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탄핵” vs “오물정권”···이진숙發 오물공방에 방통위 ‘기능정지’
탄핵 사유 없다 판단···‘자진사퇴’ 안 해
최장 180일간 ‘방통위 공백’ 사태 불가피
기각 시 野 ‘탄핵 중독’ 역풍 직면할 듯
野, 과방위서 ‘공영방송 이사선임’ 청문회
‘전국민 25만 원 지원법’도 본회의 통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자 대통령실은 ‘오물 탄핵’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의 날선 반응에 민주당도 “윤석열 정권의 행태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더럽히는 오물”이라고 응수했다. 정권과 거대 야당이 ‘오물’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수장이 직무정지 된 방통위는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됐다.
이 위원장 탄핵안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8표 중 찬성 186표, 반대 1표, 무효 1표로 통과됐다. 탄핵안에 반대한 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이로써 지난달 31일 임명된 이 위원장은 취임 후 가장 짧은 기간에 탄핵소추된 장관급 인사로 기록됐다.
야당이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안동완 검사 등에 이어 다섯 번째다. 방통위 수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 등 앞선 방통위 수장들은 탄핵안 표결 전 사퇴했지만 이 위원장은 직무 정지와 함께 헌법재판소행을 택했다. 이 위원장은 “방통위 업무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 위원장의 직무 정지를 감수하고서라도 야당의 탄핵안을 정면 돌파하기로 한 배경에는 방통위 수장에 대한 ‘무한 탄핵 굴레’를 끊을 때가 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야당의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이 임명된 지 사흘, 업무를 본 지 하루 만에 진행된 만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승산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위원장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이 위원장은 당당히 헌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것과 야당의 ‘오물탄핵’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방통위원장이 근무한 단 하루 동안 도대체 어떻게 중대한 헌법 또는 법률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이 위원장도 입장문에서 “탄핵소추의 부당함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헌재에서 이 위원장 탄핵안이 각하 또는 기각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가 짙다. 야당은 방통위가 ‘2인 체제’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안건을 의결한 것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실은 법률적 요건을 갖춘 정당한 업무일 뿐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당 주도의 ‘탄핵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는 분석이다. 헌재가 이 위원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정치적 역풍이 야당을 향하면서 탄핵안 발의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윤석열 정부에서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검사 3인(안동완·손준성·이정섭)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이 장관과 안동완 검사 탄핵안은 헌재에서 기각돼 무리한 탄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위원장이 자진 사퇴를 해버리면 ‘후임자 발탁→국회 청문회→탄핵소추’ 사이클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헌재 판단에 따라 야당은 정치적 심판뿐 아니라 법률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오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야당도 정면 승부를 택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위원장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대해 “83명의 이사 후보들을 2시간도 채 안 돼 심의하고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한 사람당 1분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심사해 놓고 정상적인 선임 절차라고 주장하느냐”고 따졌다.
또한 “심지어 용산이 이사 명단을 찍어 내렸다는 제보까지 터져 나왔다”면서 “이 위원장의 위법과 불법을 심판하려는 국회를 모욕해 놓고 헌정 파괴를 운운하느냐. 3권 분립을 무너뜨린 윤석열 정권이 바로 헌정 파괴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부부를 지키기 위해 방통위가 불법을 일삼도록 만들어놓고, 국민의 심판을 운운하다니 들끓는 민심이 보이지 않느냐”며 “윤석열 정권은 독주를 멈추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권은 이 위원장 탄핵안 통과와는 별도로 윤석열 정부와 방통위를 향한 압박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국회 과방위는 9일 ‘불법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 방송 장악 관련 청문회’를 야권 주도로 열기로 했다. 야권은 이 위원장을 비롯해 김태규 부위원장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서기석·권순범·정재권 KBS 이사 등 28명을 증인으로 채택됐다. 6일에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위한 방통위 현장 검증도 실시할 계획이다.
다만 방송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의 주무 부처인 방통위가 수개월째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정부와 야당 모두에게 부담이다. 이 위원장의 직무 정지로 전체회의를 개최하지 못하게 되면서 쌓여 있는 안건들의 의결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올해 업무계획으로 추진 중인 핵심 과제인 미디어와 인공지능(AI) 관련 법 제정, 단말기유통법 폐지 등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통합 미디어법’ 제정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선 민주당이 주도하는 ‘25만 원 민생지원금 특별법’도 통과됐다. 법안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은 24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섰지만 거대 야당의 토론 종결권 행사로 무력화됐다. 민생지원금 특별법은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논란 속에 대통령실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여당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계획이다.
국회는 이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마저 상정해 여당이 재차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야당은 노란봉투법을 5일부터 열릴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불법 파업 조장법은 민생과 경제를 무너뜨리는 ‘막사니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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