12번째 장편소설.
김 작가는 이번 작품 집필을 위해서 많은 자료를 탐독했고, 구메지마를 비롯해 오키나와를 두 차례 답사했으며, 현지 주민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광기 어린 폭력이 생명과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한 태평양전쟁기의 구메지마로 독자들을 이끌고 간다.
“‘스파이!’ 이케다가 총검을 치켜들고 혀를 씹듯 내뱉으며 우치마의 정수리에 총검을 내리꽂는다. 피가 튀며 총검이 우치마의 머리를 날벼락처럼 꿰뚫고 목으로 삐져나온다. 총검을 뽑자 우치마가 머리로, 목으로 피를 뿜으며 앞으로 꼬구라진다. 군인 하나가 경방단장에게 달려든다. 경방단장의 어깻죽지에서 솟구쳤다 떨어지는 핏줄기가 벤의 얼굴에 들러붙는다. 료타가 ‘스파이!’ 하고 이를 갈며 벤에게 달려든다. 영원히 벗을 수 없는 피의 가면을 쓰고 몸서리치는 벤의 파헤쳐진 배에서 아기 얼굴만 한 핏덩이가 토해진다.”(20~21쪽)
소설은 구메지마에 주둔 중인 일본군 수비대 총대장 기무라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과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는 10대 섬 소년들이 9명의 주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학살된 주민들은 미군에 잡혔다가 풀려난 것을 일본군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이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무라 총대장으로부터 ‘스파이’ 혐의를 받은 이들이었다.
“미군 삐라를 줍는 사람, 미군에게 겁탈 당한 여자,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사람, 오키나와 말을 해도, 섬 사투리를 써도 스파이다. 군인들보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스파이다.”(122쪽) 결국 기무라 맘대로 스파이가 된다. “기무라 총대장이 스파이라고 하면 스파이예요!”(99쪽)
기무라를 정점으로 일본군은 “스파이로 우글우글하다”며 주민들을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했다. 섬사람들은 누가 스파이인지, 다음 대상은 자신이 아닐지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짓눌린다. 항복을 권고하는 미군의 서신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미군으로부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받았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차례로 학살된다. 광기는 희생양을 찾기 시작하고 마침내 조선인 고물상으로 향해 가는데.
“인종차별 때문에요. 엄마, 인종차별이 뭐냐면 말이에요, 인간을 일등, 이등, 삼등… 그렇게 나누는 거래요. 일본인은 일등, 오키나와인은 이등, 조선인은 삼등. 엄마, 그런데 나는 조선인이에요?”(228~229쪽)
모두 12개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제1부 「9명」, 4부 「1명」, 9부 「3명」, 12부 「7명」 등 네 개 부에만 제목이 붙어 있다. 바로 스파이 혐의로 참살당한 주민들의 수다. 네 개 부에 주민 참살이 담겨 있고, 그 사이에 ‘우치마네가 몰살당한 날의 아침, 이틀 전, 한 달 전, 열 달 전’ 식으로 그들의 사연과, 사건의 의미와 실체가 펼쳐진다.
동아시아로 상상력을 급격히 확장해온 김숨 작가가 바라본 태평양전쟁기 구메지마 수비대 주민 학살 사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왜 이 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김 작가를 지난 2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소설을 쓸 때는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된다. 구메지마에서 학살당한 20명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둘러싼 광의의 피해자들도 있다. 피해자의 후손들, 구메지마 주민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소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하는데, 소설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그 과정에서 혹시 그들을 왜곡하는 일이 생길까 봐 어려웠다. 상상으로만 쓸 수는 없고, 2차 가해를 해선 안 된다. 구메지마에서 만난, 기꺼이 증언자가 돼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 구메지마의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를 제공해준 구메지마박물관 학예사분들, 건강한 역사의식을 자신의 삶에서 조용히 실천하고 계신 분들에게 제가 쓰려는 소설이 실경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 구메지마를 가해의 섬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염려 때문에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집필의 터닝 포인트는 무엇이었는가.
