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 벌거벗고 몸을 단련하다 [말록 홈즈]

2024. 8. 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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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형상화한 체조 이미지
1986년 가을,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신대두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중계를 보았습니다. 1982년에 인도 뉴델리에서 직전 대회가 열렸다는데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을 2년 앞두고 열린 대회라 국민적 관심이 컸습니다. 시골 아이가 경기장에 직접 갈 일도 없었고, TV 채널이라고 해봐야 KBS 1, 2, 3에 MBC가 다였습니다. 그래도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모든 곳에서 아시안게임 이야기만 들려주니, 아침에 눈 뜨면 세뇌된 듯 메달순위부터 궁금해졌습니다. 어느 저녁 TV에서 체조경기를 보았습니다. 국민체조밖에 몰랐던 촌보이(村ㅠ boy)는, 예쁘고 화사한 누나들의 역동적이고 예술 같은 모습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그동안 뜀박질, 물장구에, 공놀이에만 빠져 있다가, 신세계를 발견한 듯 설렜습니다. 2단 평행봉의 서선앵 누나가 기억납니다. 특히 마루운동에서 중국의 첸 쿠이팅 선수가 보여준 묘기 같은 동작들의 감동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이 머리와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함께 옆에서 함께 보고 있던 저의 2촌 신똘똘군은 동생의 그 모습이 신기했나 봅니다(똘똘이형은 두 살 위 영장류 소년으로 저와 아버지가 같습니다. 어머니도 같습니다).

“너 경기 말고 사람만 보이지?”

“형은?”

“나도.”

저는 우리 형이 참 좋습니다. 어릴 땐 형이었고, 자라서는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벗이며, 아버지처럼 든든합니다.

오늘은 20세기 소년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눈 뜨게 만들어 주었던 ‘체조’의 어원에 대해 탐구해 보겠습니다. ‘체조’는 ‘몸 체(體)’자와 ‘다룰 조(操)’자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조(操)’자에는 ‘단련하다’와 ‘운동하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영어로는 ‘gymnastics’입니다. 그리스어 ‘gymnazein’은 ‘벌거벗고 운동/훈련하다’란 뜻인데, ‘gymnos’는 ‘벌거벗은’을 의미합니다. 같은 뜻의 인도유럽조어(祖語) ‘nogw-‘에서 왔습니다.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에 나섰고, 그리스에서는 운동을 할 때 벌거벗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요약하면, 운동할 때의 ‘벌거숭이’ 모습이, ‘몸을 단련하다’라는 의미로 변화했고,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극강의 신체능력을 보여주는 예술적 스포츠’ 종목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리잡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체조라는 말이 사실상 ‘체육’과 동의어여서, 달리기, 던지기, 권투 같은 종목을 가리킬 때도 쓰였다고 합니다.

근대 체조는 독일에서 탄생했습니다. 교육개혁가였던 ‘요한 바제도(Johann Bernhard Basedow, 1724~1790)’가 근대 체조를 만들었고, 교육자 ‘요한 구츠무스’와 ‘프리드리히 얀’은 철봉, 평행봉, 평균대 등의 이론을 정립해, 독일 체조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건프리드리히가 세운 학교에서는 체조를 가르쳤는데, 이를 계기로 체조가 유럽 대륙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자, 그려면 체조의 다양한 종목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도마(跳馬: 뛰어넘을 도, 말 마. vaulting)’는 고대 로마의 군인들이 목마를 타넘는 말타기 훈련에서 왔으며 ‘뜀틀’이라고도 부릅니다. 영단어는 ‘vault’인데, ‘돌리다/구르다’를 가리키는 라틴어 ‘volvere’에서 왔습니다. 이 말의 뿌리는 인도유럽조어 ‘wel(돌다, 회전하다)’입니다.

안마(鞍馬: 안장 안, 말 마. 안장을 얹은 말)도 말과 관련 있습니다. 말 등 모양의 틀 위에서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몸을 지탱하여, 다리를 회전 및 교차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종목입니다. ‘말 안장 모양 틀 위에서 펼치는 공연 경기’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안마의 영어명은 ‘pommel horse’인데, 본래 ‘안장 머리’를 가리킵니다. ‘둥근 손잡이’를 뜻하는 pom에서 왔으며, 무기를 휘두를 때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사용되던 부분입니다.

철봉(鐵棒: 쇠 철, 막대 봉)은 ‘쇠 소재로 만든 매달리는 틀’에서 다양한 동작을 펼치는 운동입니다. 영어로는 ‘horizontal bar’, 즉 ‘수평봉’을 뜻하는데, 다른 체조 몽목인 ‘평행봉(parallel bars)’과 혼동하지 않도록 의역한 말입니다. ‘평행봉(平行棒: 바를 평, 갈 행, 막대 봉)’에서 평행을 뜻하는 ‘parallel’은 ‘옆에 서로(para allēlois)’를 뜻하는 라틴어 ‘parallelus’에서 왔습니다. 봉이 두 개라 ‘parallel bars’라고 부릅니다. 본래 근력을 키우던 정적 반복 운동이, 현대에 스윙과 회전 같은 역동적 동작을 펼치는 경기로 변모했습니다.

평균대(平均臺: 바를 평, 고를 균, 무대 대. balance beam)는 폭 10센티미터, 길이 5미터 정도의 좁고 긴 틀 위에서 선수가 수평면에서 연기를 펼치는 경기입니다. 몸의 유연성과 균형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수록 높게 평가받으며, 여성의 신체에 적합하고 실제로 여성 종목만 있습니다. 영어 ‘balance’는 두 번을 뜻하는 라틴어 bis(두 번)와 판이나 저울 추를 의미하는 ‘lanx’에서 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광선(光線: 빛 광, 줄 선)’으로 널리 알려진 ‘beam’은 본래 ‘살아있는 나무’를 가리켰는데, 10세기 말부터 ‘건물의 서까래, 기둥’이란 뜻으로도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링(rings)은 줄에 메단 동그란 손잡이 두 개를 잡고 연기를 펼치는 종목으로, 극강의 근력을 필요로 하며 남성경기만 있습니다. 게르만어 hringaz에서 온 ring은, 본래 ‘구부러진 것, 둥근 것’을 뜻했으며, 인도유럽조어 ‘구부리다/돌리다’를 뜻하는 ‘sker’가 그 뿌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마루(floor)는, 탄성(彈性: 튈 탄, 바탕 성) 매트가 깔린 바닥에서 구르기, 텀블링, 턴, 점프 등을 율동적으로 펼치는 경기입니다. ‘바닥’이나 ‘층’으로 익숙한 영어 ‘floor’는 ‘평평하다/펼치다’를 뜻하는 인도유럽조어 ‘pele’에서 왔습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환상의 연기로 제 가슴을 뒤흔들었던 첸 쿠이팅 누나가 다시 떠오르네요.

오늘 소개한 체조 종목들은 ‘기계체조(器械體操: 그릇 기, 틀 계, 몸 체, 다룰 조. apparatus gymnastics)’입니다. 틀이나 기계를 이용한 경기들인데 ‘apparatus’는 라틴어로 ‘도구/장비’를 의미하는 apparare에서 왔습니다. 마루운동이 왜 기계체조인지 궁금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탄성매트를 깐 마루 자체를 기계나 도구로 해석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기계라는 말을 ‘machine’으로만 해석하니, 처음엔 이해하기 어색하더군요. 원래 지역 언어와 어원 활용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파리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세느 강에서 수영경기를 한다는데, 수질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시간엔 물장구 놀이로 돌아오겠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사진=구글>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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