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 ISDS 판정’ 취소소송 영국 법원서 각하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에 불복해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각하됐다. 정부가 애초부터 승소 가능성이 낮은데도 소송을 이어가면서 국민 세금 부담만 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법무부와 엘리엇 등에 따르면 영국 상사법원은 지난 1일(현지시간) “대한민국의 취소 신청은 영국의 중재법 제67조상 관할권 다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각하했다. 엘리엇은 입장문에서 “대한민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금으로 엘리엇에 비용과 이자를 포함해 약 1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며 “영국 법원의 결정은 법리에 충실하고, 영국법상 확립된 원칙, 중재를 존중하는 영국 법원의 접근 방식, 대한민국의 무리한 항소 등에 비춰볼 때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엘리엇은 “본건의 장기화는 투자처로서 한국 시장의 명성을 저해한 한국 고위공직자들과 부처들의 부정행위를 계속 상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와 엘리엇 간 다툼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촉발됐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합병 비율에 있어 삼성물산 주주가 불리하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 의사 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엘리엣에 지연 이자와 법률 비용 등을 포함해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중재판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연루된 한국 법원의 국정농단 사건 유죄 판결 내용을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합병 찬성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합병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한국 법원이 인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판정에 불복해 지난해 7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와 분리된 상업적 행위일 뿐이어서 투자국 차원의 협정 위반 행위를 판단하는 ISDS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공공기관 등이 소수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 사안에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ISDS 사건은 찾기 어렵다”며 “자본주의 기본 원칙에 반해 충분히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의 취소 소송 제기 때부터 법조계에선 ‘정부가 패소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한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복리로 이자가 늘어나 고스란히 국민 세금 부담이 증가한다”며 “(항소 대신) 박근혜 정권 관계자 등에 대한 구상금 청구를 즉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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