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시간 달라는 구영배 대표…혁신가일까, 사기꾼일까.

안상우 기자 2024. 8. 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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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산 사태 한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낸 구영배 대표…하지만 거짓과 의문은 더 쌓여만 간다

▲ 큐텐의 구영배 대표


지난달 초 위메프는 입점 판매자들에게 5월분 대금을 정산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기업인 큐텐 측은 "전산 시스템 오류 때문"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티몬까지도 판매자에게 5월분 대금 정산 무기한 지연을 공지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티메프(티몬과 위메프)' 자력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하자, 시선은 모기업인 큐텐의 구영배 대표에게로 쏠렸습니다. e커머스 산업의 '대부' 격인 구 대표라면 사재 출연이든 신규 투자 유치든 해법을 갖고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정산 사태 약 한 달 만인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구 대표는 국회에 출석하면서 오히려 의문은 더욱 깊어졌고, 사태 해결에 대한 희망보다는 회의가 더 커졌는데요. 그가 새롭게 남긴 의문들과 거짓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문 1 : 사라진 판매 대금 1조 원…프로모션 비용으로 다 썼다!?


티메프는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고 소비자에게 돈을 받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주지 않고 2개월 정도 뒤에 판매자에게 정산해 줬습니다. 그런데 티메프는 지금까지 2,745억 원이나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주지 못했습니다.(출처 : 기재부) 그나마 이건 이번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6, 7월에 판매된 것들은 집계도 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국회에 출석한 구 대표는 6, 7월에 각각 얼마나 판매했는지, 그리하여 앞으로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줘야 할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미정산금은 총 1조 원에 달할 걸로 추정됩니다.) 대신 티메프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만 확인시켜 줬습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구 대표가 어디론가 빼돌렸을까요? 아니면 큐텐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구 대표는 프로모션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
"대부분의 돈은 사실 전용한 것이 아니라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사실은 프로모션으로 쓰는 것입니다. … '위시' 인수 과정에서 티몬과 위메프까지 동원해서 400억 원을 차입하긴 했지만 바로 한 달 내에 상환했습니다."


즉, 다른 계열사 인수 자금으로 쓰긴 썼는데 한 달 만에 상환해서 이번 사태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건 무리한 가격 경쟁에서 비롯된 프로모션이었단 것입니다.

구 대표가 말하는 프로모션이란, 판매자나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티메프가 부담하는 일종의 비용입니다. 가령, 상품 가격은 1만 원이지만 다른 경쟁 e커머스 플랫폼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이 가운데 20%를 티메프가 부담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8천 원만 내면 되고, 두 달 뒤에 티메프가 2천 원을 더해 판매자에게 1만 원을 정산해주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티메프는 영업 과정에서 프로모션 비용으로 얼마를 사용했을까? 가장 쉬운 확인 방법은 두 회사의 영업비용(매출 원가 + 판매비·관리비)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티몬은 최근 3년 동안 평균 2,309억 원을 사용했고, 위메프는 평균 2,432억 원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영업 비용에는 급여, 교통비, 통신비 등 각종 비용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백 번 양보해서 이 모든 비용을 프로모션 비용이라고 쳐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두 회사 다 합쳐서 1년 동안 나가는 비용은 평균 5천억 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라진 1조 원을 두고 프로모션 탓만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 살과 뼈를 깎아 먹는 프로모션이 정말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요? 혹은 그 이면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쏟아지는 추가 질문들에 구 대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
"사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프로모션에 관해서는 저는 솔직하게 잘 알고 있지 않습니다."

 

의문 2: 구 대표만 알고 있는 800억 원의 정체는?

사라진 1조 원 대신 구 대표가 내민 것은 800억 원입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당장 조달할 수 없다고 구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
"죄송스럽게도 우리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 그건 800억인데, 중국이라는 규제가 많기 때문에…"


국회에 출석해 있는 동안 구 대표는 이 돈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돈이며, 왜 묶여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의심스러운 건, 금액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점입니다.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지난 27일 강남 티몬 사무실에서 피해자와 취재진 앞에서 "큐텐이 중국에 6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바로 빼 올 수가 없어 대출하려고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하루 뒤인 28일에는 큐텐 측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5000만 달러, 우리 돈 약 700억 원을 해외 계열사인 위시를 통해 조달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만에 100억이 늘어난 겁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엔 구 대표가 직접 800억 원을 언급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돈이기에 거론될 때마다 100억 원씩 불어나는 것일까요?