“소설 앞 부문 주민 9명을 학살하는 장면과 맨 마지막 구중회 가족을 학살하는 장면을 처음엔 쓰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끔찍하다는 표현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질 만큼 참혹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가 묘사한 것보다 더 끔찍하게 살해됐다고 생각한다. 폐쇄된 터널 같은 그 부분을 통과하고 나서야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다.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주민은 20명으로 기록돼 있다. 소설에선 참극의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충격으로 돌연사한 분들도 살려 넣었다. 그들도 제게는 전쟁과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구메지마를 답사할 때 그들이 자살한 장소도 둘러봤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제도의 작은 섬 구메지마가 배경이다.
“오키나와라는 곳은 피해자란 누구인가, 가해자란 누구인가에 질문을 던지는 공간 같다. 내년이면 70년이 되는 오키나와전 이후 오키나와는 지금까지 역사나 문학, 시민들의 반전평화활동을 통해 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 반복해 던지면서 분열과 반성의 시간을 정직하게 관통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구메지마 주민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였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었고, 어느 날 갑자기 군대가 섬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들 피해자 안에서 가해자가 생겨나는 불행이 발생했다. 피해자 가운데 가장 아래에 조선인이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 땅에서 조선인은 은 차별의 차별을 받는, 피지배자의 피지배자라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피해자 20명 가운데 조선인은 일말의 혐의조차 없었다. 식민지에서 온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피해자가 된 것이다.”
―기무라 대장으로 상징되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그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선악을 분명하게 구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영웅서사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조사를 해보니 선명하고 분명한 악이 있었다. 기무라 대장은 그리기 어려웠던 인물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생전 인터뷰 기사를 봤다. 태도, 자세가 일관된 것에 놀랐다. 그는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고, 본인이 누구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운 게 아니라 주민들이 찾아와서 누가 미군 스파이짓을 하는지 총대장인 자신에게 보고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자기 부정이나 분열이 없는 부동하는, 바늘구멍만 한 반성조차 없는 확신에 놀랐다. 지금까지 피해자와 관련된 소설을 쓰면서 접한 인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인물이었다. 악당의 내면이나 행동을 묘사하면서 소설적인 재미를 주기 위한 묘사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힘들어 계속 머뭇머뭇했다. 그것이 힘들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도 “너무도 분명한 악과 악행과 악인을 상상하는 것이,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을 어떻게든 끝맺으려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상상해야 했고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써야만 했다. 결국은 내가 나 자신에게 상상하게 했고 또 쓰게 했지만, 쓰고 싶지 않아서 저항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있다”(392쪽)고 적고 있었다.
―‘인간 사냥꾼’이 된 소년들의 모습은 상당히 생경하다.
“인간 사냥꾼 소년들이 실제로 존재했다. 자료를 조사하고 주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그들 인간 사냥꾼 소년들 역시 또다른 전쟁의 피해자였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들은 오키나와인이지만 철저히 군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나던 세대였다.”
―작품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갔던 인물은 누구였는지.
