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누수' 틈 탄 극우세력, 윤석열 정부를 '하이재킹' 하다

박세열 기자 2024. 8.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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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권력이 공동화된 자리에, 극우세력이 스며들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의 대선에서 '극우(Far-right) 세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비단 유럽과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라별로 사정들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현상을 꿰뚫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이 노력 중이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에 사는 우리도 한국의 극우 세력에 대해서도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에서는 결선투표에서 좌파중도 연합이 1차 투표 선두였던 극우 국민연합(RN)의 1당 시나리오를 저지했지만, 극우 집권 가능성을 이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됐다. 별명이 '무솔리니'인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 형제들'은 유럽 의회 선거에서 1당을 차지하며 '극우 세력'의 EU 영향력 확대 발판을 다졌다. 미국에선 집권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트럼프가 다시 지지세를 끌어 올리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에서는 전체주의 성향이 더 강화되고 있다.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영국의 경우가 조금 특이한데, 2016년 극우파와 손잡은 보수당이 추진한 브렉시트를 일찍 경험한 시민들의 극우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세력이 굴기하고 있다. 일본의 지식인 우치다 타츠루는 이런 현상을 두고 극우 세력이 '총력 결집'하고 있는 게 아니고, 17세기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형성된 '국민국가' 체제가 21세기 들어 '액상화'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비명' 내지 '삐걱거림'이라고 설명한다. '액상화'라는 비유가 절묘하다. 지금은 더이상 국가 단위의 통치가 디폴트인 시대가 아니다. '자본의 글로벌화'를 통해 국경이, 국민국가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프랑스를 프랑스인 손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구호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건 '국민국가' 프랑스와 '국민국가' 미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백래시' 같은 것이다.

서구가 주도한 전쟁과 신자유주의는 전쟁 난민과 노동 난민을 양산했으면서도, 오른손으로 이민자에 손짓하면서 왼손으로 이민자를 배격한다. 이를테면 극우는 야누스의 다른 한 쪽 얼굴이다.

극우세력은 '배외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간혹 극우 세력의 '전쟁 반대' 구호는 마치 70년대 히피들의 구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은 푸틴의 러시아가 승리하든 말든,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를 반대하고, '우리'의 자원이 '그들'의 전쟁에 동원되는 걸 싫어한다. 이민자에 의한 서구 가치의 붕괴를 우려한다. '식민 가해자'로 지목당한 과거는 극복 대상이고 그간 '특혜'를 누려온 이민지, 유색인종과 '동격'을 회복하겠다는 것을 당당하게 '평등'이라 외친다.

전통적으로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해 온 언어를 역으로 차용해 무장한 그들은 '우리는 극우가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그 자체가 '21세기 극우'의 특징을 이룬다. 왜냐하면 서구의 극우 세력은 '선거'를 통해 인정받으려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를 당당히 전면에 내거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인기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극우'라 부르면 그들은 싫어한다.

▲ 마크롱과 르펜의 얼굴을 절반씩 붙인 그림 ⓒAFP 연합뉴스

한국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스팔트 우파'로 상징되는 '극우 세력'의 이념들은 인기가 없다. 87년 민주화 이후에 극우 세력은 선거에서 제대로 된 승리를 맛 본 적도 없다. 집권 경험이 있는 한국의 보수 정당은 최소한 선거철엔 중도층에 적극 구애하며 '빨갱이 때려잡자'는 레드 콤플렉스 극우와 확실하게 선을 그어왔다. 유럽이든 한국이든 선거에서 '극우'를 내거는 건 인기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 다른 건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일정 궤도에 올라선 한국 사회의 극우는 북한이라는 특수한 존재를 떼 놓고 설명할 수 없다. 과거 반공 체제의 자장 속에서 안온함을 느꼈던 그들은 휴전선으로 그어진 '대한민국'의 경계가 액상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를 북한과 거의 동일시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가진 사상의 보편성을 인정받으려 애를 쓴다. 즉 '우리는 북한만 싫어하는 게 아니고 모든 권위주의를 싫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극우 세력이 중국과 북한을 서구 인종주의와 유사한 시각으로 대하는 현상을 목격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이런 특질에 비춰 보면 극우 세력이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극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이유가 설명된다.

