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온도 딱 '1℃' 올라가자 서해는 '야광충' 명소 됐다
낮에는 백상아리를 피해 수영하고 밤에는 바닷물이 푸른색으로 빛나는 바다. 머나먼 열대지방이 아니라 2024년 지금 한반도 해변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5월 22일 "올여름 우리 바다의 수온은 평년 대비 1℃ 내외 높을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1℃,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온도 차이가 당신의 여름 바캉스를 생각보다 더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 서천 가는 길인데 오늘 있나요?"
"어제는 많았는데 오늘은 어렵겠는걸요."
"월하성 쪽에선 보일 수도 있어요."
지난달 6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정보가 공유되는 이 채팅방에는 1400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야광충을 보는 겁니다.
야광충(Noctiluca scintillans)은 몸길이가 1mm도 채 안 되는 동물성 플랑크톤입니다. 바다에 무리 지어 둥둥 떠다니는데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푸른빛을 내는 특성이 있어요.
캄캄한 밤 반짝반짝 빛나는 환상적인 모습 덕에 열대 바다를 주 무대로 한 영화 '모아나'나 '아바타' 등에서 보이죠. 이 야광충을 찾아다니는 '헌터'들이 최근 충남 서천의 한적한 바닷가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몰디브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야광충을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 지역이 야광충 명소가 됐기 때문입니다.
올여름 평소처럼 햇볕이 따사로운 바닷가에서 물놀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천 비인해변에서 촬영한 야광충 사진 한 장을 보고 바캉스 계획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 서천에 도착했습니다. 서천에서도 특히나 야광충을 잘 볼 수 있는 장소가 몇 곳 있습니다. 비인해변, 월하성, 춘장대, 다사항 등이 꼽히죠. 여기선 4월부터 10월까지 야광충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게 야광충 헌터들의 팁입니다.
● 기후변화가 불러온 여름 해변의 '아름다운 비극'
최근 한국에서 야광충의 대발생이 자주 관측되는 건 기후변화 탓입니다. 사실 야광충은 적조를 일으키는 플랑크톤입니다. 수온이 높은 시기 파도가 잔잔한 내륙 인근에서 대량 출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한반도 인근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야광충이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겁니다.
녹조나 적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와 빈도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2003년부터 2020년 사이 전세계 153개국에서 발생한 126건의 녹조·적조를 분석한 결과 녹조와 적조의 빈도는 59.2% 잦아졌고 넓이는 13.2% 확대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와 미국 플로리다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논문에서 "녹조와 적조의 증가세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doi: 10.1038/s41586-023-05760-y)
비인해변에 도착해 넘실거리는 파도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오늘 밤 야광충을 보긴 글렀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야광충이 번성한 바다는 낮에 붉은 띠가 둘러싼 것처럼 보입니다. 이날 바다는 회색빛을 띠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 근처 카페에 들어가자 주인장인 김상덕 도예가가 반갑게 맞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밤마다 해변을 누비며 야광충을 관찰하는 은둔 고수였습니다. "매일 야광충을 마중 나간다"는 게 김 도예가의 표현입니다.
"어제 오시지. 야광충이 정말 잘 보였는데요! 야광충이 잘 보이는 날에는 낮에도 바다에 붉은 구름처럼 표시가 나요. 오늘은 파도가 굵어서 잘 안보일 거예요. 내일은 보일 것 같네요. 야광충이 많을 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어제도, 내일도 잘 보일 야광충이 하필 이날만 안보이다니. 김 도예가는 "요즘 들어 가게에 야광충 보러 온 손님들이 많다"면서 "그래도 야광충을 보는 건 사람 뜻대로 안 되는 일이라 못 보는 경우도 있다"고 위로했습니다.
김 도예가의 안내를 받아 야광충이 잘보인다는 지역을 쭉 돌아봤습니다. 그렇지만 어둑어둑해진 저녁 바다에도 야광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캉스는 아쉽게 마무리됐지만 야광충을 보지 못한 게 바다엔 좋은 일입니다. 야광충은 독성이 없는 무해성 적조긴 하지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홈페이지에는 "야광충이 대발생하면 그 지역의 해양생물이 호흡하기 어려워 대량 폐사하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연안 지역의 부영양화 탓에 앞으로 야광충의 대발생이 더 큰 규모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 20년 치 변화가 1년에… 기후변화 '티핑 포인트'일까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대신 야광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바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생긴 새로운 바캉스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바다엔 더 큰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23년은 세계 기후 과학자들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던 한 해였습니다. 2023년 3월 14일부터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가 매일매일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웠습니다. 이 기록은 2024년 7월 2일에서야 끝이 났습니다.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가 전년보다 0.02℃ 낮은 날이 나왔습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와 미국 메인대가 개발한 기후재분석기로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는 2022년보다 0.2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NOAA의 해양학자 그레고리 존슨은 CNN과 의 인터뷰에서 "이는 기후변화가 시작된 이래로 점진적으로 상승하던 해수면 온도 변화 20년 치를 단 1년 만에 이룬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흔히 작은 변화들이 쌓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변화를 초래하는 임계점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릅니다.
