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남북 ‘문화 교류’ - 회고와 전망
남북은 요즘 또 새로운 형태로 ‘문화 교류’ 중이다. 풍선 대 방송이다. 세계가 웃을 일이지만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주로 전단이었다. 지난 세기 산이나 들에 가면 북한이 뿌린 전단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엔 주로 김 대통령의 사생활 추문을 주제로 한 전단들을 보냈다. 종이의 지질이나 인쇄를 보면 북한 제작인데 전단 끄트머리엔 ‘남한 서울에서 제작되었음’이라는 친절한 안내 말씀이 붙어 있었다. 남한도 물론 엄청난 양의 전단을 북에 뿌렸을 것이다. 양측 모두 별 소득이 없는 낭비였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말 경 큰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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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남 오물 풍선 vs 대북 방송 재개
전세계가 웃을 소모전 다시 시작
문화는 바깥 세상과 교류로 완성
정치선전 빼고 진정한 교류해야
」
반면에, 적어도 북한 정권의 핵심부에서는 남측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 없었고 오히려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기쁨조 파티에는 일본 군가와 함께 남측의 가요가 자주 등장하였고, 간혹 남측의 가수나 연예인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김 위원장은 특히 남한의 영화에 관심이 많아 특정한 영화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하고 관람 후에는 평과 조언도 즐겨하였다는 말도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양측 관계가 좋을 때에는 평양에서 남북의 연예인들이 많은 관객들 앞에서 대규모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북측 상층부의 제한된 인사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일반인들에 관한 한 현실은 달랐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은 휴전선의 전광판에 관하여 한층 더 강한 호소와 압력을 동시에 행사하려 하였다. 우리 내부에서도 여기에 동조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나는 반대였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육체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지적인, 정신적인 자극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북한의 문화 정책이란 주민에 대한 지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박탈이며 중대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읽을거리 하나도 변변치 않았던 소년 시절에 전쟁을 경험한 나의 세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대신 나는 휴전선의 전광판이나 방송을 정치적 선전이나 상대방 비방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였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치도 하였다. 내가 외직으로 떠나기 전에 대통령에게 이런 점을 밝힌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후 결국 전광판을 철거하였다는 소식을 외국에서 듣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국민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켜 단지 정치 권력의 필요에만 부응하도록 하는 폭거를 도와 주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을 저해하는 큰 실책이었다. 그 자체로 작은 영향일지 몰라도 전광판은 북한 사람들의 문화적인 세계를 다양하고 풍요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고 지적인 혹은 정서적인 자극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의 젊은이들이 더 다양하고 폭 넓게 외부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로서 작지만 매우 귀중한 기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북한 정부는 일련의 입법 조치를 통하여 주민의 문화 성향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이런 입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권이 바라는 방향으로 통제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뉴스에 따르면 매우 엄한 처벌이 뒤따르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는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문화는 외부와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자크 데리다는 이점을 강조하여 ‘모든 문화는 식민지 문화’라는 말까지 하였다. 현실적으로 더욱 근본적인 것은 북한 정권의 핵심으로 갈수록 외래 문화 선호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 정부가 유사 종교 단체 같은 문화적 쇄국주의를 이행하려면 최소한 북한 상층부가 외제 사치품을 손절하는 모범부터 보여야 한다. 말하자면 호치민이나 마오쩌둥 같이 해야 한다. 이들도 결국은 실패했다. 아울러 남측의 대북 방송이나 풍선에도 정치 선전은 없어야 한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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