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훈 "배우되겠다는 꿈, 목숨 걸 정도로 절실했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이제훈과는 영화 '파수꾼'과 같은해 개봉한 '고지전'의 신일영 역을 맡아 대중들앞에 혜성 같은 모습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2011년에 첫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당시 큰 주목을 받았던 독립장편 영화인 '파수꾼'과 여름 시장 텐트폴 영화였던 '고지전'을 동시에 성공시키며 주요 남우신인상을 휩쓸었던 그는 꽤 과묵하고 차분했지만 눈빛 속에 배우로서의 성공을 향한 욕망은 숨기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데뷔 당시 여성팬들의 폭발적 응원을 받았다면 바로 이듬해 선보인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첫사랑의 쓰라린 추억을 가진 대부분의 남성관객들에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또래 배우들 중 충무로 기대주로 우뚝 섰다.
이어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2016)과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하며 대중과 평단의 신뢰를 서서히 쌓아올렸다. 이어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2020)과 '도굴'(2020) 등 장르적 색채가 전혀 다른 작품들을 연달아 선보이며 느와르 장르와 경쾌한 범죄물에서도 충분히 작품을 리드할 수 있다는 사싷을 입증하며 영화와 드라마 모두 또래 배우 중 캐스팅 1순위로 꼽히게 된다. 이어 내놓은 SBS드라마 '모범택시'(2021)와 '모범택시2'(2023)는 각각 16%와 21%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에게 2023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겼다.
필모그래피만 살펴 봐도 숨 쉴틈 없이 전력 질주를 해온 것이 느껴지는 그가 여름 대목에 영화 '탈주'를 내놓고 무한 질주 중이다. 영화 '탈주'는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에서 근무해오며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이 북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남쪽으로의 탈주를 시도하는 스토리를 그렸다. 탈주를 시작하는 규남과 그를 쫓는 오랜 인연의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독한 추격전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이제훈은 남으로의 탈주를 위해 목숨을 거는 규남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기간 내내 식단 조절과 체력 단련을 하며 58kg까지 감량하며 인물을 표현했다. 규남의 탈주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맨땅을 포복하거나 달리는 차량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가 하면, 늪속으로 전신이 빠지는 모습까지 표현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해 촬영에 임했다. 결국 무릎에 탈이나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한 상황이지만 그에게 후회는 없다.
이제훈은 규남으로 살아온 4개월을 회상하며 "규남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이상향에서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이다. 저 또한 배우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에 배우가 되기 위해 학교(한예종)에 새로 갔다. 남들은 취업도 하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때 저는 나름 불투명했다. 규남은 진실로 원하는 일을 고민했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곳에 가서 살고 싶은 욕망을 위해 모든 걸 걸었다. 저 또한 연기하는 일에 규남처럼 목숨을 걸고 했던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을 향한 굳은 의지를 밝혔다.
- 구교환과 호흡하는 것이 꿈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에 이루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 정말 매력 넘치는 배우이신데 촬영할 때는 순수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현상이 물티슈를 꺼내서 손을 닦고 다시 그 물티슈로 비둘기 같은 형체를 만드는 장면은 한커트로 표현된 장면이다. 너무 놀랍더라. 현상과 규남은 어릴 때 가족의 일원 같은 관계다. 형과 동생 같은 사이인데 그 장면을 통해 보여주더라. 굉장히 유니크하게 창작하는 모습에 놀랐다. 구교환 형은 현상을 냉철하고 여유로운 백조 같은 모습에서 규남을 쫓을 때는 사자 같은 모습을 선보였다. 인간적으로는 천진난만한 사람이다. 구교환 배우를 따르면서 또 좋아했다.
- '탈주'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오랜 시간 인연이 있던 영화사 램프 박은경 대표가 시나리오 제안을 해주셨다. 또 영화 '점쟁이들' 당시 신인작가였던 권성휘 형과 저도 신인일 때 만났기에 인연이 있었다. 성휘 형의 글을 읽는데 이 작품이 스크린에 보여지게 된다면 관객들이 웃으며 극장을 나오실 것 같았다. 그런 목적으로 글을 읽었기에 연기를 열심히 해서 좋은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영화이니 추격액션답게 긴장감을 가지고 보시기를 바랐다. 많은 스태프분들과 한땀한땀 계획하고 공들여서 만들었다.
