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유지태·정우성의 어떤 시도
우리 국회와 마찬가지로 미 의회에서도 실력자들이 취재진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다. 다수당 지도자로 각각 하원과 상원의 키를 쥐고 있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척 슈머 원내대표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무리가 단순한 구름이 아니라면 그땐 기자도 거기로 뛰어간다.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스타가 떴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왕년에 잘나갔던 래퍼 50센트와 어셔가 올여름 의회를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흑인의 경제 참여’와 ‘소아 당뇨 치료’란 사회적 과제를 돌고 온 이들은 의원들을 만나 입법 협조를 구했다.
지난달 배우 유지태씨가 워싱턴을 찾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불의를 키우는 건 무관심”이라며 “가장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달라”고 했다. 이 주제와 관련해 많은 사람을 만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취재해 기사를 썼다. 아직도 “한국 인권이나 신경 쓰지 무슨 북한 인권이냐”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무지(無知)와 무관심이 팽배한 영역이다. 애초에 좌우로 갈릴 사안도 아니지만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은 사람들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국내에선 정치 문제가 돼 버렸다. 이런 가운데 나온 유씨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이 분야에 천착해온 이들에겐 한 줄기 빛이 됐다. “전략 자산이 떴다” “만인이 할 일을 했다”는 어느 분의 말이 호들갑처럼 들리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정우성씨가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자리에서 9년 만에 사임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2016년 탄핵 정국 때 한 극장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친 건 군중 심리에 영합하고 싶었던 한 배우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본다. 하지만 적어도 난민·소수자 문제에 있어서 정씨는 진심이었다. 10년 가까이 세계 곳곳의 난민 캠프를 다니며 직접 물을 길었고, 때론 언론과 논쟁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혹자는 삼성동에 집이 있고 청담동에 건물도 있는 그를 향해 “당신 거실에나 난민을 들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씨의 활동 덕분에 누군가는 이미 다가왔고, 앞으로 더 큰 화두가 될 난민 문제를 미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는 연예인이 본업에서 벗어나 정치·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 법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이 “시민의 마음을 다치게 했으니 내란”이라 궤변을 늘어놓거나, 전문가들도 가만히 있는데 괴담을 유포하고 우려를 부추기는 행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축적한 유명세를 활용해 다원화된 사회 속 어떤 가치를 설파하고, 그게 공론으로 이어진다면 색안경만 끼고 볼 일은 아니다. 유지태가 깃발을 든 북한 인권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정우성이 천착했던 난민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 두 사람 때문에 한 번이라도 숙고해봤다면 그걸 기꺼이 ‘선한 영향력’이라 불러도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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