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행정 실패로 고통받는 국민들

2024. 8. 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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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자력발전 규모 확대로
이주했던 지역주민 또 이주
미군부대·콤팩트시티 조성
평택 고덕 주민도 마찬가지
행정당국의 택지개발 정책
꼼꼼히 예측못해 주민 피해
두세번씩 터전 뺏는 일 안돼

얼마 전 서생면이라는 곳에서 강연이 있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걸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데, 발전소 측에서 주변 지역 시민들을 위해 주최하는 문화 행사에서 강연을 요청해 이에 응한 것이다.

강연 전날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가 바라보이는 서생면 신리 포구를 걸어 다니며 지역 분위기를 확인하기로 했다. 신리 포구 어귀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마을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 한 장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다. "한수원은 신리마을 이주민들을 빚더미로 내모는가."

현지 사정을 모르는 분들로서는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 플래카드의 문구를, 강연을 준비하면서 사전에 확인한 바 있었다. 1970년대 초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당시 발전소가 위치하게 될 고리 지역의 철거민분들이 신리 포구 근처의 마을로 이주했다. 그런데 고리원자력발전소의 규모가 계속 확대되면서 한 번 철거되었던 주민들이 또다시 철거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간 이주를 위한 용지 매입비도 주민들이 자체 부담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기장군의 고리원전 용지에 살다가 서생면 신리 골매마을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처지가 된 한연자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백성이 살아야 공장도 생기지. 백성이 있어야 원자력도 있지." 나라가 한 가지 사업 때문에 두 번이나 백성을 내쫓을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전국을 답사하다 보면 이런 사례를 숱하게 확인하게 된다. 이런 문제가 땅끝 바닷가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 말이다.

"바이든이 주목한 평택", 경기 동남부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인 경기도 평택시에서도 이런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할 캠프 험프리스를 평택시 중부의 팽성읍에 만들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대규모 충돌이 있었다.

이 당시 캠프 험프리스를 만들면서 한국 정부는 현지 주민들을 네 곳에 이주시켰다. 나는 이 네 곳의 마을을 모두 찾아가서 현황을 확인했는데, 이들 마을 가운데 유독 대추리 주민들의 감정이 격렬했다. 그 배경에는 1942년에 일본군이, 1952년에 미군이 각각 부대를 만들면서 주민들을 이주시켰고, 50여 년이 지난 2006년에 세 번째로 이주당하게 되었다는 억울함이 존재한다.

여기에 이주단지를 짓기 위한 상당량의 금액을 주민들이 자비로 마련한 것도 한몫한다. 주민들은 "주변에서는 정부에서 이주단지를 전부 조성해준 것으로 오해한다"고 말한다. 고리·신고리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위해 추방된 울산시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캠프 험프리스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이의 땅. 2023년 6월 정부는 이곳에 콤팩트시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곳에 콤팩트시티가 만들어지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배후 주거지인 고덕신도시 및 지제 세교지구, 그리고 평택의 원중심인 평택시청 일대가 연담화하게 된다.

평택을 비롯한 경기도 동남부 및 이와 인접한 충남·충북 지역은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에 의해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런 정책은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으로서 물론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고덕면 좌교리에 살던 문제권 선생의 경우 고덕신도시에 토지가 수용된 뒤 그 근처에 개인주택을 지었는데, 그 일대가 이번에 콤팩트시티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또다시 수용당하게 되었다.

경기 동남부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위시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관련 권역이 장차 어느 정도로 성장할 것인지를 꼼꼼히 예측하고 시민들에게 고지하여 두 번, 세 번 철거되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성숙한 행정이다.

택지 개발을 특정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선심 쓰듯이 야금야금 발표하고, 그것도 땅 투기를 예방하겠다는 명분으로 비밀주의로 일관하다 보니 행정당국에 비해 정보력이 열세일 수밖에 없는 현지 시민들은 언제나 피해를 본다.

행정이란 정부나 지자체가 시민들을 상대로 비밀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꼼꼼하고 투명한 행정을 수행하지 못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씩 삶의 터전을 옮기게 하는 것은 행정 실패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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