“인간 사냥꾼 겐의 엄마 다미다. 쓰고 보니 그녀는 구메지마의 슬픔을 상징하는 인물 같다. 구메지마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의 과부인 그녀의 아들 겐은 인간 사냥꾼이 됐다. 겐은 처음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자신의 행위가 어떤 행위인지 모르다가 나중에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다미는 인간 사냥꾼들과 군인들에 의해서 끔찍하게 살해된 아기를 끌어안고 살려내려 한다. 그것은 아들을 대신해 사죄하고 용서받고자 하는 행위다. 비록 상상 속 행위이지만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긴 아기를 품에 안고 살려내려고 애쓰는 다미의 행위를 쓸 때 구메지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졌다. 저 일을 소설화하며 구메지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내내 있었다. 속죄의식을 감내하는 다미의 마음, 그 마음이 제가 구메지마를 답사하며 만난 마음이며 지금 구메지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 다미는 자신의 아들 겐을 포함해 인간 사냥꾼들에 의해 한 살배기 아기가 잔인하게 피살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죽은 아이를 살리는 상상을 한다. “그녀는 아기의 살을 자신의 작고 거친 손으로 어루만지는 상상을 한다. 찢겨 벌어지고 너덜거리는 살이 정말로 만져지는 것 같다. ‘아기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 다미는 어릴 때 그녀의 어머니가 죽어가는 아기를 몇 날 몇 칠 품에 품어 살려내는 걸 봤다. 다미는 아기를 자신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데려다주기만 하면 자신이 죽은 아기를 살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아기는 어디에 있을까?’ 다미는 겐을 생각한다. 그러자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아기가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마당으로 나간다. 달을 바라보고 서서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불쌍한 내 아들 겐을 용서해 주세요. 벌을 내리려거든 제게 내려주세요. 제가 대신 벌을 받을게요.’”(276쪽)
―독자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싶었는가.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왜 쓰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누구에 대해 쓰고 싶은가 하는 질문이 계속 있었다. 쓰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자주 있었다. 주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써내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많았다. 이걸 써내야 원래 하려던 작업인 오키나와전 전후 그곳에 존재했던 조선인 군부와 위안부를 복원해내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는 주로 피해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오키나와를 공부하면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가해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피해의 경험을 한 대개의 사람들은, 집단일 경우 특히나, 자신 안에 피해자 DNA만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 것 같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나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소설은 바로 이 문제를 묻고 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게 필요했다.”
이 대목에서 김 작가는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일본인처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역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방 직후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불행하게 살았다. 그분들도 기억해야 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우리가 가해한 일본인 처들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사과하면서,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반성을 하고 사과를 한다는 점은 대단한 것 같다. 그것을 배워야 한다.”
―이번 작품은 작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우선 가해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소설 안에서 처음으로 하게 된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인 군부를 복원해내는 작업을 계속하게 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가입하고 싶은 동아리는 두 개였다. 합창 동아리와 문학 동아리. 친구와 함께 노래 시험을 치렀던 합창 동아리는 떨어진 반면, 시 한 편을 써서 선배들로부터 합평을 받는 문학 동아리의 경우 쉽게 합격했다. 생전 처음 시를 쓰고 합평을 받았다.
충남여고를 입학한 3월, 여고생 김숨은 교내 문학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시에 응모한 합창 동아리에서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학 동아리에 집중했다. 그것은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에게 새 세계였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열린 고교생 대상 백일장에도 나갔고, 시 부문에 참가해 상을 받기도 했다.
별도로 소설 작법을 배우지 않았다. 독서 역시 짧아 한국 근현대소설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졸업을 앞두고서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을 정도였다. 소설이란 이런 거구나. 쓰고 싶은 말을 연결해 쓰는 것이라면 쓸 수 있지 않을까.
대학 4학년 때인 1996년 어느 날, 김숨은 갈급하게 소설을 쓰고 싶었다. 무더웠던 여름날 밤, 자신의 방에서 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모나미 볼펜을 꽉 쥐고 하얀 노트에 썼다. 마치 시를 쓰듯. 시적인 정서와 여백이 많은 단편이었다. 첫 습작은 이듬해 대전일보 신춘문예의 당선작이 됐다.
1974년 울산에서 조선소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고 대전에서 자란 김숨은 1997년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1998년 단편소설 「중세의 시간」이 문학동네 신인상에 각각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본명은 김수진. 이후 장편소설 『철』,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떠도는 땅』, 『듣기 시간』, 『제비심장』, 『잃어버린 사람』 등을, 소설집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등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김현문학패, 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수가 적지 않는데.
