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7] 일본 해상자위대와 카레
일본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카레라이스는 그 유래가 깊다. 1872년 발간된 요리책에 이미 소개되어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초기에는 재료의 수입이 제한적이어서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1902년 영일동맹 이후 영국군이 함정에서 인도의 카레 가루를 요리에 응용해 먹는 걸 지켜보던 일본군에게 만드는 법이 전해졌다.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영국에서 카레 요리는 이미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만큼이나 보편적인 국민음식이 됐다.
당시 쌀밥 위주로 식사를 하던 많은 일본의 해병들이 비타민 B1이 부족해 각기병으로 사망하던 상황이었다. 야채와 고기를 섞어 만든 카레는 이를 방지하는 좋은 영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매주 금요일 식단으로 제공되면서 오랜 해상 근무를 하는 해병들에게 요일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1923년에 식품회사 S&B가 분말 카레를 만들면서 카레는 일본 전역에서 간편한 음식으로 보급됐다. 연간 2조원이 넘는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해상자위대 기지가 위치한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横須賀)시에는 전역한 취사병들이 함정에서 만들던 레시피로 카레 전문점을 차렸고, 이는 많은 퇴역 해병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런 몇 군데 카레 맛집의 유명세를 타고 시(市)는 1999년 ‘카레의 도시’를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카레를 도시의 대표 음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 아침이면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늘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라이스만 먹었다는 야구 선수 이치로의 이야기처럼 카레는 일본인들의 솔 푸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의 국도변에는 ‘지방 소비’를 주제로 지역의 식품과 잡화 등을 판매하고 관광정보를 제공하는 휴게소 ‘마치노에키(まちの驛)’들이 있다. 해상 자위대 부대가 위치한 바닷가 근처 도로변의 마치노에키 매장들에는 잘 보이는 곳에 어김없이 해상 자위대의 카레가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에서 취사병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 부대의 맛있는 레시피가 많이 공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맛집이나 상품들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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