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새 대신 줄넘기·영어…보육시설 전락한 태권도장

김다빈/정희원 2024. 8. 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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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전후 아이들의 대표 보육시설로 자리잡은 태권도장의 폐업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저출생 여파로 신규 수련생이 급감한 데다 줄넘기, 영어 등 사교육 위주 수업으로 운영되다 보니 청소년·성인에게 외면받고 있어서다.

대다수 태권도장이 10세 전후 위주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다 보니 청소년과 성인들로부터 점점 외면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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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에 폐업 속출…
청소년·어른도 안 찾은 지 오래
도장 대부분 '학원 뺑뺑이' 코스
저렴한 비용…학부모들에 인기
10세 넘으면 공부 등 위해 그만둬
기술 수련보다는 생활체육 중심
유소년 선수 발굴·육성과 멀어져
韓 태권도 경쟁력 떨어지는 요인


10세 전후 아이들의 대표 보육시설로 자리잡은 태권도장의 폐업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저출생 여파로 신규 수련생이 급감한 데다 줄넘기, 영어 등 사교육 위주 수업으로 운영되다 보니 청소년·성인에게 외면받고 있어서다. 다양한 연령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 실패한 탓에 태권도 관련 시장 위축과 함께 스포츠 본연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흐름에…문 닫는 태권도장 급증

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국내 태권도장은 244곳이다. 3곳에 그친 2013년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폐업 규모가 약 81배 커졌다. 연간 폐업 도장은 2016년 122곳으로 처음 100개를 넘어선 후 매년 165~322곳씩 폐업하는 실정이다.

전국 1만216개 태권도장은 저출생으로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신규 수련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다수 수련생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인 10세 전후다. 통상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도장을 그만둔다. 국기원에 따르면 태권도 수련을 중단한 인원 중 42.6%가 초등학교 고학년(11~13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단하는 이유로는 △운동 흥미 결여(22.5%) △상위 학교 진학(17.1%) △공부 지장 초래(15.4%) 등이 꼽혔다. 사실상 태권도장의 ‘보육 기능’이 끝나자마자 주 고객층이 도장을 떠나는 것이다.

그동안 태권도장은 맞벌이 부부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사범들이 유치원·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차량으로 도장까지 데려가고 보호자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까지 관리해주고 있어서다. 태권도장은 태권도 이외에 줄넘기와 피구 등 각종 체육활동, 영어 수업, 예의범절 교육 등까지 한다고 홍보했다. 저렴한 비용에 효과적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대중 보육시설로 자리매김했다. 워킹맘 유희민 씨(44·경기 남양주시)는 “인당 월 18만원을 내면 주 5회 아이들을 맡아 준다”며 “방학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관리해 주고 밥까지 챙겨주는 ‘종합육아센터’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유소년 인재 육성 어렵고 성인은 무관심

대다수 태권도장이 10세 전후 위주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다 보니 청소년과 성인들로부터 점점 외면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태권도 수련생 중 성인 비율은 1% 남짓이다. 태권도 사범인 40대 최모씨(서울 마포구)는 “‘태권도=어린이’란 인식이 굳어져 엘리트 교육을 받으려는 청소년이 오지 않으면서 생활 스포츠로서 성인이 배울 공간이 자연스럽게 소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형적 구조가 태권도 종주국의 국제 경쟁력 하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장 운영 목적이 수련이 아니라 보육이다 보니 유능한 유소년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게 여의찮은 실정이다. 이와 맞물려 관련 학과 상위권인 용인대와 경희대 태권도학과는 매년 경쟁률이 하락하고 있다. 2·3년제 대학 태권도과는 경쟁률이 2 대 1에도 미치지 않고 있다.

엘리트 체육인의 산실인 대학부와 실업팀의 비중은 쪼그라들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 태권도단체 1만4987개 중 대학부는 594개(4%), 실업팀인 일반부는 199개(1.3%)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수련생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성균 경희대 태권도학과 교수는 “미국 등 태권도가 인기를 끄는 다른 국가에선 대부분 성인 수련생 위주로 도장을 운영한다”며 “한국도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해 성인을 대상으로 도장을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빈/정희원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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