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설 쿠웨이트선 방독면 선물 덕 봐”

2024. 8. 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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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식 보국에너텍 부회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납기일을 준수하는 근면·성실함이 K건설의 최고 강점”이라고 말했다. [사진 보국에너텍]
해외 누적 수주액 1조 달러 달성을 눈앞에 둔 한국 건설(이하 ‘K건설’) 신화 뒤엔 수많은 역군이 있었다. 특히 중동 등 해외 수출 거점에 파견돼 최소 수년, 또는 그보다 긴 시간을 현지에서 살면서 발로 뛴 인력의 노고가 컸다. 1982년부터 현대건설에서 32년 8개월간 근무했던 권오식 보국에너텍 부회장(전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해외에서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임직원들이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로 똘똘 뭉쳐 헤쳐나갔다”고 회고했다.

권 부회장은 현대건설 재직 기간의 절반가량인 15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쿠웨이트·카타르에 살면서 해외영업을 담당, 현대건설이 2013년 K건설 최초로 해외 누적 수주액 1000억 달러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해엔 자신의 40년 직장생활 경험을 담은 책 『균형의 힘』(드림위드에스)을 펴내기도 했다.

Q : K건설의 가장 큰 경쟁 무기는.
A : “과거엔 저렴한 인건비 등을 앞세운 가격 경쟁력이었다. 이후 우수한 기술 경쟁력으로 경쟁국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발주처가 원하는 품질로, 계약한 조건대로 무조건 완공해내는 ‘납기일 준수’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열정과 끈기로 발주처에 신뢰감을 준다.”

Q : 다른 나라 기업은 납기일을 안 지키나.
A : “중국의 경우 처음엔 싸게 계약했다가 나중에 도망가는 업체도 있다. 이들은 납기일에 대한 개념이 없다. 쿠웨이트에 있을 때 국영 석유 회사 KOC의 회장한테서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 쿠웨이트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과의 관계 확보가 중요한 나라라 강대국 업체에 일감을 나눠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국 업체 한 곳에 대규모 건설 공사를 맡겼는데, 계약하고 나서 보니 그 업체가 인력과 장비는 동원 안 하고 여유 부리고 있더란다. 담당자를 불러서 묻자 ‘3년 안에 완공한다는 계약이었지만 이런 공사는 중국에선 5년 걸린다’며 말을 바꾸더란다. 계약하고 나면 배짱을 부린다는 거다.”

Q : 해외영업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A : “쿠웨이트는 2003년 3월 이라크의 공격을 받아서 다시 전쟁터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철수하지 않고 현지에 남아 발주처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이는 전쟁 이후 쿠웨이트 수전력성이 발주하는 변전소 공사에 입찰 초청을 받아 지속적으로 수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때 이라크가 화생방 공격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 현지에선 방독면 품귀 현상이 심해졌다. 직원들 것을 우선 확보한 다음, 여분의 방독면 2개를 확보해 수전력성의 시공사 등록 담당과장 집으로 찾아가서 직접 전달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이면 신뢰가 쌓인다. 실제 이후 그는 우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Q : 다른 나라에서도 사건의 연속이었겠다.
A : “2006년 카타르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사인 천연가스액화정제시설(GTL) 공사를 발주했다. 네덜란드 석유 업체 셸이 발주처로 참여한 공사로, 셸의 카타르 지역 회장이 영국인인데 골프를 매우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골프로 그와 친분을 쌓고, 그를 통해서 중요한 정보를 얻어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Q :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A : “회장은 핸디 3~4개의 골프 마니아로, 항상 공휴일엔 당시 카타르 내 유일한 잔디 골프장인 도하골프클럽에서 라운딩을 했다. 나도 그곳 멤버로 등록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멤버들만 초청해서 여는 대회에 회장이 참여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족했던 골프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트 하나를 구입하고 집 거실에서 매트를 움직여가면서 볼을 소파에 올리는 쇼트게임 연습을 한 달간 끊임없이 했다. 그 결과 대회에서 3등을 하고 회장과 친분을 쌓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Q : 수주에서 가장 큰 애로점은 뭐였나.
A : “중국과 중동 업체들의 저가 수주 공세를 극복하는 거였다.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대안 공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발주처에 더 이득이 되는 방안을 찾아 극복했다. 쿠웨이트 국영 정유 회사인 KNPC에서 알아흐마디 해상 제티 공사를 발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땐 우리의 경험으로 확보한 가장 경제적인 공법을 작성, 입찰이 발주되기 전에 발주처 공사국장을 찾아갔다. 그를 설득해 우리 공법을 입찰서에 반영해 발주되게 만들어 수주하게 됐다.”

Q : 인도네시아 경험도 궁금하다.
A : “인도네시아에선 1990년대에 일본 소프트론(soft loan·저금리 대출)에 힘입은 일본 업체들이 대부분 수주 경쟁에서 승리했다. 현대건설은 92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동생이 경영하는 회사를 파트너로 삼아 수력발전소 공사 입찰에 참여, 정치적 보호를 받으면서 가격 경쟁력으로 수주할 수 있었다.”

Q : 정부에 K건설 신화 지속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A :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수출금융 확대를 통한 자금 지원을 강화한다면 기업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큰 힘을 얻을 거다. 해외건설 인력에 대한 혜택 강화를 검토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직원들이 해외에 파견되는 걸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받는 돈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 굳이 고강도 현지 근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세금 감면이나 아파트 분양 신청권 부여 등 혜택으로 이들이 다시 수출 최전선에서 일하게끔 분위기를 형성해 줄 필요가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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