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꿴 방문진·KBS 이사회…‘논란 불씨’ 낳은 방통위

박채연 기자 2024. 8. 2. 16: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당 몫 인사만 추천·임명…“나머지는 추후 논의”
절차적 흠결…“이사회 결정 때마다 논란 부를 것”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31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있다. 정효진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당일 ‘2인 체제’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9명 중 6명을 임명하고, KBS 이사 11명 중 7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언론계와 전문가들은 관례적으로 배분된 여권 몫 이사 수만큼만 이사를 선임한 것과 기존 이사 중 임기가 연장되는 이사가 선택적으로 결정된 점 등을 비판하고 있다. 선발 과정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이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방문진과 KBS 이사 선임안을 의결했는데, 그간 ‘여권 추천 몫’이라고 여겨져 온 방문진 이사 6명, KBS 이사 7명만을 임명·추천했다. 방통위는 “나머지 이사는 추후 논의하기로 의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1일 논평에서 “관행에 따라 야당 추천 몫을 남겨둔 것이라면, 야당 추천 방통위원 없이 2인만으로 공영방송 이사회 전체를 새로 구성하는 건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 이어 “(선발하지 않은) 나머지는 야당 추천 몫이니 대통령 임명 위원 둘이서 뽑은 것처럼 야당 추천 방통위원만 심사하여 선임하게 되는가. 이사 선임 계획을 다시 의결하고 재공모를 할 것인가”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새로 임명·추천한 이사들을 발표하면서 이들의 전임자 중 일부만 임의로 연임시켰는데, 방통위가 이러한 행정 행위를 할 권한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이사회 모두 임기가 만료된 이사는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계속 직무를 이어가는 것으로 법에 규정돼 있다. 방통위가 임의로 전임자를 선정해 일부 이사는 임기에 맞게 직을 끝내고 일부는 직무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KBS 이사회의 경우 현재 여야 추천 몫 위원이 6:5인데 5명 중 조숙현 이사만 오는 31일 임기를 끝내게 됐다. 방문진은 야권 추천 몫 이사 6인 중 3인인 권태선·김기중·박선아 이사만 오는 12일 임기를 끝낸다.

현재 KBS 이사인 A씨는 “심란하고 당혹스러운 결정이다. 방통위가 추후 논의하겠다면서 KBS와 방문진 남은 이사들의 불안정성을 야기한 것”이라며 “(결정의) 뚜렷한 근거도 없을뿐더러 대통령이 임명한 두 사람이 과거 합의제 정신에 기초해 선발된 이사들을 선택적으로 교체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통위원)는 “임기가 만료된 이사 중 남아있을 이사와 나갈 이사를 방통위가 선택할 수 있다는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다”며 “과거 방통위는 새롭게 이사회를 꾸릴 땐 여야 위원간 이견이 있더라도 합의 후 전체 이사를 임명하고 추천하는 게 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봤다”고 했다.

2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현안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관 방통위 기획조정관은 “방문진의 경우 두 분(이 위원장·김 부위원장)이 9명씩 투표를 해 투표 받은 인물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했다”며 “불일치가 있을 땐 여러 차례 투표했고 7~8차례 진행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조성은 방통위 사무처장은 “6명이 될 때까지 (투표를) 한 게 아니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기가 어려우니 6명까지 나온 다음엔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고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1일 임명장을 받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선발 절차 자체에도 흠결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의 임명 후 8시간쯤 뒤 회의가 시작돼 심사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2021년 이사 선임 과정에선 진행됐던 면접 등의 절차를 생략됐다는 것이다. 회의를 갑작스럽게 소집한 것에서도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방문진 이사 6명(강중묵·권태선·김기중·김석환·박선아·윤능호)은 지난 1일 입장문에서 “방통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이사 선임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반드시 여야가 함께 참여해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며 “단 두 사람이 임명 당일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요식행위 정도로 이를 처리한 것은 언론의 자유란 헌법적 가치에 대한 유린”이라고 했다.

고 교수도 “5인 합의제 기구라는 법 정신을 고려하지 않은 채 2인 체제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회를 불완전하게 구성했다”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정당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방문진 지원자들 “이사 임명 위법” 이진숙 방통위에 취소 소송
     https://www.khan.co.kr/national/media/article/202408020849011


☞ 이진숙, 임명 당일 방문진·KBS 이사진 임명·추천···언론계 “역사의 치욕”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12197?type=journalists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