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웅녀 이야기, 프랑스에서 한글과 불어로 읽는다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4. 8. 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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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거주하는 예술평론가 이희경씨
佛한국어교사 4명과 韓 민화·설화 엮어
韓·佛 언어로 ‘한국의 민화와 설화’ 출판
“한국예술서 배울 점 있다는 것
프랑스에 알리고 싶었다”
이희경·서순아·최유미·민경림·조경희씨가 공동 저술한 ‘한국의 설화와 민화:CONTES ET MINHWA DE CORĖE
현지인과 결혼해 프랑스에 사는 이희경 예술평론가 겸 작가(49·출판사 대표)가 지난해 10월 한국의 민화와 설화를 엮어 한국어와 불어로 소개하는 ‘한국의 설화와 민화, CONTES ET MINHWA DE CORĖE’(소시오포에틱)를 출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책에는 ‘마고할미’ ‘웅녀’ ‘검정소와 누렁소’ ‘무서운 엽전’ ‘전우치’ 등 20여개 설화와 30여개 민화가 담겨있다.

책은 실로 꿰어 만든 한국 전통 서적을 모티브로 만들었고, 한글과 불어를 나란히 배치했다. 번역이 힘든 한글은 굳이 불어로 번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용해 프랑스어를 한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씨는 “마치 아시아가 한 나라인 것처럼 편협한 사고가 보편화된 프랑스에서 아시아는 역사와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가 모여 있는 곳이며 한국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또 다른 하나의 나라임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전쟁과 식민지 착취를 통해 부를 일군 일종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시민들 사고는 여전히 편협한 면이 많다”면서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라는 것 또한 일종의 편협한 차별이고, 다른 나라를 평가해도 된다는 것 자체가 차별적 시각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에서 한국을 소재로 자존심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이렇고 저렇고 해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가 있듯 모든 나라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면서 “프랑스 시각에서 마치 너희들이 이렇다고 만든 시각에 맞춰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좋은 것들, 우리가 봐도 좋은 것들, 우리 시각에서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싶었고 우리의 정서 양식 중 프랑스 사람들도 배울 것이 있다는 열린 시각으로 편집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한국의 설화와 민화, CONTES ET MINHWA DE CORĖE’에 실린 설화.
실제 이씨는 미술책과 문학책을 구분해 제작하는 통상의 프랑스식 출판 패턴을 따르지 않고 민화와 설화를 한데 묶었다.

그는 “한국은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와 있는 생활예술이 강하고 일상에서의 상상과 미학이 삶을 부유하게 하는 총체적 예술, 민중적 예술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것이 그림과 글을 함께 소개하게 된 이유”이라고 설명했다. “민화 속에 설화가 있고 설화 속에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예술과 일상을 따로 구분해 성장해 왔다면 한국은 일상과 예술, 사람이 하나로 일구어지는 고급 정신문화의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이 홍익인간 사상처럼 민중적으로 펼쳐져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국 입장에서 프랑스 예술에 대해 배울 것이 있다면 프랑스 또한 한국 예술에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제안하고 싶었다”면서 “두 나라가 동등하게 나란히 피어있듯 평등하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게 두 언어로 책을 만든 동기”라고도 했다.

“민화와 설화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 특유의 삶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숨어 있는 것이 이번 저서의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업에는 프랑스 리옹 한글 학교 교사인 서순아·최유미·민경림·조경희씨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외국인에게 오랫동안 한글을 가르친 이들은 한글과 불어의 차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와 한·프랑스 복합 문화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얻은 언어·사회적 한계 극복 방법도 책의 구성과 의미를 더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의 설화와 민화, CONTES ET MINHWA DE CORĖE’에 실린 민화.
저서는 이씨가 만든 소시오포에틱(Sociopoetik)을 통해 출판됐다. 책만 판매하는 전용 서점과 동네에 자리한 독립서점을 통해 프랑스에 한국 전통 민화와 설화를 알리고 있다.

아마존 등 대형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배제한 건 사람과 책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과의 만남을 갖길 원해서다. 지난 10개월간 빠리, 리옹, 마르세유, 그르노블, 뚤르즈, 릴 도시의 40개 독립 서점에서 이씨의 책을 판매 중이고, 국립·공립 도서관용 책을 구입하는 드시트르에도 책을 보급하고 있다. 릴에서 열린 올해 설날 행사 땐 하루 40권이 팔리기도 했다. “책이 너무 예쁘고 고급스럽다”는 평이 많다.

이씨는 “서점 순회를 하다 보면 일본책이 한 벽에 꽉 차 있는 걸 보게 되는데 한국 정부도 창작자를 지원하고 힘을 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우리 것을 잘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개할 멋진 것들, 나눌 것들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후속작으로 한국의 예술과 문학을 함께 묶은 출판물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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