이 돈의 정체에 대해 금융당국에도 물어봤지만, 구 대표는 당국에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자금 출처와 조달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피해 회복을 위해 한 푼이 급한 지금, 800억 원은 사용될 수 있는 걸까요?

거짓 1 : 전산 오류라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지난달 7일부터 위메프가 일부 판매자에게 5월 분 대금을 정산하지 못하자 모기업인 큐텐 측은 전산 시스템 오류 때문이라고 즉각 대응했습니다. 또 지난달 17일에는 입장문을 내고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전산 시스템 장애"라면서 판매자에게 정산 지연에 따른 연 이율 10% 수준의 지연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공정위는 직접 현장 점검을 나가기도 했지만 비슷한 해명을 했고, 금감원에게도 마찬가지의 설명을 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구 대표는 국회에서 다른 대답을 내놨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
"(기술적 문제였습니까? 아니면 재무적 문제였습니까?)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왜 기술적 문제라고 허위 보고를 했습니까?) 제가 보고를 한 바는 없습니다."


만약 처음 문제가 터졌던 지난달 초 즉각 사실대로 상황을 시장에 알렸다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이번 사태가 본격화기 전까지 보름 정도의 시간 동안 만큼은 소비자도, 판매자도 티메프를 이용하면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의 대가는 컸습니다.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7월 티메프의 카드 결제 추정 금액은 무려 5,378억 2천만 원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2 : '나스닥 상장'이라는 만병 통치약

큐텐 계열사


티메프는 물론,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 등 다른 계열사들도 판매대금 정산 지연을 줄줄이 겪으며 위기에 빠졌습니다. 2년 새 인수한 계열사들이 휘청대는 동안 다른 계열사인 '큐익스프레스'는 쭉쭉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 2011년 설립된 큐텐의 물류 계열회사입니다. 설립 초기 큐텐의 국제특송 업무를 전담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최근엔 해외 직구 열풍에 힘입어 매출이 나날이 늘면서 나스닥 상장에 성공할 경우 기업 가치는 최대 10억 달러, 우리 돈 약 1조 3,700억 에 달할 걸로 예상됩니다.

큐텐의 무리한 확장의 과실을 큐익스프레스만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국회에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티메프 등 자본잠식에 허덕이는 e커머스 회사를 인수한 것 아니냐는 추궁도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구 대표는 극구 부인했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
"(e커머스 업체를 마구잡이로 쇼핑해 놓고 먹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습니다.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정으로 한 치의 그런 욕심 없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한 건 구조조정과 합병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큐익스프레스의 상장과는 관련이 없고, 티메프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충분히 정상화시킬 수 있단 겁니다. 그런데, 큐텐이 지난해 말 금융당국에 제출한 티몬의 경영개선계획서에는 구조조정 또는 합병에 대한 내용은 1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바로 '큐익스프레스'와 '상장 성공'이었습니다.

골자는 큐익스프레스가 상장을 통해 자본 조달에 성공하면, 큐익스프레스로부터 총 3차례에 걸쳐 '최대 550억 + @'를 투자받고 이 가운데 20%는 판매자 보호를 위해 예치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큐익스프레스의 글로벌 물류망을 활용한 상품군 확대도 계획에 포함돼 있습니다. 큐익스프레스의 상장 없이는 티메프의 정상화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큐익스프레스가 정말 상장에 성공한다면 이 모든 사태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큐익스프레스 측은 "큐익스프레스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해당 계획서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사전에 논의하거나 합의된 내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현재는 상장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지만, 과거 IPO를 검토하였을 당시에도 자본시장에서 조달할 투자금으로 큐텐이나 큐텐의 계열사에 투자할 계획은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구 대표가 제시하는 구조조정도, 나스닥 상장도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시간을 달라는 구영배 대표, 궁지 몰린 혁신가인가? 거짓 일삼는 사기꾼인가?

국회에 출석했던 구 대표는 시종일관 e커머스 생태계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설명하려 했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정말 궁지에 몰린 혁신가일까요? 그래서 시간과 믿음만 보태준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무엇이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구 대표와 큐텐이 두 차례의 거짓말을 통해 시간을 끌며 피해를 키웠고, 지금은 우리 앞에 또 다른 의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안상우 기자 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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