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도파민’ 중독된 MZ세대 잡는다...스포츠는 지금 시간 전쟁중 [올어바웃스포츠]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테니스 경기는 세트 승리를 위해선 상대보다 2게임을 많이 따야 했습니다. 뉴포트 대회 단식 결승전은 결국 6-3, 9-7, 12-14, 6-8, 10-8로 총 5세트 83게임이 진행되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지켜보던 관중들은 선수들만큼 진이 빠졌고 그만큼 복식 빅매치도 흥이 나질 않았지요.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가장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뉴포트의 볼셰비키’란 별명을 가진 토너먼트 디렉터 지미 반 앨런이었지요. “지긋지긋한 듀스 세트없이 경기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반 앨런은 이런 생각을 하며 훗날 ‘타이브레이크 룰’이라고 불린 새로운 테니스 규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급진적인 시스템은 당시 테니스 세계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반 앨런은 1965년 사비 1만 달러를 털어 프로선수 10명을 초청해 이같은 시스템의 대회를 열어보기도 했지만 선수들 반응도 역시 마뜩찮았습니다. 경기에 참여한 리차드 곤잘레스는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하지 않겠다”며 “25년간 이런 괴상한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패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VASSS는 외면받았지만 ’추가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는 4대 메이저대회중 하나인 US오픈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1970년 US오픈에서 처음으로 초기 타이브레이크 룰이 도입됐고, 개막일에 치러진 43경기중 26경기에서 최소 한 번 이상 타이브레이크 세트가 진행됐습니다. 선수들은 US오픈이란 대형 무대에서 이런 실험적인 규칙 개선이 이뤄진 것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9점중 5점을 선점하면 경기가 끝나는 추가 게임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서 애쉬는 이 규칙을 ’가미카제 연습‘이라며 “이렇게 짧은 추가 게임으로 경기 결과가 좌우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US오픈 주최측은 굳건했습니다. 토너먼트 디렉터 윌리엄 탈버트는 “이것은 테니스의 중요한 진전”이라며 “카레이싱, 농구, 축구 등 기타 주요 스포츠처럼 테니스도 결승선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스포츠가 관중들이 지켜보는 엔터테인먼트화가 진행되면서 ‘시간과의 싸움’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TV 등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미디어의 발달은 간소하고 규격화된 시간 제한을 강제하게 됐지요. 이같은 변화는 보통 신생 시장에서 먼저 시작되고 전통있는 시장이 이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테니스 역시 신대륙에서 1960년대 시작된 US오픈이 먼저 시작한 뒤 윔블던, 롤랑가로스(프랑스오픈) 등 구대륙 메이저 대회가 따라가게 된 것이죠. 윔블던과 롤랑가로스에선 최근까지도 마지막세트(5세트)는 2게임 이상을 앞서나가야 세트를 취할 수 있는 전통적 시스템을 취했습니다. 이러다보니 2010년 윔블던 남자 단식 1라운드에서는 3일에 걸쳐 11시간 5분동안 한경기가 치러진적도 있습니다. 이 경기는 3-2( 6-4, 3-6, 6-7, 7-6, 70-68)로 존 이스너가 결국 승리를 가져갔지만 타이브레이크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결국 2022년부터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마지막 세트까지 타이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야구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야구 본가인 미국의 메이저리그(MLB)는 여전히 무승부 규정이 없습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두 팀이 승부를 가릴때까지 경기를 치릅니다. 1984년 5월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밀워키 브루어스가 이틀동안 8시간 6분, 25이닝동안 경기를 한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이제 막 40년을 넘은 상대적 ‘신생리그’인 한국프로야구(KBO)는 12회 말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무승부로 처리됩니다. 텔레비전 보급과 함께 시작된 프로야구에게 ‘무한정 경기’는 팬들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야구계에선 7이닝 야구, 승부치기 규칙(연장이닝에선 주자 1,2루를 채우고 이닝을 시작하는 것) 등 경기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전향적인 규칙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잊을만하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MLB도 경기시간 단축을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년부터 ‘피치클락’을 도입하는 등 컴팩트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경주 중입니다. 주자가 없을시 투수는 1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는 피치클락이 자리잡은 지난해 MLB의 평균 경기 소요시간은 2시간 39분이었습니다. 직전년보다 25분 줄어든 수준이지요.
2022년 모닝컨설트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38%는 ‘좋아하는 스포츠팀이 없다’고 응답해 일반 성인(25%)보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중 57%는 ‘단순히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반면 20%는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로 했습니다. 또 47%는 프로스포츠 경기를 생중계로 본적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즉 테니스, 야구, 바둑 등 주요 스포츠가 경기 시간을 줄이는데 목을 매는 것은 잠재적인 스포츠 팬을 확보하려는, 진화를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지요.
스포츠도 진화가 필요합니다. 전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꾸준한 팬 유입을 위해선 ‘전통’보단 ‘변화’를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허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한 크리스타 데구치 선수는 결승전 이후 판정에 대해 “더 나은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바꿔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유도는 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유도판 ‘타이브레이크 룰’로 매트 위의 진화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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