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풀뿌리가 무너지면서 성평등도 같이 무너진다"
[토론회] 영화제 지원 예산 56억→올해 28억, 지역영화 예산 12억→올해 0원
'풀뿌리 영화' 예산 삭감에 이어 티켓 3% 부담금 폐지 예고…"이례적 삭감 근거 밝혀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를 비롯해 지역영화와 각종 영화제를 지원하는 영화발전기금이 흔들리고 있다. 영화제 지원 예산은 지난해 56억 원에서 올해 28억 원 수준으로 절반이 삭감됐고, 지역영화를 지원하던 예산은 지난해 12억 원에서 올해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3월 민생대책이라며 영화발전기금에 적립하는 영화관 입장권(티켓)의 3%를 부과금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금의 안정성이 흔들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 영화계 내에서 주로 열악한 위치에서 일하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지금의 위기가 더 크게 영향을 끼칠 거란 우려도 나왔다.
지난 2007년 신설된 영화발전기금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한 마중물 역할”(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해왔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기금존치평가보고서에선 “영상문화의 다양성 확보와 영상산업 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영화기획개발지원사업은 기금 안정화 이후 중장기적으로 지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영화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영화 제작 지원사업 중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조정하고 개봉지원·온라인 상영플랫폼 구축 등 안정적인 독립·예술영화 유통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지역의 문화예술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기획비 지원과 영화 상영 공간의 기본 인프라 개선 등 지원 방식 개선을 권고한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그림자 조세'라며 영화 부과금 폐지를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영화인들과 소통이 없었기에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22대 국회 들어 강유정 의원과 임오경 민주당 의원(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은 각각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의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등 영화발전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강유정·임오경·조계원 민주당 의원, 영화산업위기극복영화인연대와 함께 지난 1일 국회에서 영화발전기금에 대해 살펴보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지원 예산이 이례적으로 대폭 삭감된 배경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국가에서 보조금 관리 부분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도 예산 항목을 다시 조정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4~5월 정부의 대대적인 시민사회단체 감사, 6월 정부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각 부처마다 예산을 혁신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한 사건들을 거론하면서 “이후 2024년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해서 지난해 8월 문체위 국회의원들도 예산삭감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에 “일련의 흐름 가운데 영화제·지역영화 예산 삭감 근거가 미약한데도 삭감된 건 아닌지, 국회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영화제를 통해 좋은 작품을 발굴해야 하고 한국처럼 극장 상영문화가 획일화된 상황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는 근육과 시각을 영화제가 제시해줘야 한다”며 “매해 제작되는 독립영화가 1500여편, 극장 개봉작(장편)은 100편 정도이며 전체 스크린 3500여개 중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70개 미만으로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한 영화는 영화제가 유일한 창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OTT나 기타 온라인을 통해 배급되는 영화들도 영화제에서 검증된 영화들이 배급사가 정해지고 유통된다”고 했다.
많은 영화제가 영발기금과 함께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을 받아 개최된다. 중앙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는 건 지자체 예산으로만 진행하란 뜻이다. 김 위원장은 “지자체는 지정학적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관광객 유치에 중점적인 방향을 가질 수밖에 없어 대중적 영화를 요구한다”며 “영화창작자·관객·영화산업의 생태계 안에서 다양성 확보 등 보이지 않는 본연의 역할이 사라지게 되므로 최소한의 국가의 영화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상 영발기금 지원금에 맞춰 지자체 예산을 매칭해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중앙 예산이 없으면 영화제 측에서 지자체에 지원을 요청할 주요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예산삭감과 지역영화 예산 삭감은 곧 비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진다.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은 “영발기금 조성에 영화관 입장권의 3%를 걷는데 지난해 기준으로 수도권 관객들 부과금이 절반 조금 넘고 47%를 비수도권에서 걷는데 그러면 영발기금을 지역에도 사용해야 한다”며 “국가균형발전이란 시대적 과제에 대응해 청년인구가 유출돼 지역소멸되고 있는에 이를 가속화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풀뿌리 영화의 위기가 여성 영화인의 위기로 연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는 “독립·예술영화, 지역영화, 영화제가 영화계의 풀뿌리인데 그 뿌리를 부러뜨리고 있고 그 뿌리가 부러질 때 같이 무너지는 게 성평등이고 여성”이라며 여성영화인모임 구성을 보면 프로듀서와 연출파트에서 독립영화 종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 프로듀서의 83%가 독립영화(상업영화는 17%), 연출은 67%가 독립영화(상업영화는 33%)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35편 중 여성감독은 1명(임순례)이었고, 여성제작자는 22명(23.9%), 여성 프로듀서는 13명(23.6%), 여성 주연은 9명(25.7%), 여성 각본가는 12명(21.8%), 여성 촬영감독은 0명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영화현장에서 촬영감독은 고임금 직군인데 유리천장이 굉장히 심하다”며 “저예산 영화는 여성에게 주로 맡기고 블록버스터 영화는 남성에게 연출을 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영화 전반에 걸쳐 투자가 경색된 상황에서 영발기금에서 독립예술영화와 영화제, 지역영화에 대한 예산이 삭감된 건 상업영화씬에서 활동이 제한적인 여성감독 창작활동에 매우 위협적 요인”이라며 “독립예술영화, 영화제, 지역영화에 대한 예산 회복과 더불어 여성 창작자를 위한 펀드와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영화발전기금 사용이 궁극적으로 영화계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재정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관장은 “영화계에서 다른 사업을 줄여서라고 독립영화, 영화제 지원 등에 예산을 쓰겠다고 결정하면 그렇게 사용할 수 있어야 기금으로서 가치가 있고 예산의 민주주의, 재정의 민주주의가 완성될텐데, 일반회계가 아닌 기금을 놓고도 영진위원들조차 결정할 수 없다면 기획재정부가 전횡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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