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흥행 이후 줄잇는 무속 소재 TV 프로들…‘무속 열풍’ 이유는?[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4. 8.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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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낡은 옷 벗고 힙한 이미지로…위안과 재미 선사에 “베리 굿”
SBS <신들린 연애>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올해 초 개봉한 영화 <파묘>에서는 대대로 기이한 병에 시달리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당과 풍수사, 장의사가 나선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상의 묫자리를 잘못 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장을 진행할수록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파묘>는 소위 말하는 ‘한국형 오컬트’ 장르이다. 오컬트는 물질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혹은 그와 관련된 지식과 학문을 뜻한다. 한국형 오컬트라고 일컬을 때는 주로 무속신앙(샤머니즘)을 소재로 한다. 개봉 전부터 호화로운 캐스팅과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 독특한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천만 관객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파묘>가 ‘마이너한 장르’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처럼, 무속과 풍수지리는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이다. ‘미신’ 혹은 허무맹랑한 것, 전근대적인 것의 상징으로서 ‘미개함’ 담당이거나 종교에 따라선 강렬한 배척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태몽과 신년운세, 사주, 궁합의 얼굴로 한국인의 일상과 무의식에 깊이 침투해 있기도 하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무속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신들린 연애>(SBS), <샤먼: 귀신전>(TVING 오리지널)이 잇달아 방영되었으며 <심야괴담회>(MBC)는 여름을 맞아 시즌 4를 시작했다. 콘텐츠의 제작과 인기는 수요를 뜻한다. 그리고 2024년의 무속 열풍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좇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무속 열풍의 첫 번째 요인은 무속의 세련된 재해석과 인간적 면모에 느끼는 매혹이다. 무속과 무당은 신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존재로 타자화되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대국가 시절을 제외하면 무속인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가장 비천한 취급을 받는 계급이었다. 또한 무속 탄압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근대화를 향한 열망이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종교활동을 ‘미신’으로 일반화했다. 그래서 무속인은 ‘어딘가 구식’이고 ‘지금 여기’와는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파묘>의 ‘MZ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세련된 옷차림, 헬스클럽 등에서 체력 단련을 하는 모습, 굿을 할 때 컨버스를 신는 의외성으로 이목을 끌었다.

무당과 역술가가 출연한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에서는 이들의 젊음과 수려한 외모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당이 핸드백에서 방울을 꺼내는 의외의 모습에 패널들이 자지러진다. 전통과 현대의 이미지가 적절하게 결합하면서 무속의 이질적인 요소가 오히려 ‘힙’한 개성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거리감이 해소된 뒤에는,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비인간화했던 무속의 ‘얼굴’이 드러난다. <신들린 연애>에서 점술가들은 평범하게 관계를 고민하고, 감정에 휘둘린다. 최종 선택이 끝난 후 한 출연자는 “촬영하기 전에는 신령님들이 정해준 길로만 가면 돼, 이랬거든요. (다양한 감정을 느끼면서) ‘무당 함수현’이 아니라 ‘인간 함수현’으로 살다 가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티빙 오리지널 <샤먼: 귀신전>. 티빙 제공

<샤먼: 귀신전>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중 어머니가 무당이었던 사연자는 내내 신내림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위해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딸의 내림굿을 직접 주관해야 하는 무당의 얼굴에 ‘어머니의 표정’이 어린다. 이 장면은 먹먹한 여운을 남기며 ‘평범한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는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인간적인 면모는 한국 무속 세계관의 특징이자 지금 무속이 인기를 끄는 두 번째 요인인 ‘치유’와 관련 깊다. <샤먼: 귀신전>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출연해 무속의 여러 차원을 조명하는데, 인류학 박사 로렐 켄달은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다루는 일보다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속은 오랫동안 민간신앙으로서 의학이나 과학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다양한 질병에 대처하고, 정서적 보호막 기능을 했다. 막대한 부를 소유했는데도 병을 피할 수 없는 <파묘>의 장손들, <샤먼: 귀신전>에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무당 앞에 와서야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곤 울음을 터뜨리고 굿을 통해 낫는 사연자들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무속의 치유 효과는 체험할 수 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죽은 자와 연결된다는 가능성, 지금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이해하는 자가 있다는 감각, 대접하고 대접받는 의식은 강력한 위로와 대리만족으로 작동한다. 한국의 무속에서 귀신은 아랑전설이나 장화홍련처럼 ‘해원’, 즉 원한을 푸는 것이 목적이다. <샤먼: 귀신전>의 굿 장면에서 무당은 몸이 없는 귀신에게 왜 이곳에 왔느냐 묻고, 과일에 눈코입을 그려 몸을 만들어준다. 죽은 아버지의 혼령이 무당의 몸에 빙의해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 꿋꿋하게 잘 살아가라’며 사연자를 안아준다. 원한이란 죽은 자의 것이지만, 산 자의 가슴에 맺힌 무언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산 자를 위로하는 한국 무속의 세계관은 위로와 치유를 건넨다.

