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약속을 겨눈 뜨거운 총구 '리볼버'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오승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리볼버'는 약속한 대가를 받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 한 여자의 이야기다. 범죄 액션물이지만 총을 쏘는 장면은 손에 꼽히고, 복잡한 설정이나 묵직한 여운도 없다.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뜨겁게 타오르고 차갑게 전진할 뿐이다. 오 감독은 그 시작점에 '칸의 여왕' 전도연을 세웠다.
영화는 유흥업소의 불법 행위를 묵인한 경찰 조직의 비리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2년을 보낸 전직 형사 수영(전도연)이 출소하면서 시작된다. 잘 나가던 수영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된 이유는 2년 전 연인이자 직장 상사인 임석용(이정재)이 연루된 클럽 마약사건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됐기 때문.
사건과 관련된 투자회사 이스턴 프로미스의 실세 앤디(지창욱)는 수영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면 돈과 분양받은 아파트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아파트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미스테리한 인물 윤선(임지연)까지.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직감한 수영은 앤디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전도연의 연기에 의지하며 나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 감독의 전작 '무뢰한'(2015)에서 그랬듯 전도연의 연기는 영화의 뼈대를 감싸고 채워나가는 살이 된다. 영화의 시작인 교도소 출소 장면에서 전도연은 차가운 눈빛과 무표정한 야윈 얼굴,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로 수영의 뜨거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오 감독은 수영을 탁월하게 표현한 전도연에 대해 "길게 논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신의 주요점을 명확하게 짚어 내는 베테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 감독의 말처럼 전도연은 출소 후 먼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수영의 상실감과 분노를 무표정 위로 밀도 있게 쌓아간다. 그런 수영이 감정을 폭발하는 순간 전도연은 뜨거운 총알을 쏜 '리볼버'가 됐다.
전도연의 연기가 '엔진'이라면 지창욱과 임지연의 연기는 탄력있게 구르는 바퀴 같다. 수영을 배신한 앤디 역의 지창욱은 이번 영화에서 과감한 연기 변신을 했다. 대사의 70%인 욕을 찰지게 내뱉고, 죄책감 없이 약자를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러다가 강자 앞에선한없이 비굴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동정을 호소한다. 그간 작품에서 순수하고 바른 이미지의 청년을 연기해온 그가 빌런 앤디를 만나면서 '리볼버'는 다채로워진다.
임지연은 어둡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에 화려한 색채를 불어넣었다. 임지연이 맡은 윤선은 극 초반에 돈을 목적으로 수영에게 접근하다가 그에게 점차 동화돼 조건없이 도와주는 인물로 변한다. 윤선이 수영의 조력자인지 배신자인지 알 수 없게 관객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는 임지연의 연기는 세밀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카랑카랑 목소리로 펼치는 임지연의 '언니' 애드립은 영화의 볼거리다.
조연들의 앙상블도 빼놓을 수 없다. 김준한은 이익을 위해 과거의 동료도 정의도 버리는 비리 형사 신동호를 연기했다. 조 사장 역의 장만식은 지연과 함께 이야기에 유머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김종수는 날뛰는 앤디의 뒤를 수습하고, 눈엣가시처럼 구는 수영은 언제라도 해하려는 본부장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고, 전직 마담 역의 김혜은은 극에 날카로운 긴장감을 더했다.
이정재·정재영의 특별출연도 볼거리다. 두 배우 주연은 아니지만 비중있는 임석용, 민기현 역을 각각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지난해 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故) 이선균 배우의 아내 전혜진은 앤디의 누나이자 이스턴 프로미스의 대표 그레이스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리볼버'는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을 활용해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렇다 보니 클라이맥스로 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블랙 코미디로 꾸며진 마지막 스퀸스는 이를 영리하게 상쇄한다. 다만 열린 결말 방식은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리볼버'는 오는 7일 개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zooe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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