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50년 수집의 결정... 피켓팅 성공하면 공짜로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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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빈티지 오디오 박물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씨(야쿠쇼 코지)는 공중화장실 청소라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행복하다. 그의 하루하루가 완벽하기 때문인데, 완벽한 하루를 이루는 필수적인 의식이 있다. 출퇴근길 작은 봉고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올드팝과 점심 휴식 때 신사에서 ‘코모레비(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를 누리며 그걸 필름 카메라로 찍는 일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아날로그한 일상이다.
1877년 축음기 발명부터 1960년대 오디오 전성기까지의 시간여행이다. 오디오 역사에 방점을 찍은 빈티지 시스템 300여 세트와 뮤직박스 27점, 희귀 LP 10만여 점 등,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열광할 귀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50년 오디오 덕후력을 자랑하는 KCC 정몽진 회장과 오디오 전문가 고 최봉식씨가 깨알같이 수집한 컬렉션이다. 개관전 ‘정음:소리의 여정’과 특별전 ‘수집과 기록’이 진행 중인데, 사진전인 ‘수집과 기록’ 전시실에는 또 다른 소장품인 빈티지 카메라 700여 점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히라야마씨의 세계관을 ‘플렉스’했달까.
내부로 들어오면 편백향이 은은하다. 알래스카에서 공수한 편백나무로 울퉁불퉁 마감한 벽면은 흡음력을 높이면서 자연의 따뜻한 느낌을 준다. 9m나 되는 층고도 자연의 소리를 위해서다.
2전시실부턴 오디움을 운영하는 ‘서전(西電)문화재단’의 명칭 그대로,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 제품 위주다. 독일 클랑필름 제품도 꽤 있다. 1920~30년대 초반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으로 오디오 산업이 발전해서 그렇다. 빈티지 오디오 중에서도 가장 귀한 당시 모델을 다 끌어모은 듯한 컬렉션이다.
5전시실에서는 커브 혼 16-A가 원형 그대로 노래까지 들려준다. 높은 벽에 걸린 뒤주만한 스피커 3대가 쏟아내는 토니 오말리의 ‘마이웨이’가 ‘심쿵’의 경지다. 미국 오디오를 발전시킨 게 영화라면, 독일 오디오는 정치가 견인했다. 1930년대 나치가 대중선동에 필요한 라디오, 스피커 산업을 적극 후원할 때 성장한 게 클랑필름이다.
2전시실에선 미국의 자랑 웨스턴과 히틀러가 사랑한 클랑필름의 음향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레날도 안의 ‘클로리스에게’를 소프라노 수잔 그레이엄의 목소리로 차례로 들려주는데, 웨스턴의 따뜻하고도 명징한 소리에 비해 클랑필름은 다소 둔탁하고 거친 소리가 났다. 김영진 운영지원실장이 “워낙 오래된 기기라 컨디션을 맞춰 놔도 가끔 이런다”고 설명했지만, 오디움의 은근한 웨스턴 편애가 느껴졌다.
7전시실은 오디움 컬렉션의 시작점인 고 최봉식씨를 기리는 방이다. 정몽진 회장의 오디오 스승으로 알려졌다. 여기선 달팽이 모양의 커브 혼 여러 대가 앞태 뒷태를 각자 뽐내고 있는데, 음악이나 영화 사운드의 광대역 재생을 위해 4m 이상으로 길어진 혼을 제한된 공간에 배치하기 위해 달팽이 모양의 커브 혼이 탄생했다. 백지영의 ‘무시로’를 들려주는 1926년산 커브 혼 12-A와 13-A는 전체 생산량 50여대 중 14개가 여기 있다고 하니, 과연 세계 최대의 웨스턴 컬렉션이다.
웨스턴 11-A로 듣는 김광석 노래 큰 울림
옛날 오르골을 모아놓은 뮤직박스 전시도 볼거리다. 오디오가 없던 시절 음악회에 가지 않고 저렴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탄생한 기계악기인데, 벽시계 모양, 새장 모양 등 각양각색이다. 동전을 넣으면 저절로 건반이 눌러지며 연주하는 피아노는 19세기 기술로 요즘 나온 AI 자동연주 피아노 뺨을 친다.
오디움이라는 타임머신은 무료다. 주 3일(목·금·토)만 열리고, 하루 5타임 25명씩만 사전 예약으로 받으니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이 관문만 통과하면, 히라야마씨 부럽지 않은 ‘퍼펙트 데이’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는 덕질도 있는 법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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