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이 좋다, 당신의 건강에도
앤서니 마자렐리, 스티븐 트리지악 지음
소슬기 옮김
윌북
각박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려 모여드는 사람들 모습을 CCTV나 블랙박스 영상에서 볼 때면 뭉클해진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입을 하지 않거나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로 수십 년 동안 거론돼왔다. 당시 20대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바텐더 일을 마치고 이른 새벽 귀가하던 길에 아파트 건물 밖에서 여러 차례 칼에 찔려 숨졌다.
특히 충격을 안겨준 것은 30분 동안 창문을 통해 사건을 목격한 이웃 주민 38명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피해자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뉴욕타임즈의 보도 내용이었다. 이런 비정한 무관심은 여러 관련 연구를 촉발했고, 각종 대중문화 작품에도 영감을 줬다. 하지만 재판 과정 등을 통해 다른 사실들이 드러났다. 훗날 뉴욕타임즈도 별도의 기사를 통해 인정한 것처럼, 해당 보도에는 과장과 오류가 섞여 있었다.
이 책은 제노비스 사건과 함께 또 다른 연구도 소개한다. 덴마크 연구진이 영국·네덜란드·남아공의 CCTV에 찍힌 갈등 사례 200여건을 분석한 결과다. 어느 나라든 열 중 아홉 건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이 도움을 주려 나섰고, ‘방관자 효과’와 반대로 군중이 많을수록 누군가 나설 가능성은 커졌다고 한다.
감상적인 분위기의 우리말 제목과 달리 이 책의 영어 원제는 ‘Wonder Drug’. 두 지은이는 미국의 의대 교수이자 각각 응급의학, 중환자 집중치료 전문의다. 이들이 인간의 이타성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권하는 약(drug)이자 처방은 남을 돕는 것. 윤리적, 사회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저자들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시간이든 돈이든 움켜쥐는 대신 ‘주는 사람’이 되는 것, 이타적 행동과 공감을 하는 것이 나의 건강, 장수, 행복, 심지어 성공에 고루 효험이 있다는 주장을 뇌과학·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적 연구와 실험 등을 근거로 펼친다.
이에 따르면, 가족을 잃는 아픔이나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이 도움될 수 있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 회복 치료 마지막 단계에 다른 알코올 중독자를 돕는 봉사 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아닌 사람보다 회복 상태의 지속이 길었다고 한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는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지은이들은 이타적 삶을 살려면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이들은 조직심리학자의 연구를 인용해 자기중심 성향, 타인중심 성향의 높고 낮음에 따라 네 유형을 설명한다. 그중 자기중심 성향이 낮고, 타인중심 성향이 높은 사람은 쉽게 말해 ‘만만한 호구’, 좋게 말해 ‘만만한 착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직장에서 정반대 성향의 극단적 이기주의자, 이른바 ‘자기우월성 환자’ 유형에게 이용당하거나, 번아웃에 빠지기 쉽다. 나아가 자기중심 성향이 너무 낮으면 ‘병리적 이타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저자들은 ‘주는 사람’은 두 성향이 모두 높고,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우호성과 관계가 없다고도 전한다. 퉁명스러운 듯 보여도 배려심 많은 츤데레일 수 있단 얘기다.
책에 소개되는 연구 중에 병원 얘기도 솔깃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응원하는 말을 단 40초만 해도, 환자의 불안이 눈에 띄게 줄고 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다.
지은이들은 공감 역시 향상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이타적 행동과 공감의 습관이 뇌의 배선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논문과 책을 인용해서 쓴 책이라 독자에 따라서는 낯익은 정보도 많을 터. 그럼에도 이런 처방약이라면 거듭 복용해도 큰 부작용은 없을 듯싶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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