2023년부터 관측된 가파른 해수면 온도 상승은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일까요.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지난 7월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현시점에서 지구 기후가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장기적인 변화 양상을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해수면 온도가 크게 상승한 데에는 2023년 6월부터 시작된 엘니뇨의 역할이 컸습니다. 엘니뇨는 무역풍이 약화되면서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입니다. 특히나 이번 엘니뇨는 관측 사상 다섯 번째로 강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6월 3일 "6월부터 8월 사이 엘니뇨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중립 상태(엘니뇨도 라니냐도 아닌 상태)에 이르거나 라니냐로 전환될 확률이 50%"라고 발표했습니다.
라니냐는 엘니뇨의 반대로 무역풍이 강화돼 동태평양의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라니냐 시기엔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가 낮아집니다. 2024년 말까지 엘니뇨가 다시 발달할 확률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는 게 WMO의 예측입니다.
예 교수는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후변동에 해당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후변화는 그보다 더 장기적인 경향성입니다. 무서운 사실은 해수 온도 상승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 교수는 "현재 해수 온도 상승은 지구온난화에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있다"면서 "당장 탄소중립을 이룬다 하더라도 한동안 바닷물 온도는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열받은' 바다에는 백상아리보다 더 무서운 재난이...
엘니뇨와 라니냐의 주 무대가 지구 반대편이다 보니 해수면 온도 상승이 먼 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수면 온도는 동아시아에서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WMO가 4월 발표한 '아시아 기상 현황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쿠로시오 해류 북단과 북서 아라비아해, 필리핀해, 일본 동쪽 해역의 해수면 온도 상률은 전 세계 평균보다 3배 더 빠릅니다.
한인성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은 7월 5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표층 수온의 상승세는 이례적으로 빠른 편"이라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동아시아 지역이 여름철 강한 복사열을 받은 데다가 저 위도로부터 고위도로 이동하는 대마난류가 강해지며 따뜻한 해수가 지속적으로 유입된 것을그 이유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5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4년 여름 우리 바다의 수온은 평년 대비 1℃ 내외로 더 높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생물에게 1℃란 생각보다 큰 차이입니다. 인간의 체온이 정상 온도인 36.5℃에서 1℃만 올라도 오한이나 근육통이 생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죠. 그래서 해수면 온도 상승의 여파는 생태계에 가장 먼저 찾아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연구소는 6월 25일 "2024년 여름 동해안에서는 백상아리와 같은 대형 상어류의 출현 빈도가 높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수온 상승으로 동해안에서 방어, 전갱이 등 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증가하면서 대형 상어류가 먹이를 쫓아 동해 연안까지 찾아온다는 겁니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김 양식이 어려워진다거나 제주도에서 갈치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기후가 바뀔 겁니다. 허창회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석좌교수는 7월 4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해수면 온도 상승에 의해 한국에 앞으로 더 강한 태풍이 찾아온다"면서 "이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말했습니다.
허 교수는 그 이유로 태풍이 발생하는 지역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간 태풍은 필리핀해에서 주로 발생했습니다. 태풍이 성장하기 위해선 우선 그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약 26℃ 이상으로 유지돼야 하기때문이죠. 그런데 해수면 온도가 점차 상승하며 위도가 높은 대만 인근 해역도 태풍이 성장하기 위한 해수면 온도 조건을 충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 인근, 심지어 위도가 더 높은 바다에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22년 발생한 태풍 '힌남노'입니다. 이 태풍은 북위 25도 이북에서 발생한 첫 번째 슈퍼태풍으로 꼽힙니다.
허 교수는 "기존 태풍은 한반도 인근 해역에 도달하면 원래 강도의 70% 수준으로 약화되는 패턴을 보였다"면서 "태풍이 해수면 온도가 낮은 중위도에 이르러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이었는데 최근 한국 주변 바다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약화되지 않은 강한 태풍이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해수면 온도가 더 오르면 엘니뇨나 태풍 자체의 패턴 또한 바뀔 겁니다. 지구 온도가 바뀌는데 왜 기후가 안 바뀌겠어요. 대만 북쪽 해역에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날이 오면 그때가 바로 기후변화가 티핑 포인트에 도달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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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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