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 12년 만의 올림픽 단비…임애지 "직장인이라 버텨"
임애지는 2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에서 제니 마르셀라 카스타네다 아리아스(콜롬비아)에 3-2 판정승을 거뒀다. 임애지는 준결승에 진출, 동메달을 확보했다. 복싱은 동메달 결정전 없이 준결승 패자 2명에게 모두 동메달을 준다.
복싱은 대표적인 ‘메달 박스’였다. 태극기를 달고 첫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수안이 동메달을 따낸 이래 총 20개의 메달(금3·은7·동10)을 따냈다. 하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순철이 은메달을 따낸 뒤 2016 리우, 2020 도쿄 대회에선 노메달이었다.
경기를 마친 임애지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오륜기 모양 선글래스를 쓰고 공동취재구역으로 와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막상 링에 올라가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임애지는 “사실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상대인 아리아스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왼손잡이 아웃복서인 임애지는 거리를 두려 했지만, 전형적인 인파이터 아리아스는 계속해서 밀고 들어와 주먹을 날렸다.
아리아스는 황소, 임애지는 투우사 같았다. 아리아스가 저돌적으로 달려들면, 임애지는 공격을 살짝 피하면서 반격했다. 임애지는 “(상대 공격을 피해) 엇박자가 나오는 게 정말 즐겁다. 내 페이스대로 경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라운드까지 5명의 심판 중 3명은 임애지의 우세, 2명은 아리아스의 우세로 채점했다. 그만큼 접전이었다. 임애지는 3라운드에서 유효타를 상대보다 훨씬 많이 적중시켜 승리를 결정지었다.
여자 복싱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됐다. 한국은 2020 도쿄 대회 때 임애지와 오연지가 처음으로 출전했으나 둘 다 첫 판에서 졌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1경기 만에 탈락한 임애지는 슬럼프를 겪었다. 임애지는 “너무 힘들어서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했나 싶다.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도쿄 때는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실업팀에 입단해) 직장인이 됐다. 직장인이니까 버텼다”고 했다.
생활체육을 즐기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임애지는 달리기를 잘 하는 ‘체육 소녀’였다. 그러다 중학교 때 우연히 여자 복싱 경기를 보고,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2015년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걸었고, 9년 만에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메달리스트란 영광까지 얻었다. 임애지는 “최초의 여자 메달리스트란 게 내겐 의미가 있다”고 했다.
파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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