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탈출한 MZ세대의 ‘회사공동체’ 실험
매들린 펜들턴 지음
김미란 옮김
와이즈베리
‘자본주의란 무엇이냐’는 논쟁에는 끝이 없다. 그동안 너무나 다양한 자본주의가 명멸했으며 지금도 각종 새로운 자본주의들이 실험 중이다. 개인이나 회사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실행하는 자본주의의 형태들은 어찌 보면 제각각 모두 다 다를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의 지은이 매들린 펜들턴이 선보이는 자본주의는 좀 충격적이다. 온갖 역경을 딛고 중소기업을 직접 경영하고 있는 지은이가 실천 중인 자본주의는 창업주이자 CEO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직원의 임금과 복지가 동등한 것으로 현실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종류다. 지금은 그의 모범을 따라 평등 임금을 시행 중인 회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경제생활 경험을 토대로 한 자서전이다.
지은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가장 빈곤한 프레즈노에서 성장했다. 가난한 펑크족 부모는 매들린이 어릴 때 이혼했다.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매들린은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14세 때부터 일을 해야 했다. 경기장 매점, 쇼핑몰, 사진관 등에서 일을 했지만 가난을 벗어나기에는 턱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친구 브릿의 제안으로 한 명이 200달러씩, 합해서 400달러를 투자해 빈티지 의류를 재가공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터널비전’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회사는 점차 안정되고 규모도 커지기 시작했다. 초창기 수익은 많지 않았지만 매들린은 사업주인 자신을 포함해 터널비전의 모든 직원은 같은 일당을 받기로 했다. 그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비대면 전자상거래는 초호황을 누리게 됐고 회사는 날로 번창하고 있다.
터널비전은 모든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보편적 임금과 주4일 업무를 공식화했다. 2022년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 28시간 근무로 전환했다. 그러자 1분기에 매출이 전년도보다 오히려 52%나 증가했다고 한다.
당시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자 터널비전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용했다. 이 회사는 사람들이 일하러 갈 곳이 없을 때 찾는 곳이 됐다. 그 결과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직원들이 회사를 자신의 사업처럼 아끼게 됐다.
회사는 정규직 인원을 몇 명 더 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쉬도록 하는 무제한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때때로 직원들은 몇 주, 심지어 몇 달을 출근하지 않기도 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더 높아진 결과로 나타났다. 직원이 일할 기분이 아니라면 집에 머무르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는 기업철학이다.
초과 이익은 공동체 정신에 따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했다. 모든 직원에게 새 자동차를 마련해 주고 모두가 주택 구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모두 같은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직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혁명으로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지은이는 모순이 많고 탐욕적인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비판적으로 본다. 자본주의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하면 회사공동체가 함께 살아남을지를 모색하는 매들린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모든 직원을 회사의 필수적인 자산으로 보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고 여기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은 과연 지속가능할까. 그 힌트는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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