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셀러 54만 곳 전성시대…무한경쟁, 플랫폼 횡포에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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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사태로 본 셀러의 세계
티몬·위메프 정산금 미지급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셀러는 1~2인 규모의 소규모 업체나 개인이 많아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하면 곧바로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셀러가 전국에 54만 곳에 이른다. 가뜩이나 알리익스프레스 등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셀러들은 이번 사태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 중 입점 셀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경우 지난해 6월 기준 셀러가 57만 명을 기록, 2019년(26만 명)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이 적으면 꼭 통신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셀러로 활동할 수 있다. 수입도 적지 않은 편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전체 스마트스토어 판매자의 8%는 연 매출 1억원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남녀노소 쉽게 창업하거나 겸업할 수 있고, 판매 상품에도 제한이 없어 셀러 입점 수요는 매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매출 1억’ 네이버 입점 셀러만 4만여명
국내에 ‘온라인 셀러’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2003년 구영배 큐텐 대표(전 G마켓 창업자)가 일반 사업자(셀러)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B2C)할 수 있는 이른바 ‘오픈마켓’을 국내에 도입하면서부터다. 오픈마켓에서는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이 거래 중개를 담당하면, 판매자가 소비자와 직거래하면서 유통 제반 비용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오픈마켓 플랫폼과 셀러 간의 윈윈(win-win)은 오래가지 못했다. 높은 접근성과 개방성, 무한경쟁이라는 오픈마켓의 장점이 되레 셀러에게는 약점으로 이용되면서 플랫폼과 셀러 간의 기형적 ‘갑을’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할수록 과도한 중개수수료율 부과, 할인 강요 등의 행위가 심화했다고 말한다.
“셀러로 큰 기업이 되레 셀러 고혈짜내”
최근 터진 티몬·위메프 정산금 미지급 사태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이 같은 기형적 구조가 발단이 됐다. 오픈마켓은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판매업자가 아닌 ‘중개업자’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던 점도 이번 사태를 부추겼다. 현행법상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는 대규모유통업법에 의해 정산 기간 등의 요건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하지만 거래 중개를 담당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은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거래대금이 ‘돌려막기’ 자금으로 사용되는 일이 만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상공인 등 셀러들이 줄도산하며 ‘셀러 전성시대’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내수 부진으로 인해 소상공인들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데다 C커머스의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국내 셀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에 대한 셀러의 신뢰가 무너진 만큼 급성장했던 이커머스 시장은 당분간 후퇴할 것”이라며 “소비자 못지않게 소상공인인 셀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셀러 보호를 위해선 판매대금 보관 의무화나 일정 규모 이상에 대한 보험가입 의무화, 다른 사업 목적으로 이용 금지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은 마련돼 있지만, 약자인 소상공인 셀러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은 찾아보기가 어렵다”며 “정산기일 10일 이내 의무화 등의 판매자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1일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에스크로 전면 도입과 정산 주기 관련 법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규제를 벗어난 플랫폼의 그림자 금융을 전면 관리하기 위한 종합적 규제체계를 논의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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