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인사이트] ‘58년 개띠’ 노래하는 바리스타… 지자체가 만든 주식회사에 취업한 시니어

홍다영 기자 2024. 8.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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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 오윤철씨, 성동구 출자한 카페서울숲 2년째 근무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 받으며 주 14시간 일해
성동구 “기업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60대 바리스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오윤철씨가 지난달 31일 서울 성동구 카페서울숲에서 포즈를 취했다./전기병 기자

“60살이 넘었지만 아직 젊은데… 일자리를 구하려해도 현실의 벽이 높더군요. 지금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감사하게 일하고 있어요.”

서울 성동구 카페서울숲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오윤철(66)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30대엔 제주도에서 극장을, 40대엔 남성복 매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50대가 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그는 바리스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관련 자격증 6개를 땄다.

하지만 늦깎이 바리스타가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지원해도 20~30대만 뽑았어요. 제가 제 나이를 몰랐지요. 나이 예순 바리스타를 누가 받아줘요. 굉장히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결국 취업에 성공했지요. ”

오씨가 2년째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는 카페서울숲은 성동구가 출자한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가 설립한 곳이다. 218㎡(66평) 규모의 카페서울숲에서 오씨는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과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손님을 맞고 있다.

성동구 관계자는 “지자체 예산에만 의존하는 퍼주기식 복지와 다르게 주식회사를 만들어 기업형 카페에서 이익을 올리고 있다”며 “카페 운영을 통해 어르신들 인건비를 지불하고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를 통해 분식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성동구청

◇국비 지원으로 바리스타 교육, 지자체가 출자한 카페에 취업

오씨는 58세에 국비 지원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1년 만에 바리스타 1·2급 등 관련 자격증 6개를 취득했다. 지인 소개로 양천구에 있는 카페에서 8개월간 일하며 커피와 샌드위치 등 수십여 개 메뉴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카페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서울시어르신취업센터를 통해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를 소개받았다. 여기에서 카페서울숲 바리스타로 일할 기회를 받았다.

성동구는 지난 2017년 민관(民官) 공동 출자로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카페, 분식점, 용역 사업 등을 통해 어르신과 경력 단절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려는 게 설립 취지다. 설립 당시 40여 명이던 직원은 현재 227명으로 늘었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 지분은 성동구가 70%, 서울숲사회혁신공유재단·재단법인 성동벤처밸리·개인 6명 등이 30%를 갖고 있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약 48억원으로 전년보다 19% 늘었다. 영업이익은 3억원이다. 특히 오씨가 일하고 있는 카페서울숲은 지난해 월평균 매출이 4600만원으로 전년보다 35% 늘었다.

노원어르신행복주식회사를 통해 마스크를 제조하는 어르신. /노원구청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 받으며 주 14시간 근무

오씨는 현재 카페서울숲에서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보다 많은 서울시 생활임금(1만1436원)을 받으며 일주일에 14시간 일한다. 카페 근처에 연예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있어 팬들이 카페를 대관해 좋아하는 연예인 생일파티를 이곳에서 열고 있다. 봄철 벚꽃 시즌에는 카페 하루 매출이 500만원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 인근 주민들도 카페 단골이다. 오씨는 이렇게 말한다. “카페에 자주 오는 70~80대 손님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올린 아포가토를 좋아하는데요. 넘어지실까봐 제가 직접 서빙을 하거든요. 그러면 저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고맙네, 젊은이’ 이래요. 저도 나이 예순이 넘었는데. 이런 게 참 재밌어요.”

오씨는 퇴근 후 고교 졸업생들과 합창단 활동을 한다. 이탈리아 가곡을 즐겨 부른다. 그는 “10년 전에 일본 여행을 갔는데 백발 노인도 카페나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한국에서 70대까지 노래하는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 은퇴자에게도 집에서 삼식이(세끼 배우자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사람)처럼 있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일단 밖으로 나오라고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 중인 어르신. /뉴스1

◇노원구·금천구 등도 주식회사 설립해 시니어 일자리 만들어

한국은 2025년 인구의 20%를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일부 지자체는 이에 대비해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노원구는 지난 2021년 노원어르신행복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노원구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어르신들은 보건소,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마스크를 제조한다. 안심 귀가를 돕는 스마트폰 앱의 방범 카메라(CCTV)를 관찰하는 관제 요원으로 활동한다. 서울시 생활임금이 적용되며 최대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노원어르신행복주식회사 관계자는 “70대 어르신이 스포츠타운에서 주차를 관리하기도 한다”며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금천구는 지난 2020년 금천일자리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어르신들은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 카페나 어린이집 등에서 근무한다. 미화, 경비, 주차, 소독, 방역 등 용역 사업에 참여한다. 금천일자리주식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3억5000만원으로 전년보다 8%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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