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아시아 2등 바가 있다…“쓰레기 줄이려 탄산수도 만들어 써요”

박미향 기자 2024. 8.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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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시아 베스트 바(bar) 50’ 2위 ‘제스트’
서울에 있는 바 ‘제스트’의 칵테일.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50’ 누리집 갈무리

홍콩에 한국 바텐더 ‘에프(F)4’가 떴다. 지난 7월16일 ‘로즈우드 홍콩’ 호텔에서 열린 ‘2024 아시아 베스트 바(bar) 50’(이하 ‘에이50비비’) 시상식에서 2위를 기록한 ‘제스트’의 공동대표 겸 바텐더 4명 얘기다. 김도형(34), 우성현(33), 박지수(33), 권용진(31)이 그 주인공이다. 제스트는 지난해 열린 ‘월드 베스트 바 50’에서도 18위를 했다. ‘에이50비비’는 ‘미쉐린 가이드’ 권위에 버금하는 미식 행사를 주관해온 150년 역사의 영국 미식·외식 미디어그룹인 윌리엄 리드사가 2012년에 시작한 ‘월드 베스트 바 50’ 시상식의 아시아 버전이다. 국제적인 미식 행사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제스트가 궁금해진다. 지난달 25일 김도형 바텐더를 제스트에서 만났다. 다른 대표들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제스트’의 공동 대표 겸 바텐더들. 왼쪽부터 박지수, 권용진, 우성현, 김도형씨. 박미향 기자

“‘지속 가능성’이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입니다. 제스트는 ‘제로 웨이스트’의 줄인 말이죠.”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친환경적인 실천 철학을 말한다. 2020년 12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문 연 제스트는 독특한 콘셉트로 애주가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더구나 통상 바들이 지하에 살림을 차리는 데 반해 제스트는 1층에 자리 잡았다. “1층에 연 건, 신의 한 수였죠. 창이 넓어서 지나던 손님들의 호기심이 발동했죠. 주말엔 낮 3시에 문 여는데, 이것도 장점이 됐어요.” 하지만 외적 조건이 아무리 맞춤해도 맛이 형편없다면 식음료업장의 성공은 보장하지 못한다. 제스트의 맛은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풍미가 ‘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을 듣는다. 이런 맛 탄생에는 ‘제로 웨이스트’ 관점이 주요하게 작동했다.

이들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칵테일 재료 대부분을 직접 만든다. 심지어 탄산수조차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음료 캔, 탄산음료 페트병인데, 이를 없애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죠. 토닉 워터, 진저에일, 소다, 콜라까지 직접 만듭니다.”(우성현)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고, 고민이 컸고 쓰레기통 앞에서 회의한 적도 있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새벽 3~4시까지 함께 고민한 적이 많았죠.”(김도형)

서울에 있는 바 ‘제스트’의 직원들.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50’ 누리집 갈무리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는 4명이 각자 추구하는 바를 얘기하면서 튀어나온 단어들이 단초가 됐다. 우씨는 “‘미니멀’ ‘시즈널’(테마 키워드), ‘로컬리티’ ‘커뮤니티’ 등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는 단어가 ‘지속 가능성’ ‘제로 웨이스트’였다”고 말한다. 이들 4명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칵테일에 올리는 가니시 민트 한 장에도 정성을 쏟았다. 김씨는 “농장을 직접 방문하고, 생산자와 연계해 재료를 공급받는다”며 ‘준혁이네’를 언급했다. ‘준혁이네’는 ‘미쉐린 가이드’ 별점 레스토랑 셰프들도 애용하는 친환경 식재료 농장이다.

요즘 매주 ‘준혁이네’를 가는 이는 박씨다. 그는 “우리가 쓰는 재료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그가 설명을 이었다. “같은 허브라도 (칵테일) 향을 좀 가볍게 하려면 새순을 따고, 거친 향을 넣으려면 좀 오래 자란 것을 땄다든가 하는 거죠.” 손님 응대 센스도 바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권씨는 “손님들은 ‘맛있는 거 해주세요’라고 간단하게 말하는데, ‘신 것’ ‘꽃 향’ ‘단 것’ 등을 던져, 손님의 취향을 빠른 시간에 잡아낸다”고 말한다.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50’ 시상식에서 ‘제스트’가 2위로 호명되자, 기뻐하는 멤버들. 박미향 기자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50’ 시상식에서 ‘제스트’가 2위로 호명되자, 기뻐하는 멤버들. 박미향 기자

10~12년 경력의 바텐더인 이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김도형·우성현·박지수씨가 ‘앨리스 청담’(‘아시아 베스트 바 50’ 46위)에서 함께 일했고 김도형씨와 권용진씨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자신만의 바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이들은 제스트를, 본인들 포함해 직원 수가 15명인 규모 있는 바로 성장시켰다. 꿈을 이룬 셈이다.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 방문도 부쩍 늘었다. 김씨는 이달에 20여일 외국 출장을 계획하며 외국 바들이나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을 통해 제스트를 더 알리려 한다. 우씨는 직원들과 동반 성장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박씨는 식재료 연구를, 권씨는 메뉴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제스트 옆 건물에 문을 여는 연구소는 이렇게 제스트의 ‘다음’을 준비하는 본진이 된다.

권씨가 말했다. “‘지속 가능성’에 공감하는 손님이 느는 게 보람되고, 이게 제 삶을 바꿔주고 있죠. 요즘은 환경 뉴스를 더 봅니다.” 이들의 미래 ‘제로 웨이스트’가 여전히 중심에 있을 예정이다.

홍콩/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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