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대북 수해 지원, 북한이 받을까?
남북, 서로 ‘깜짝 제안’, ‘반전 수용’ 정치적 고려도
아웅산 테러, 천안함 피격 직후에도 수해는 지원
정부 제안에 미국, 야당, 민간단체 모처럼 “환영“
정부 제안, ‘북 주민’에 초점 맞춘듯
“윤석열 싫다“던 북, 주민 고통 외면하고 거부 가능성
비관론 불구, “북 당국, 수용해야” 지적 높아
“여기가 어디라고 오신단 말입니까”, “자그마한 고무단정을 타시고 물에 잠긴 피해 지역을 돌아보시는 거룩하신 모습”
북한 신의주 홍수 6일째인 2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조국의 북변 피해지역 인민들이 터치는 격정의 목소리를 전하며’ 기사의 일부다. 노동신문은 7월 29일자부터 신의주 수해를 보도하기 시작해 수해 참상과 관련자 문책→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응 우상화→김 위원장의 행보에 감화받은 인민들→전국 각지 도움의 손길→‘전화위복’을 위한 단합 캠페인으로 전환하며 수해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홍수 닷새째인 1일 수해 관련 대북지원을 공개 제안했다. 남북관계사에서 수해 지원은 ‘동포애‘, ‘민족애’를 명분으로 했지만 당국간 정치적 수싸움과도 무관치 않았다.
1984년 북한의 남한 수해 지원은 대표적이다. 1983년 10월 아웅산 테러 사건 이듬해, 북한이 남한에 수해 지원을 전격 제안해왔다. 전두환 정권도 예상을 깨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해 지원 제안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인한 국제적 지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전두환 정부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자 인수·인도를 위해 직통전화가 4년만에 재개됐고 막혀있던 남북관계는 다시 복원됐다. 전두환 정권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데 가장 필수적인 환경, 즉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한반도 상황을 얻어냈다. 통일부가 최근 공개한 1980년대 남북회담사료에도 이같은 배경이 담겨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줄곧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에 열려있다”는 원칙을 견지한다면서도, “통일부가 대북지원부같다“(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며 질타했던 탓에 이번 수해에 대북 지원 입장을 밝힐지 불투명해보였다.
통일부는 1일 오전까지도 북한에 지원 제안이나 유감 표명 등을 할지 질문에 “상황을 주시하겠다“며 유보적 입장이었지만, 이날 오후 예상을 깨고 대북지원 입장을 전격 발표했다. 최근 대통령실과 정부 안에서도 남북관계에 반전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생겨나는 기류다.
다만 이번 정부 발표문에는 북한 당국과 북한 주민을 구분하는 현 정부의 기조가 뚜렷했다. 한적의 발표문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북한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북한의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등 ‘주민’은 4번 언급하지만 결정권을 갖고 있는 ‘북측 당국’은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외에선 정부 대북지원 입장에 환영, 지지 입장이 이어지고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만들라는 촉구도 봇물터지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대북지원 입장에 관한 논평을 요청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우리는 북한에 중요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비핵화와 별개로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에서도 모처럼 정부에 환영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 제안을 환영한다며 “인도적 지원은 진보 정부 전유물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평화의 물꼬를 터야할 때”라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정부 접촉 제안은 나름 의미가 있다“면서도 “북한이 남북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상황이고 실제로 전단지, 확성기와 오물풍선으로 강대강 대결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의 수해지원물자를 수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재해대응을 위한 물자가 비축되지 못해 상시대응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이상 피해를 줄이기 어렵고, 당국이 국제기구와 NGO 구성원의 입국을 불허하며 외부의 지원을 거부해 효과적 대응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거듭되는 홍수 피해에 주민 불만이 가중될 것“이라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재해 물자를 비축해 재해 대응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자력으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북한이 인정하고 외부 지원을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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