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없애는 게 최선일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 주택 임대차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전셋값 상승률을 4년간 5%로 제한하는 이른바 ‘임대차 2법’을 시행했다. 전문가들은 1990년 전세 파동 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당시 정부와 여당은 단 며칠 만에 법안 발의부터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까지 군사작전을 하듯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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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 임대차 2법 폐지 추진
오류 보완으로 혼란 최소화해야
」
법 시행 직후 전세 물건이 잠기면서 임대인 우위 시장이 됐고, 이를 활용해 임대인이 2년 뒤 인상분을 미리 반영하면서 전셋값은 급등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2년의 시간을 번 사람들은 손뼉을 쳤지만, 당장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은 전세 품귀와 가격 급등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와 부동산시장의 예상대로 전셋값이 폭등하고, 곳곳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일었다.
4년이 지난 2024년 현재, 정부는 올해 들어 전셋값이 무섭게 뛰고 이로 인해 집값마저 급등세를 보이자 최근 임대차 2법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달 초 본지에 “임대차 2법으로 전월세 가격 급등과 전세 물건 감소 등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두 법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임대차 2법 폐지는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취임한 윤 대통령은 임대차 2법 폐지를 위한 이렇다 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임대차 2법을 만든 민주당이 반대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대통령실과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임대차 2법 폐지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도였다. 여소야대 상황은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민주당이라는 벽은 더 크고 단단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셋값이 뛰자 내놓은 게 고작 임대차 2법 폐지 추진이라는 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임대차 2법 시행 4년이 지난 만큼 임대차 2법 폐지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4년 전 임대차 2법에 반대하던 전문가들조차 인제 와서 폐지하면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임대차 2법의 계약 만기(4년)가 돌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폐기하면 시장 불안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고 이 법을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4년 전 임차인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급조한 만큼 분쟁의 소지가 많고, 정부가 임대차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측면이 있는 건 분명하다.
따라서 큰 틀에서는 임대차 2법의 구조를 유지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민주당을 설득해 임대·임차인 간 분쟁 발생 소지를 줄여가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고가 전세나 지역에 따라서는 전월세상한제 적용 배제나 상한선을 달리하는 식이다. 중·고교 학제에 맞춰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1년’으로 바꾸거나, 인상률 자체를 조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이후에는 임차인이 계약 만료 전이라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손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임대차 문제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분쟁도 많고, 분쟁 이후 후유증도 적지 않다. 그런 분쟁을 확대하고 증폭시킨 게 민주당인 만큼 앞으로 있을 정부의 임대차 2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해 본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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