세 번째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과 사필귀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의 무력감,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권선징악의 욕망이다. 사적 복수가 유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험한 것이 나왔다.” 무수한 패러디를 낳은 <파묘>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자 그곳에서는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험한 것’이 튀어나오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실패한 친일파 청산 등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국민 감정을 건드린다. 현대의 악은 범죄자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구조적 특수성 때문에 개인이 대응하기 어렵다. 무속의 내러티브는 이런 악을 규명하고 해결한다.

<손 the guest>(OCN), <방법>(tvN), <경이로운 소문>(OCN), <악귀>(SBS) 등 무속 혹은 퇴마가 소재인 콘텐츠에서 악은 (악귀와 결탁한) 대기업, 정치인 등 권력자로 형상화된다.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오른 정보라의 소설 <저주토끼>에서도 저주는 탐욕과 착취를 일삼으며 몸집을 불린 대기업을 겨냥한다. 힘없는 개인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복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민속학이나 문학은 전통적인 귀신의 형상이 ‘처녀 귀신’, 즉 ‘여성-약자’의 상징인 것에 주목했다. 체제에서 보호받지 못한 존재를 조명하고, ‘아무리 약자라도’ 함부로 대하면 후환이 생긴다는 원리는 ‘어쩐지 나쁜 놈들만 더 잘사는 것 같은’ 시대에 지극히 매력적이다. 또한 무력감을 느끼면 구원자를 열망하게 되는데, 위기의 순간 홀연히 등장하는 무속인은 <심야괴담회>의 단골 패턴이다(다들 어떻게 그렇게 ‘아는 무당’ ‘어머니가 잘 아는 스님’이 있는지!). 이는 <심야괴담회>가 사연자가 직접 경험담을 보내는 포맷상 본질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공적 시스템이 기능하지 못할 때 ‘나’를 보호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은 지푸라기 같은 위로다.

네 번째는 불가해한 삶의 어떤 ‘잔여’를 서사화하려는 시도이다. 인간은 삶의 무수한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직면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무너지며 살아간다.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근대의 환상은 약발이 다했지만, 여전히 현대인은 자신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왜 그때 갑자기 그런 병에 걸렸을까, 그날 왜 거기에 갔을까…. 운명 또는 팔자, 신의 뜻, 귀신의 장난이라는 말은 미치거나 죽지 않고 이상하고 버거운 나의 생을 버티게 해주는 지팡이가 될 수 있다. 운명의 의미에 대해서 <신들린 연애>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무당·역술가·타로 상담가들이 출연하는 만큼, 첫 만남에 앞서 출연자들이 사주명식이 적힌 운명패를 보고 운명의 상대를 골랐다. 한 출연자는 호감 가는 사람과 운명의 상대가 다를 가능성에 괴로워하다가 중간에 하차한다. 사주명식이 공개된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운명과 마음이 충돌하는 서사가 부각된다. 그러나 운명과 무관하게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출연자도 있다. 결국 최종 커플이 된 두 쌍 모두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선택했고, ‘운명을 개척했다’는 서사가 완성된다. 점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다분히 진취적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들은 최선을 다해 피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양상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 무속인이 아니어도 그러하다. 무속의 어떤 부분에 위안을 얻고, 의존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중심을 자기에게 두고, 휘둘리지 않는 균형도 중요하다.

<신들린 연애>에서 박이율 퇴귀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신’이 절대로 아니잖아요. 저는 인간이잖아요. … 저는 여기에 하루하루 충실하고 순간에 충실하고 그걸로 끝이에요.”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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