- 규남에게 현상은 어떤 존재인가.
▶ 규남이 어릴 적 아문센이라는 책을 준 사람이 현상이다. 규남에게 꿈을 꾸게 해준 책이었고 현상 또한 그런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규남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향, 비록 실패하더라도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을 들게 한 것이 현상이었을 것 같다. 현상도 마찬가지로 규남을 쫓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쳤던 시절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현상 입장에서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살고 있는데 목숨을 걸더라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규남을 보면서 자신에게 투영해봤을 것 같다. 단순히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닌 맞닿아있는 지점이 끈끈한 설정이었다고 본다.
- 홍사빈이 연기한 동혁과 규남의 관계도 영화를 끌어가는 큰 힘인데.
▶ 척박하고 먹는 것이 부족한 현실이고 스스로도 굶주려 있는 상황임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이 규남에게 있었다. 저 또한 마실 물은 한병 있는데 두 사람이 있다면 저 혼자 당당히 그 물을 마시지 못할 것 같다. 상대의 목마름이 가신 후에 내 목마름을 채워야 마음이 좋을 것 같다. 규남에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동혁을 바라보는 지점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애초 탈출 계획과 반대로 데려가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가족을 만나러 남으로 가려는 동혁의 절박함에 공감이 가고 자신이 투영됐기에 함께 가야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생긴 것 같다.
- '탈주'는 스토리라인이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규남이 판문점을 넘어 남으로 향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을 투영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왜 배우를 왜 꿈꾸게 됐는가' 이 생각부터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오랜 시간 봐오면서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20대 초반부터 꿈을 꾸게 됐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배우 될거야'라는 목표 하나로 살아왔다. 주위에서는 응원보다 걱정을 했다. 말리기도 했다. 보장된 삶도 없고 특별한 자격증도 없고 누군가 선택해줘야 하는 일이기에 말리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크다고 해도 저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20대 중반에 학교(한예종)에 새로 갔다. 남들은 취업도 하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때 저는 나름 불투명했다. 규남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일을 고민했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곳에 가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저 또한 연기하는 일에 규남처럼 목숨을 걸고 했던 것 같다. 집안도 풍족하지 않았고 저에게 기대하는 가족분들도 있었지만 끝내 꿈을 향해 나아갔다.
- '탈주'에서 가장 인상적 장면 중 하나는 마른장작을 연상시키는 규남의 깡마른 몸이다. 규남이 도주 경로 탐색을 위해 밤마다 휴전선 인근을 달리는 장면 등과 현상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며 전력질주하는 장면 등은 액션신 못지 않은 보기 드문 명장면으로 탄생했다. 60대 중반의 몸무게를 58kg까지 감량한 걸로 유명하다. 규남을 표현하기 위해 목표 삼은 지점과 노력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인가.
▶ 규남 캐릭터 자체가 지향하는 목적이 너무 분명했다. 타협이 없었다. 그것에 무조건 도달해야 했다. 규남이 처한 상황이 힘들고 먹는 것이 풍족하지 않다보니 스스로 말라가야만 했다. 극단적 식단 조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쓸수 있는 에너지를 다 쓰다보니 머리가 핑핑 돌더라. 그럴 때 당분을 섭취하면서 정신이 들게 해야 하는데 '이게 맞는 것인가' 싶을 때가 있었다. 규남은 먹을 게 없는 상황 아니겠나. 이제훈이 연기하는 순간과 규남이 처한 상황 사이에 괴리감이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큰 스크린을 통해서 잘 전달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제가 기술적이게 연기를 잘 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능력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것이 잘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갈아넣지 않으면 규남이라는 인물을 진실되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계에 더 몰아붙이려 했다. 규남이 달릴 때 바로 뒤에서 총알이 빗발친다. 이때 '내가 여기서 지치면 끝이다'라고 위기상황을 느끼며 달렸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작품을 찍는 것에 대한 목표 지점은 분명했다. 3~4달 가까운 프로덕션 기간 동안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밀어 넣었다. 이만큼 나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인 작품은 없었다. 이번 작품이 아마 한계치까지 나를 몰아붙인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 체중감량 과정에서 식단은 어떻게 했나.
