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엄마는 여름 방학 어떻게 보냈어?” 그 시절 그림일기장 속으로 ‘풍덩’
엄마의 여름 방학
김유진 글·그림 | 책읽는곰 | 48쪽 | 1만5000원
“엄마는 방학 때 뭐 했어?”
아이의 성화에 엄마는 옛날 일기장을 펼쳤다. 엄마가 꼭 지금 딸 아이 나이 때 쓴 여름방학 그림일기다. “그땐 기차 안에서 바나나우유도 팔았어?” 놀라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한다. “그럼, 제복 입은 아저씨들이 손수레를 밀고 다니면서 간식거리도 팔았지.”
‘언니랑 둘이서 기차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라 무지 떨렸다. 옆자리 할머니가 기특하다며 바나나우유를 사주셨다. 엄마 아빠랑 같이 갈 때는 금방 갔는데, 언니랑 둘이 가니까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림일기 속엔 어린 엄마의 그 시절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모든 부모는 한때 아이였다. 한 장 한 장 이어지는 그림일기 속 장면들이 옛날 필름을 영사기로 돌려 재생하듯 엄마의 기억 속 풍경들을 반짝반짝 되살려낸다. 시골 외갓집에 도착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촌 형제들과 함께 누렁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반겨주셨다. 담력 훈련을 한다며 한밤 학교에 들어갔다 쫓겨 나오고, 텃밭을 돌본 뒤 받은 용돈으로 문방구에서 갖고 싶은 것도 하나씩 챙겼다.
커다랗고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받으면 마당은 그대로 수영장,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면 햇빛은 무지개색으로 반짝였다. 푹 젖은 몸을 닦아주며 할머니는 말했었다. “쑥쑥 커서 어른 되면 할미가 이렇게 씻겨준 거 다 잊어버리겠지?”
‘아, 정말 잊고 있었나….’ 잠시 멍해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장난스레 묻는다. “엄마, 정말 다 잊어버렸지? 기억 안 났지?”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엄마 일기장 보니까 나도 외갓집 가고 싶어졌어. 우리 외갓집 가자!” 세월이 흘러 풍경과 주인공은 바뀌고 나이 들었어도, 손주를 맞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밝은 웃음, 둘러앉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은 옛날과 꼭 닮았다.
‘거북이자리’, ‘하얀 밤의 고양이’ 등 작가의 전작들처럼, 맑고 담담한 수채화풍의 작화가 엄마와 딸이 나누는 어릴 적 추억을 다루는 이야기와 맞춤하게 어울린다. 외갓집의 사루비아와 능소화 같은 꽃들, 문방구에 가득한 군것질거리와 학용품, 연기를 뿜는 소독차, 마루에 친 모기장…. 수채화빛 기억은 촘촘하고 또 아련하다.
방학을 맞은 아이와 부모가 같이 읽으며 어떤 추억을 쌓아갈지 함께 궁리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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