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벽과 문
벽과 문
천양희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 또한 벽이지요
절망이 철벽 같을 때
새벽조차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지요
세상에 벽이 많다고 다
낭비벽이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벽에다 등을 대고 물끄러미 구름을 보다보면
벽처럼 든든한 빽도 없고
허공처럼 큰 문은 없을 듯하지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자, 그럼 열쇠 들어갑니다
벽엔들 문을 못 열까
문엔들 벽이 없을까
* 인도의 선각자 비노바 바베의 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나와 상대방은 물론 더 많은 이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우리’라는 말. 이 말의 품은 참 넓고 다정합니다. 입술을 모아 ‘우리’, ‘우리’라고 발음해보면 마치 둥글게 모여 서로의 손을 맞잡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다만 이러한 특성 탓에 ‘우리’는 간혹 구별과 경계를 만듭니다. ‘우리’에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 소외감을 가져다주는 것이고요. 내가 속해 있는 숱한 우리들을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것이 경직되거나 닫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다 보면 ‘우리’는 쇠창살로 둘러진 짐승의 우리처럼 변하고 말 것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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