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아 아들'보다 '김원호 엄마' 소리가 더 많아지겠죠
김원호·정나은 혼복 은메달
韓 배드민턴 16년만에 쾌거
김, 구토 투혼 펼치며 결승行
엄마처럼 올림픽 시상대 올라
애틀랜타 금메달 땄던 길영아
보양식 챙기고 노하우도 전수
"이제는 길영아의 아들이 아닌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원호로 불리고 길영아가 김원호의 엄마가 될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메달의 신화를 쓴 김원호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구토 투혼까지 보여준 그는 한 팀을 이룬 정나은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그토록 바라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김원호·정나은 조는 2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중국에 0대2로 졌다. 결승전 결과는 아쉬웠지만 두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혼합복식 세계랭킹 8위였던 두 선수가 이번 대회 시상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었다. 조별 예선에서 1승2패를 기록해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8강에 오른 만큼 기대감이 높지 않았다. 다행히 8강 대진표에서 세계 1위 중국의 정쓰웨이·황야충, 세계 3위 중국의 펑얀제·황둥핑을 피하게 된 김원호와 정나은은 8강에서 완승을 거뒀다. 말레이시아의 첸탕지에·토이웨이를 상대로 2대0 승리를 따낸 두 선수는 4강행 출전권을 따냈다.
그러나 4강에서는 상대 전적 5전5패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세계 2위 서승재·채유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드시 승리를 따내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친 김원호와 정나은은 세계 2위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전력에서 뒤진다고 판단한 두 선수가 꺼내든 '필승 전략'은 한발 더 뛰기였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상대 공격을 막아낸 김원호는 3세트 도중 메디컬 타임을 부른 뒤 구토를 하기도 했다.
김원호와 정나은이 한 팀이 돼 온 힘을 다한 결과는 승리였다. 두 선수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던 서승재·채유정을 제압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08 베이징 대회 이용대·이효정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혼합복식 메달을 따낸 후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원호는 한국 최초의 올림픽 모자(母子) 메달리스트가 돼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원호의 어머니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인 길영아 삼성생명 배드민턴 감독이다. 매일경제 파리올림픽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김원호는 "지금까지 길영아의 아들로 살았는데 앞으로는 엄마가 김원호의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경기를 하지 않기 위해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4강전에서 구토한 건 창피하지만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감격을 누리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아들 경기를 지켜본 길 감독은 대견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매 대회마다 아들 경기를 분석하고 잠깐이라도 통화하는 등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유명한 길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장어, 홍어 등을 챙겨줬다. 기술과 경기 운영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김원호를 깨운 어머니의 한마디도 있었다. 김원호는 "엄마가 올림픽 메달은 하늘이 결정해주는 것이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했다. 이 말만 생각하며 경기에 집중했는데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결과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과정에 집중했던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배드민턴을 접한 김원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기대주였다. 남다른 유전자(DNA)를 물려받은 그는 2016년 주니어 아시아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과 2017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을 차지하는 등 세계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려 나갔다. 2018년 삼성생명 배드민턴단에 입단한 그는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복식 은메달, 남자 단체전 동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올해는 올림픽 메달까지 목에 걸게 됐다.
길 감독과 소속팀 삼성생명 스포츠단 관계자들은 김원호의 선전 비결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것을 꼽았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팀에 처음 입단했을 때는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단점이 없는 완성형 선수로 거듭났다. 새로운 기술이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연습에 몰두한 결과가 지금의 김원호를 만들었다"며 "삼성 스포츠단에서도 김원호는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남다른 DNA에 노력까지 더해진 만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한 팀을 이룬 정나은과의 환상적인 호흡도 이번 대회 시상대에 오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2년 4월부터 함께하고 있는 두 선수는 2년4개월간 함께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하면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복식에서는 두 선수의 호흡이 중요한데 김원호와 정나은은 흠잡을 때가 없었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서로를 믿고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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