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1000만 관중' 코앞인데…육성 없는 여자야구
“더 뒤로 가, 오늘 롱볼로 캐치볼 할 거야!”, “2루로 던져! 더블 플레이 타구다!”
지난달 27일 찾은 창원 88야구장은 오전부터 우렁찬 기합 소리로 가득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창원시 여자야구단 ‘창미야’ 선수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가 되면 선수들은 프로 못지않은 열의로 훈련에 나선다. 3루 라인을 따라 서서 스트레칭 뒤 후 러닝 체조, 캐치볼, 펑고(수비 연습용 타구) 받기, 청백전 경기 순으로 연습을 진행한다.
창미야는 2020년 7월에 창단했다. 소속 선수는 42명으로, 10살부터 60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포진했다. 창원, 통영, 부산, 서울 등 여러 지역 출신으로 이뤄진 전국구다. 선수별 구력(球歷) 역시 신입에서 14년 차까지 다양하다. 창미야는 올해에만 4명의 국가대표(박민성, 박주아, 조민지, 이슬)를 배출할 정도의 실력파 구단이다. 34팀이 출전한 선덕여왕배 전국 여자야구대회, 28팀이 출전한 제1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 등 전국 여자야구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는 등 빼어난 성적을 자랑한다.
성적이 증명하듯 이들의 열정은 프로 못지않다. 창미야 소속 유격수 겸 포수 오소영(46) 씨는 “다들 무릎, 어깨 등 안 좋은 곳이 있지만 야구장에 나오면 신나서 플레이한다. 오히려 비가 와서 야구를 못 하게 되면 더 아파한다”고 말했다. 창미야 소속 우완투수 박현주(31) 씨는 “야구 룰이 책 한 권으로 나올 정도로 복잡한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친다는 점이 묘미다”고 설명했다.
창미야는 창원시 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으로 프로 선수의 특타 등을 받는다. 사회인야구단에선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혜택이다. NC 다이노스 박민우, 전 롯데 자이언츠 최준석 등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교육에 나섰다. 오 씨는 “야구협회에서 팀을 만들었다 보니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구장이 있다는 점과 항상 도와주시는 코치·감독님이 있다는 것 만해도 (장점이) 크다”며 “다른 팀은 운동장, 코치 섭외가 힘든 걸로 안다”고 전했다. 박 씨는 “전국대회는 익산, 화성 등 장거리가 많은데 버스를 지원받아 컨디션 조절에 용이하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구단이 창미야와 같은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여자야구 자체는 여전히 부족한 지원에 시달린다. 애초 지원을 받아야 할 리그와 구단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 씨는 “다른 스포츠는 시도 대항 경기가 주기적으로 열리지만 여자야구는 아예 그런 게임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선수를 육성해 갈 수 있는 코스가 없다”며 “재능 있는 아이들이 진로를 고민 안 할 수 있게끔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자야구의 인지도 역시 다른 종목에 견줘 떨어진다. 박 씨는 “(여자)야구한다고 말하면 ‘소프트볼을 한다는 거냐’, ‘연식구로 시합 하느냐’고 되물어보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스포츠는 남자부, 여자부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여자야구는 유독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여자야구 선수는 리틀야구 이후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매우 부족하다. 프로리그가 없을뿐더러, 여자 선수로만 구성된 리틀야구단 자체가 없어 전문적으로 여자야구 선수를 육성하기 어렵다. 여자 유소년 야구를 키우고자 ‘김라경 특별법(리틀야구 나이 제한을 중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으로 연장)’까지 제정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 씨는 “진로를 정할 때 여자야구는 실업·프로팀이 없다 보니 다른 종목으로 넘어가는 선수가 많다”며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엘리트 코스를 만드는 것이 현재 여자야구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소년·프로를 대신할 사회인야구단 지원도 없다시피 하다. 한국 여자야구연맹에 따르면 전국의 여자 사회인야구단 수는 총 49팀으로 서울 16팀, 경기 10팀, 부산 2팀 등 전국에 걸쳐 운영된다. 하지만 49팀 중 창미야와 같이 지원받는 팀은 총 9팀으로, 창미야와 창원플러스를 제외한 7팀은 전국대회 시 교통비나 숙식비 정도의 미미한 수준의 지원을 받는 수준이다.
한국프로야구(KBO)는 올해 상반기에만 역대 최다 관중 600만 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사상 첫 관중 10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13일 롯데 자이언츠는 비수도권 역대 최초, 한국 프로스포츠 역대 2번째로 누적 3000만 관중을 기록하는 등 프로야구의 인기는 매년 열기를 더해간다. 아쉽게도 국내의 야구 인기는 여자야구로까지 녹아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여자야구는 2017년에 이어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동메달을 거머쥐는 등 국내·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체계적 육성에서부터 어려움을 떨치기 힘들다.
야구 선진국인 일본은 소프트볼, 연식 야구를 비롯해 엘리트 야구 또한 남녀가 함께 발전해 왔다. 대학교에 여자야구팀이 설립돼 스무 살이 넘어서도 야구를 할 수 있으며, 한신 타이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 프로 구단들이 레이디스 팀을 창단에 여자야구단을 후원하고 있다. 국내 여자야구계에도 이와 같은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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