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억명 중남미 시장 K영화 인기, 할리우드 바로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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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부는 한국 영화 열풍
브라질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에 6년째 근무하고 있는 서른살 이동현씨는 브라질 현지 여성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 이씨 뿐 아니라 다른 한국 남자들도 그렇다. 종종 현지인 여자친구와 극장을 간다는 그는 “여기는 할리우드 디즈니 마블 영화 아니면 상영작도 몇 편 없어요. 그것마저도 개봉 1주일 지나면 영화관은 한산해져요. OTT가 압도적입니다”라고 말했다. 브라질이 한국보다 먼저 OTT의 다리를 건넜음을 보여 준다. 한국 영화의 수출 전략, 브라질 내의 영화 배급 전략에 일대 수정이 불가피함을 보여 준다.
실제로 지난 6월 상파울루에는 청춘스타 차은우가 방문했고, 팬 콘서트 전석이 매진됐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연예인의 인기는 거의 할리우드 스타 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8월에는 서인국의 방문이 예정돼 있는데, 상파울루 주재 한국 영사관과 문화원 측은 지나치게 사람들이 몰려 안전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대비하고 있을 정도다. 어쨌든 이런 사례는 영화가 극장이라는 망(網)을 통해 보급되고 배급되는 시대가 지나도 한참 지났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한국 문화의 대외 전략에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가, 또 어떤 수단이 되어야 하는가란 본질적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브라질, 특히 상파울루에서 한국 문화 콘텐트 소비 비중은 여전히 영화가 가장 높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박찬욱·봉준호 감독 등의 작품들에서 비롯되고 있다. 올해로 48년이 된 상파울루 국제영화제는 이미 11년 전인 2013년 ‘박찬욱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박 감독을 초청한 바 있으며, 봉준호 감독의 경우는 그 훨씬 전에 ‘한국 단편영화 특별 섹션’을 통해 그의 단편을 집중 상영하기도 했다. 최근의 한국 영화 선호도 조사도 ‘기생충’ ‘부산행’ ‘발레리나’ ‘아가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남미 문화 전문가인 정길화 전 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국 영화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특히 글로벌 플랫폼인 OTT가 등장한 이후로 접근 가능성 면에서 이제는 물리적인 장애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국제문화교류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국에서 한국 영화의 인기도는 할리우드 다음이다. 미국-한국-일본-중국-영국 순이다. 한국 문화콘텐트에 대한 유료 이용 의향을 물어보면 음식·영화·드라마 등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콘텐트를 추천할 의향은 드라마-영화-예능 순서다. K팝, 드라마와 함께 한국 영화가 K콘텐트를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영화는 육상효 감독의 ‘3일의 휴가’다. 영화제 기간 중 두 번 상영됐는데, 극장이 눈물바다가 됐다. 브라질 관객들이 한국적 정서에 많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상파울루를 직접 방문한 육상효 감독에게 관객들은 일제히 한국영화의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 영화를 꾸준히 봐 주는 한국 관객들 덕분에 한국 영화가 성장한 것이다”라는 그의 답변에 젊은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브라질 역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자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낮아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육상효 감독 ‘3일의 휴가’에 눈물바다 돼
브라질에서 K드라마가 열풍을 일으키고 우리 연예인들의 인기가 치솟는 발판은 영화 콘텐트에서 나온다. 영화가 시작이다. 영화는 한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전체를 잇는 일종의 접속 코드다. 이번 브라질 한국영화제는 그걸 다시 한번 증명했다. 정길화 전 원장은 “이런 여세를 몰아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와의 공동 제작이나 상호 캐스팅 등에도 관심을 가져볼 때”라고 말했다. 브라질만 2억 인구다. 멕시코와 쿠바 등 중미와,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 등 남미를 합치면 6억4000만 명이다. 중미를 가려면 쿠바를 거치는 것이 좋고(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이 영향권이다) 남미의 핵심은 브라질이다. 이 큰 시장을 놓쳐서는 안된다. 6억4000만 인구 수는 ASEAN(아세안 10개국) 급이다. 사드 사태로 중국 시장이 막혔을 때 진작 이들 시장이 개발됐다면 영화계가 그렇게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미 영화와의 교류는 한국 문화의 종(種) 다양성을 좀 더 깊게 만들 것이다. 영화로 콘텐트 시장 전체를 열어야 한다. 영화제와 소규모 상영회, 영화 관련 행사와 교류를 늘려 더욱 적극적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한국 영화는 바야흐로 새로운 관객, 새로운 시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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