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 대법관의 ‘도그마’가 남긴 것들

양은경 기자 2024. 8. 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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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 대법관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법원

2018년 7월 김선수 변호사의 대법관 후보 제청은 파격적이었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도 판검사가 되지 않고 30년 ‘노동 변론’의 외길을 걸은 것도, 민변 회장을 지낸 이력도 놀라웠다. 당시 김명수 대법원의 관계자는 “그동안 보수적인 노동 사건 판례에 새로운 시각과 고민이 많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변호사 시절 그가 주장한 논리는 판결로 이어졌다. 2019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택시 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노사 간 근로시간 단축 합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회사 노사는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사납금을 인상하지 않는 대신, 장부에 실제 근무시간보다 짧은 시간을 적기로 합의했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최저임금 규정을 피하기 위한 탈법”이라고 본 것이다. 김 대법관은 이 사건 주심은 아니었지만 다수 의견에 대한 보충 의견을 내면서 사실상 논의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 판결 이후 택시 기사들의 소송이 잇따랐다. 이미 회사를 떠난 기사들이 낸 소송도 적지 않았다. 여력이 없는 회사들은 줄도산했다. 경기도에서 택시 회사를 운영하던 강모씨는 전원합의체 판결 후 이어진 기사들 소송에 시달리다가 지난 6월 29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매달 1500만원 정도의 적자를 봤다. 2021년 기사들에게 사업권을 양도하려고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지만 조합원이 모이지 않았고, 사채까지 끌어 운영했지만 도저히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강씨에겐 ‘김선수 공포’가 있었다. 기사 9명이 낸 소송 1·2심에서 회사가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김선수 대법관이 포함된 재판부(대법원 1부)에 배당되자 불안해했다고 한다. 강씨 측 변호사는 “‘판결이 뒤집히는 것 아니냐’고 여러 번 물었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수사나 재판을 받는 공직자들이 선거 출마를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고발된 황운하 당시 치안감이 사표를 내고 총선에 출마한 데 대해 “사퇴 기한 내에 사표를 냈다면 수리되지 않아도 출마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수사나 재판 도중 사표를 내고 선거에 나선 공직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도, 검사 신분이면서 조국혁신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규원 검사도 그랬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소외를 잘 전달해 올바른 판결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일 6년의 임기를 마친 김 대법관이 남긴 말이다.

묻고 싶다. 노사 합의를 뒤집고 그만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기사들, 재판과 수사를 선거 출마로 막아보겠다는 공직자들이 과연 ‘약자’일까. 한 대법관의 도그마(독단적 신념)는 자칫 강씨와 같은 비극적 결말을 낳기도, 출마를 도피처로 삼는 부정의를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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