한국도 '표층 한국'과 '심층 한국'으로 나뉠 수 있다. 이를테면 미국을 봤을 때 '표층 미국'은 할리우드나 실리콘리, 월가의 자유주의 세력이지만, '심층 미국'은 힐빌리의 노래로 상징되는 러스트 벨트 노동자, 남부의 레드넥 등이다. 여기에 빗대 보면 표층 한국은 K팝과 K무비의 '문화 자본'을 향유하며 수도권에 살고 있는 화이트칼라, 리버럴리스트 들이지만, 심층 한국은 전쟁 세대와 기독교 반공 세력(태극기 세력),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은퇴한 부유층(혹은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신념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소멸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과거에 비춰 현재를 '역보정'하고 화려했던(혹은 화려했었다고 믿는) 권위주의 경제 성장 시절의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지금 근본없는 '운동권 세력' 출신들이 주도한 자유주의 정책들은 우리 공동체를 와해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MBC가 좌파 노조에 먹혀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있다든지, 민주노총이 북한과 내통하고 나라를 헌납하려 한다든지 하는 황당한 음모론이 진지하게 취급된다. 한 표가 아쉬운 보수 정당은 선거 철마다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왔다. 극우세력이 보수 정당의 한귀퉁이를 끈질기게 점령할 수 있는 이유다.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극우 세력이 성장한 것은 유럽이나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야만적 식민지 경영이라는 원죄에서 발로한다. 지금 서구 세계의 극우 정치인들은 '우린 값을 충분히 치렀고, 이제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야 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한국의 극우 세력은 다르다. '유사 인종주의' 성향이 엿보이긴 하나, 이 사회가 비교적 단단한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다수 시민들은 유일한 '적대국'인 북한에 대해서도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전광훈 류의 선명한 극우 세력과 뉴라이트와 같은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선거와 공론장에서 판판히 실패한 데에는 이런 한국만의 내재적 이슈들 완전히 무시하고 '운동권 숙주 문재인 모가지를 따자'거나 '빨갱이는 총살해도 된다'는 과격 구호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허약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승만을 '자유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내세우지만 그들의 '상상계'는 보편성을 획득하기엔 너무 낡고 후졌다.

그리하여 극우 세력은 보수 정권의 곁가지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조금씩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몇몇 직을 받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같은 걸 가동해 자신들이 믿고있는 '음모론'에 실체적 권력을 부여하려 노력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2년차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상상계가 권력의 귀퉁이가 아니라 요직으로 스며들고 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애초에 정치 철학도, 정치적 신념도 없었다. 그는 애초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잘 나갔던 검사다. 적폐 청산으로 보수 진영 인사들을 잡아 넣던 그는 조국 수사를 계기로 갑자기 '반문재인'의 기수가 된다. 보수 정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이 '문재인 정부의 반항아'를 영입해 0.73%포인트 아슬아슬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애시당초 철학과 비전이 없었던 터라 국정은 즉흥적으로 운영됐고, 손 대는 일마다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캐릭터도 영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에 영부인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총선에 대패하고 집권 절반도 안돼 레임덕을 자초했다.

윤석열을 지지하던 중도 세력과 합리적 보수 세력은 사실상 이 정권에서 손을 뗀 것 같다. 그러자 권력자는 존재하되 권력의 작동이 멈춘 '권력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고, 극우 세력이 그 허약함을 타고 권력 중심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권 초반 검사들이나 측근들을 기용하던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이제 완전히 '이념형' 인사로 넘어갔다. 대통령실이 사실상 뉴라이트에 점령된 것 같다는 평이 나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반일종족주의'를 펴낸 낙성대연구소장 출신 김낙년 교수가 임명되고 주일대사에 일본 극우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름을 딴 나카소네 상 수상자 박철희 교수가 임명됐다. 뉴라이트 출신 통일부장관과 군사 쿠데타를 옹호한 국방부장관에 이어 "문재인은 총살감"이라 주장한 김문수 노동부장관(후보자)과 '기생충'을 좌파 영화로 부르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등장했다.

극우 세력의 숙원은 종북 좌파 방송 MBC 타파다. 이진숙은 임명되자마자 출근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교체했다. MBC 사장 교체의 포석이다. 이진숙이 교체한 공영방송 이사진 면면을 보라.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이미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는데 방송국 사장을 교체하고 노동조합을 손 본다고 중도층이 안하던 정부 지지를 한다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가설이다. 정상적인 보수 인사들이 이런 걸 기획했을 리가 없다. 김문수나 이진숙 본인은 '극우'가 아니라고 부인할지라도,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공교롭게도 '극우 세력'의 숙원들이다. 극우 세력이 문재인을 '운동권의 숙주'라 부르던데, 그대로 돌려주면 지금 윤석열 정부는 '극우 세력의 숙주'가 되어 가고 있다. 현 정부의 모습은 마치 조종수 없는 비행기가 '하이재킹' 당한 모습처럼 보인다.

'중도층에 소구력 있는 인사들이나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이 이 정부 요직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 꽤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단적인 예로 이미 사의를 표명한 총리조차 교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재풀이 말라 버렸다. 이 정부가 조성한 '방송 장악', '노조 카르텔 해체'의 최전선에 누가 나가고 싶어하겠는가.

폐가에는 사람이 가지 않는 법이다. 정권에 대한 기대가 꺾이자 사람들은 더이상 모이지 않는다. 중도층에 버림받고 인재풀이 공동화된 틈을 타 극우 인사들이 돌진해 들어왔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선거에서 이길 자신이 없는 한국의 극우 세력은 윤석열 대통령을 이용해 아스팔트에서 부르짖던 논리들을 정부 정책에 직접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김문수, 이진숙과 같은 인사 배경이 설명되기 어렵다. 위기가 폭주를 부르고, 폭주가 위기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국정운영이다. 지금 한국에선 미국이나 서구 유럽과 다른 독특한 방식의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 위원장과 대화하며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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