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빚 ‘13조’로 전국민 지원금 25만원… 경제학자들 “병원·학원만 수혜. 겨우 잡힌 물가 다시 튈 것”
“소비, 자영업자 매장 아닌 병원·학원 집중” 지적도
“물가 튀면 고금리 지속…서민 가구에 더 부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에게 25만~3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특별법(이하 25만원 지원법)을 지난 2일 통과시키면서 경제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지원금을 실제로 지급하려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다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지원금으로 물가가 오르게 되면, 지원금 소진 후 서민 가계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원금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매장에서 쓰이기 보다 상대적으로 수입 구조가 탄탄한 대형 매장이나 학원, 병원 등에서 집중 지출돼 지원금의 목표인 소상공인 지원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비판도 있었다.
아울러 소비 왜곡을 야기해 특정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도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 축산업이 겪은 ‘한우값 폭락 사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지급된 지원금으로 한우 소비가 급증하자, 축산농가들이 사육량을 늘렸는데 이후 지원금 효과가 끝나고 소비가 뚝 끊기면서 현재 한우가격 폭락으로 이어진 것 처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빚 내서 용돈 주는 격… 취약계층 선별적 지원이 효과적”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전국민 지원금의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원으로 1년 만에 59조3000억원이 증가했다. 나라빚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갚아야 할 국고채의 규모도 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올해부터 2027년 임기까지 갚아야 할 국고채 규모는 310조5000억원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만 해도 2027년 만기 도래 국고채 규모는 약 115조원에 불과했다. 문재인정부의 확장재정 영향으로 갚아야 할 국고채의 규모가 3배 가까이로 증가한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원을 확보해서 조달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적자 국채로 충당한다고 하면 결국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학자들은 현재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25만원(취약계층 35만원)으로 돼 있는 법안의 구조를 취약계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KDI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진작 효과는 보편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보다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선별적 지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소득분포상 하위 20% 계층에 지원을 하도록 법안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KDI가 2020년 12월 발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에 따른 소비 증대 효과는 0.26~0.36배에 불과했다. 지원금 사용가능업종에서 전체 투입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뿌린 재난지원금의 규모가 14조원이었는데, 이 중 3조6000억~5조원 가량만 실제 소비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김 교수도 “취약 계층에 몰아서 주는 게 경기 부양 효과가 더 크다”고 했고, 하 교수 역시 “선별을 잘 해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이어 “선별적 지원이 어렵다면, 중산층 이상의 가구에 지급하는 지원금에 대해선 과세하는 방식으로 ‘선 지급 후 정산’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러한 방식은 ‘돈을 줬다 빼앗는다’며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 있다”고 했다.
◇ 안정권 들어선 물가 튈라… 소비 왜곡도 논란
전국민 지원금이 넉 달 연속 2%대를 보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민 지원금이 시행된다면 시중에 풀리는 자금의 규모는 13조~1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돈이 일시적으로 풀리면서 내수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후의 물가 상승은 서민 가구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의 고물가 상황은 수요 증가가 아닌 공급 측 영향이 더 큰 데, 여기에 수요까지 자극하면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화 시점도 더 멀어지게 된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충격은 취약계층에 더 클 수밖에 없다. 석 교수는 “물가 자극은 당연하다. 겨우 잡힌 물가가 다시 튈 수 있다”며 “자영업자 지원이 목표라면 특정 어려운 업종에 직접 지원금 형태로 도움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석 교수는 이어 “어려운 자영업자를 돕겠다고 뿌린 지원금이지만, 그동안의 사용처 내역을 보면 사교육이나 병원 등 비교적 벌이가 괜찮은 업종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면서 “야당이 제시한 목적이 자영업자 지원인데, 이와 다르게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교했을 때 물가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 교수는 “현재 이야기가 나오는 지원금의 총 규모가 13조원가량인데, 이게 물가를 약간 자극할 수는 있다”면서 “지금의 물가 안정 흐름이 주춤할 순 있겠지만, ‘물가 급등’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소비 왜곡을 야기해 특정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 교수는 “지원금이 지급되면 일시적인 소비 왜곡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업종에선 호황이라고 보고 생산량을 잘못 조정해 이후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 폭락을 맞을 수도 있다. 국내 축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 예산권은 정부에… ‘법적 정당성 없다’ 지적도
예산 집행과 관련한 특별법을 국회가 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을 두고 정부의 재정권을 빼앗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회가 스스로 25만원 지원법을 처리해, 정부에 예산 집행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
이와 관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위기극복 특별조치법(전국민 25만원 지원법)’ 공청회에서 “정부가 예산편성권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재정의 가장 핵심적인 권한이 정부에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며, 재정의 편성 및 운용에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라며 “현행헌법상 재정권은 원칙적으로 정부에게 있고, 국회는 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생지원금 25만원 지급 입법은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재정 편성 및 집행을 사실상 국회가 입법으로 결정함으로써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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