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 전수조사’ 등 뒷북 대책만···‘은평 흉기 살인’ 막을 수 없었나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 주민을 일본도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후 피의자의 112신고 이력 등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범죄 예방 실패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 등은 도검류 전수 조사를 하고 정신질환자 도검 소지 금지법 등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보여주기식·뒷북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12신고 7회·주민 불안 표출···이상 징후 이미 있었지만
이웃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백모씨(37)에 대한 정신 이상 징후는 여러 번 감지됐다. 지난 1월 이후 백씨에 대해 경찰이 접수한 신고 건수는 총 7건이었다. 백씨는 종로구의 한 대사관 근처를 서성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을 2번 받았다. 백씨의 이웃 주민이 “이상 행동을 한다”며 2번 신고하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백씨의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평소에도 유명했다”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 등의 목격담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백씨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씨는 지난 1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김건희와 중국 스파이를 처단하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비밀 스파이 때문에 마약 검사를 거부했다”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일 “정확한 정신감정이 필요하겠지만 (백씨가) 피해망상·조현병적인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불특정다수에 대해 폭력 등을 휘두르는 이상동기 범죄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백씨의 정신병력 등을 조회할 예정이다.
빗발치는 해결책···문제 핵심 대신 ‘일본도 잡기’만
백씨에 대한 112신고가 여러 번 접수되는 등 ‘징조’가 분명했지만 범행은 막지 못했다. 백씨의 일본도 소지 허가에도 문제가 없었다. 현행법상 도검 소지 허가를 받은 후에는 갱신 의무가 없고 경찰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아 온 점이 드러났다.
경찰과 국회 등은 뒤늦게 대처에 나섰다. 경찰청은 8월 한 달 동안 소지가 허가된 도검에 대해 전수점검에 나선다고 전날 밝혔다. 도검 소지자의 범죄경력 여부·가정폭력 이력·관할 경찰서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해 소지 허가 적정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신질환자가 도검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달 31일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들이 ‘땜질식 처방’이라고 말했다. 강력 사건이 터진 후 빗발치듯 나오는 대책들이 문제 핵심을 짚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이 터지고 나고 임시방편으로 내놓는 대책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도검 소지 허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도검 전수 조사는 보여주기식 처방”이라며 “사건 후면 내놓는 단기적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8월 신림역·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며 당시도 ‘이상동기 범죄’에 대책이 쏟아졌지만 관심은 곧 사그라들었다. 이후 경찰에서 대책으로 내놓은 형사기동대 신설 등 조직개편은 이번 사건을 막지는 못했다.
더 실효적인 대책으로는 장기적인 정신질환자 위험 관리가 꼽힌다. 이 교수는 “이번 사례와 같이 112 신고가 7회 접수된 것은 명백한 전조증상”이라며 “이런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관리 인물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조 체계를 마련하는 등 대비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건의료적 관점에서 이런 위험인물을 추적하고 관찰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논의를 해봐야 할 때”라며 “개인정보 문제 등 여러 측면을 함께 고려해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8011825001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311718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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