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스캔들 넘어 작품으로 깨어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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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미술관에서 작품을 급히 감상하다가도 발을 멈춰 지긋이 응시하는 그림이 있다.
이 화가 작품도 그중 하나다.
표현주의로 분류되는 그녀 작품 특징은 색채가 밝다는 점과 형태를 단순하게 그린 뒤 짙고 검은 윤곽선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비록 그녀가 그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남는 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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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해외미술관에서 작품을 급히 감상하다가도 발을 멈춰 지긋이 응시하는 그림이 있다.
이 화가 작품도 그중 하나다. 화풍이 독특해서이기도 하며, 이름을 보는 순간 그녀의 아픈 사랑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다.
점차 사랑의 스캔들보다 작품의 가치로 언급되는 화가지만, 뮌터와 얽힌 남성이 지나치게 유명한 게 흉터처럼 남아 있는 화가다.
그녀가 초보 화가 시절 뮌헨에서 만난 러시아 출신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가 그였다. 서로를 그린 초상이 남아 있다.
독일 바이마르 지역 무르나우에서 10여년 동거하며 둘의 작품 세계는 성숙해져 갔다. 1911년 친분 있던 작가들과 함께 '청기사파'를 설립하기도 했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결혼까지 약속한 이별이었지만, 칸딘스키는 별다른 연락이나 해명 없이 1917년 러시아 장군 딸과 결혼했다. 전형적인 '변절'이었다.
상처 입은 뮌터는 결혼하지 않고 우수와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1944년 칸딘스키가 죽은 뒤 18년을 더 살면서 그를 끝내 잊지 않았다. 칸딘스키 초기 작품 140여 점을 간직하다 뮌헨 렌바흐 미술관에 기증한 뒤 세상과 등졌다. 85세.
표현주의로 분류되는 그녀 작품 특징은 색채가 밝다는 점과 형태를 단순하게 그린 뒤 짙고 검은 윤곽선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한 번 본 뒤 잊지 못하는 작품은 '아침 식사, 새들'(1934)이다. 눈 내린 겨울 아침, 뒷모습 그녀가 서 있다. 식사를 준비하던 중 창밖 나무와 새들을 바라본다. 몇 조각 빵은 혼자 먹기에 충분해 보인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칸딘스키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풍경일까? 하지만 이젠 그녀를 이야기할 때 그는 버려야 한다. 비록 그녀가 그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남는 건 작품이다. 기억은 실체로 남지 않는다. 기억은 흔적일 뿐이다. 자꾸 실체로 여긴다면 시나브로 환각에 빠질 수 있다.
작품에 드러난 밝은 색과 단순한 선을 다시 본다. 그녀는 사랑에 초연한 자세로 사랑을 그렸고, 고통에 침묵하는 태도로 고통을 칠하며, 자신이 정한 길 위에서 오롯이 붓을 들었다.
삶은 소음과 악취를 동반한다. 이 둘이 없는 삶은 없으며, 귀나 코를 막아도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는 대신 '괄호'를 만들어 그 안에 집어넣는 게 한 방법이다. 삶에서 괄호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칸딘스키의 변절과 변덕을 생각하면 뮌터에게 그는 소음 혹은 악취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그의 작품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건 그를 괄호 안에 넣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매달리거나 세상에 폭로하지 않고 조용히 '간직'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붉은 커튼은 닫히지 않았다. 뮌터는 '사랑을 잃은 여자'가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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