“아마 어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오면 구조를 짠다거나 이야기를 정밀하게 배치하는 별도 과정 없이 바로 쓰기에 돌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충동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아마 오랫동안 시를 습작하면서 나름대로 익힌 쓰기 방식이거나 저만의 소설 쓰기 방식이 아닌가 싶다.”
―작품 세계를 독자들에게 조금 설명해 준다면.
“존재했던 곳에서 그 존재가 지워졌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뿌리 뽑혀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이식된 삶을 살아갔거나, 아니면 삶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들에 의해서 또는 역사에 의해서 왜곡된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많이 가는 것 같고, 그 연민의 감정이 일어날 때 그들에 대해 쓰게 됐다. 그러니까 지워졌거나 뿌리 뽑혀 이식됐거나 왜곡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여러 갈래가 있긴 하지만.(왜 그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저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있고, 그 일을 한 적도 있으며, 또 그 일을 좋아한다. 요즘 제가 소설가가 아니라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다면 삶의 현장이라는 자리에서 만났을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체화하고 소설화해 전공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작가의 작품 경향이나 특색,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중편소설 「듣기 시간」은 듣기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담겨 있고, 형식도 어느 정도 충족이 돼 애착이 간다. 소설에는 두 여자가 등장하는데, 한 여자는 자신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들려주지 않으려는 침묵하는 여자이고, 또 다른 여자는 여자의 침묵뿐만 아니라 그 침묵 너머에 있는 들려주지 않는 말까지 어떻게 해서든 발설하게 해 그것을 기록하는 여자이다. 소설을 쓰면서 듣기란 무엇인가, 라는 커다란 물음표를 통과해야 했다. 듣기는 겸손과 타인에 대한 존중, 관심, 애정이 필수로 요구되는 행위 같다. ‘믿음은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그리고 ‘우리가 듣기 시작하는 순간 사물들은 스스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할 것’이라는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에 동의한다. 소설가들이란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들어야 하는 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든가 방법은 무엇인가.
“저만의 글쓰기 방식으로 계속 쓰자. 뭔가 쓰고 싶은 것이 왔을 때 그것을 붙잡고 쓰자. 오해할 수도 있지만, 독자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생각하지 말자. 우선은 쓰는 제가 먼저여야 된다, 저에게서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쓰고 싶어야 한다.”
―작가로서의 꿈이나 작품으로 비전은.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제가 쓰는 소설이 아무것도 아님을 끝까지 망각하지 말자. (왜 그런가) 그래야 쓰고 싶은 것을 남의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다. 제가 쓰고 있는 소설을 깃털이나 지푸라기처럼 한없이 가벼운 무엇인가로 만들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한없는 쓰기의 자유가 주어진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작가의 미래에 대한 기대 역시 없어야 한다.”
아침 9시쯤 일어나서 커피와 식사를 한 뒤, 집중력이 좋은 오전에는 쓰고 있는 소설에 몰입한다. 오후에는 자료를 찾아 읽고, 밤에는 가능하면 조용히 머리를 비운다. 수사들이 쓴 책을 읽으며 영감을 받기도 하고. 밤 12시가 되면 다시 또 내일을 위해 눈을 감는다. 소설가 김숨의 24시간은 글쓰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마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
가끔 답사를 가기도 할 것이고, 현재 이야기를 쓰기 위해 소외되고 뿌리 뽑힌 이들을 찾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온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할 때, 그는 분주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이야기들은 가끔 반달 모양의 도끼가 돼 그의 집필 의지를 내리치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필사적으로 이야기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마음으로 쓰고 또 쓸 것이다. 용감하게. 용기 있게. 지치지 않고. 피철갑과, 광기와, 인권 유린이 난무하는 야만의 전쟁 한복판일 지라도.
“적군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엄마가 우는 젖먹이 자식의 입과 코를 제 손으로 덮어 질식시켜 죽이는 거⋯ 그게 전쟁이야. 나머지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말이야. 다시 총을 들 수 없을 만큼 부상이 심한 병사들은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는 게 전쟁이야.”(290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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