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신입 회원' 된 독일…5년 전 무산 딛고 가입

유영규 기자 2024. 8.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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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은 국제 안보 정세 변화도 독일이 유엔사 가입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러시아의 전쟁에 북한이 무기를 대줘 한반도와 유럽 안보가 연동되면서 유럽연합(EU) 주축 국가인 독일이 동북아 정세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됐고, 마침 유엔사 가입이라는 적절한 명분의 경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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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무장지대의 유엔기와 태극기

오늘(2일)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함께 있는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의 유엔사 가입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6·25 전쟁 당시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된 상태였고, 동·서독 모두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해 1945년 10월 연합군 중심으로 창설된 유엔에 불과 5개월 전 항복한 전범국 독일의 자리는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서독은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의료진을 보내 한국과 유엔군을 돕고자 했습니다.

유엔군 대표 격인 미국의 승인을 얻고 의료진을 구성하는 데 시일이 걸리면서 의료진은 휴전한 이듬해인 1954년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독일은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운영하며 환자 22만 7천250명을 치료하고 산모 6천25명의 분만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의료지원이 정전협정 체결 이후 이뤄졌다는 이유로 '6·25 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의료진 파견 64년 만인 2018년 6월 문재인 정부에서 추가 지정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가 탈퇴했다가 2013년 재가입한 후 11년 만의 새 유엔사 회원이며, '유엔사 회원국'이라는 호칭이 국제정치적 함의를 갖게 된 이후의 첫 신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엔사는 1970년대부터 정전협정 관리만 맡으면서 상당 기간 상징적 존재로 머물러 있었기에 그간 회원국 여부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2014년쯤부터 중국·러시아·북한 견제 등을 위한 전략적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유엔사를 재활성화해 독립적인 다국적 군사 기구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엔사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했습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2019년부터 논의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유엔사 확대 차원에서 독일을 참여시키려 했고 독일도 이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반대 이유는 유엔사 참여국은 한국의 요청으로 한국의 자위권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므로 신규 파견을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정전협정 체제의 대표적 기구인 유엔사의 확대를 반기지 않았으리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북한과 평화 협상을 하려면 북한이 줄기차게 해체를 요구해 온 유엔사가 부각되지 않아야 했고, 또 당시 미국 측이 독일뿐 아니라 유엔사 후방 기지가 위치한 일본까지 유엔사에 참여하기를 희망했기에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 독일을 모두 거부했습니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엔사 역할 중시' 쪽으로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유사시 자동으로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유엔사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억제 요인이 되므로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배경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 및 대표가 참여해 처음으로 열린 '한·유엔사 국방장관회의'가 유엔사와 그 역할 확대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 시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나 독일의 유엔사 가입 결정을 축하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때는 독일의 가입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고, 이번에는 필요한 절차를 다 거치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 홈페이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은 국제 안보 정세 변화도 독일이 유엔사 가입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러시아의 전쟁에 북한이 무기를 대줘 한반도와 유럽 안보가 연동되면서 유럽연합(EU) 주축 국가인 독일이 동북아 정세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됐고, 마침 유엔사 가입이라는 적절한 명분의 경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AP4,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형태로 참여함으로써 유럽 국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독일이 인도·태평양에 관여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을 계기로 유엔사가 장차 더욱 확대돼 상설 안보 협의체로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 일명 샹그릴라 회의처럼 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정례적인 다자간 국제 안보 논의의 장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기존 유엔사 회원국은 6·25전쟁 때 전투병을 보낸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등 14개국과 의료지원단을 보낸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까지 17개국입니다.

독일이 18번째로 합류했습니다.

6·25전쟁 파병·의료지원국 총 22개국 가운데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스웨덴, 인도는 빠져 있습니다.

한국은 전쟁의 당사국인 관계로 유엔사 회원국은 아닙니다.

(사진=유엔군사령부 홈페이지,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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