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광화문 조형물, 서울의 얼굴에 난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영화 속의 여러 장소 중에서 저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도 등장한다. 나중에 ‘쫓기는 자와 쫓는 자’로 맞서는 기호학자 랭던과 경찰국장 파슈의 첫 만남 장소가 여기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유산을 모아놓은 보물창고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시작과 마무리 부분에서 의미 있는 ‘상징공간’이다. 이와 별개로, 영화에 나오는 유리 피라미드에 관한 평이 재밌다. 첫 만남에서 “유리 피라미드를 본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에 랭던이 호감을 보이자, 파슈는 이렇게 대꾸한다. “파리의 얼굴에 난 상처다.” 극중 파리 출신인 이 ‘비중 있는 인물’은 유리 피라미드의 생김새가 영 못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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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의견 충실히 듣는 과정 필요
예술성 뒷받침돼야 존재가치 있어
시장의 강력한 실천 리더십도 중요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교훈 삼아야
」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는 ‘국가적인 상징 조형물’ 관점에서 보면 광화문 프로젝트와는 결이 달라 보이나, 보편적인 ‘공공조형물’로 보면 둘은 공통점이 없지 않다. 유리 피라미드가, 파슈 국장의 말마따나 ‘파리의 얼굴에 난 상처’라는 비아냥을 극복하고 파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과정은 참고할 만하다.
우선 도시에서 차지하는 두 곳의 유사한 ‘장소성’을 살펴보자. 유리 피라미드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왕궁으로 쓰이던 곳이다. 프랑스혁명을 거쳐 시민의 품에 안겼다. 이점에서는 왕도의 중심이었던 광화문 광장도 역사적인 맥락은 같다. 도시계획 면에서도 둘은 닮은 구석이 있다. 유리 피라미드가 콩코드광장을 거쳐 개선문, 신도시 라데팡스로 이어지는 파리시 기간축의 시작점이요 배꼽이듯이, 광화문도 남대문을 거쳐 용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축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도시계획 측면에서 의미 있는 코드가 담겨있으니, 이곳 중심의 랜드마크 설치 구상은 지자체장이라면 언제든, 누구든 뜻을 펼 수 있는 프로젝트다. 도심의 뜻 깊은 장소인 만큼 국가적인 상징 의제를 덧붙이는 것도 저어할 일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제대로 잘 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솔직히 지난 번 서울시가 내민 예시도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거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걸 의식한 듯, 의견 수렴을 한다고 하니 보완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럼 논란을 최소화하며 기획에 성공하려면 어때야 할까. 유리 피라미드의 설립 과정에서 두 가지 정도의 배울 점을 꼽으면 이렇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국가적 상징 조형물이든 일반 공공조형물이든 그것은 ‘예술(작품)이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1980년대 유리 피라미드 계획안이 발표되자 프랑스 사회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형태도 재질도, 역사적 맥락도 기존 공간이나 건물과는 이질적이었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I. M. 페이)란 것도 약점이었다. 이 논란을 잠재우고 결국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을 넘어 파리의 상징이 된 건 독창성, 다시 말해 상식 너머의 예술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 새로 들어설 조형물도 소재가 무엇이든 존재가치를 예술성으로 입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음은 그 예술성을 믿음과 확신으로 실천하는 강력한 리더십이다. 정점에 서울시장이 있다. 유리 피라미드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꾀한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그랑프로제)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파리의 또다른 획기적 건축물인 퐁피두센터도 미테랑 집권기에 문을 열었다. 오늘날 파리의 주목할 현대 건축물은 이 시기의 유산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프로젝트로 기획돼 추진한 결과물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따갑다. 예술로서 ‘존재증명’을 전혀 하지 못한 탓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예술이어야 오래 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명언이 있지 않은가.
정재왈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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