▶ 단백질 쉐이크나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에너지를 쓸수 있을 정도로만 소량 섭취했던 것 같다. 영화의 타임라인이 2박 3일 혹은 3박 4일안에 진행되는 내용이다보니 물을 마실 때도 최소치로 마시려 했다. 물 한잔이 규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 규남이 비무장지대를 달리는 장면 등이 스타일리쉬하게 표현됐더라. 실제 촬영할 때 장시간 뛰다 보면 체력소모도 컸을텐데.
▶ 사실 두 다리로 뛰어서 차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가 뛰는 장면의 앞모습을 찍으려면 카메라를 매단 차량이 앞에서 달리고 제가 그 차를 따라가야 한다. '차를 따라가지 않으면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하며 미친듯 달렸다. 사실 나름 체력도 좋고 건강관리도 잘 하면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정말 힘들고 지치더라. 픽 쓰러지더라. 결국 촬영이 끝나고 나서 무릎이 성치 않다. 이렇게까지 혹사하면서 찍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계단을 장시간 내려오면 아프다. 속이 상하기는 하지만 '탈주'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액션을 할 때 '탈주'만큼 몰아붙이며 할 수 있을까? 잘 상상이 안된다.
- 극의 배경을 북한으로 선택했던 이유가 특별히 있나.
▶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가 극명하고 드러나는 배경이 북한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프리카 난민들을 대입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었을 것 같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당장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날아가는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몇시간을 날아가서 탈출한 스토리도 있지 않나. 우리는 한국인이기에 북한 설정에 더 공감하게 되는데 세계 다른 곳 어디라도 이 이야기에 공감될 부분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 북한 사투리 연습은 어떻게 했나.
▶ 저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준 친구가 실제 함흥에서 태어나 20대 초에 군 생활을 한 사람이다. 실제로 DMZ를 넘어온 친구에게 사투리 전수를 받았다. 실제 그렇게 탈북한 분들이 있고 저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준 언어 훈련사와 함께 탈북한 다른 분들도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보셨다. 새로운 꿈을 꾸고 인생을 살아가는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대충 연기할 수는 없었다.
- '시그널', '박열' 등 전작들이나 '모범택시'에서 모두 정의의 아이콘 같은 캐릭터들을 연달아 맡았다. 작품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는 독이 될수도 있지 않나.
▶ (시나리오나 대본이) 좋은 이야기를 갖췄다면 제가 선택하는 것에 주저함은 없다. 정의로운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도 선이 있으면 반대되는 악이 존재할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캐릭터들도 있을 거다. 저 또한 다양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꼭 정의로운 캐릭터가 아닌 모호한 인물이라던가 하는 경우도 충분히 도전하고 싶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저를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관객분들께 드리고 싶다.
- 액션신 중 가장 고됬던 장면은.
▶ 늪에 빠져서 침수되고 가라앉는 신이 힘들었다. 기술적으로 늪을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제가 실제로 연기로 표현해야 했다. 스스로 잠식되는 몸을 표현해야만 했다. 물이 저절로 들여마셔지니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감정을 상상하며 잠겨 있었다. 실제로도 공포감이 꽤 컸다. 늪의 뻘들은 스태프분들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미숫가루를 만들어서 그걸 삼킬 수 밖에 없었다.
- 데뷔한지 17~8년차가 됐다. 지금도 꿈꾸는 일이 있나.
▶ 사람들마다 꿈에 대한 생각은 다를 것이다. 저는 아직 뭔가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아직도 꿈 꾸고 있다. 예전에는 배우가 되고 큰 스크린에 내가 나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며 배우의 한길을 달려왔다. 지금은 계속해서 배우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그 불안감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작품마다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받지 못하는 순간들에 대해서도 감내해야 한다. 내적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내 작품을 봐주신 관객분들께 끈임 없이 행복과 좋은 기억을 안겨드리고 싶다. 저는 이 꿈 하나만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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