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일은 ‘북 승전일’일까···전쟁 영웅도 세월따라 들쭉날쭉[박성진의 국방 B컷](12)

2024. 8.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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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주미한국대사가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협정 71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71주년 체결일이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만 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이 한류를 세계에 전파하면서 이만큼의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데는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고 정전협정을 맺은 게 큰 역할을 했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정전협정의 가치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도발에 의연하게 대처해 정전협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는 강력한 응징 의지가 더 강하다. 정부가 주관하는 129개 법정기념일에도 이날은 없다. 정부의 공식 기념식이 열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보보호의 날(7월 둘째 수요일),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 푸른하늘의 날(9월 7일), 원자력의 날(12월 27일)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셈이다.

반면 북한은 이날을 한국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정전의 의미를 담은 기념일이 없는 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간접적으로나 인정하는 것으로 오도될 수 있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국 정부에 이날은 오히려 ‘감사의 날’ 성격이 짙다. 정부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겠다며 2013년부터 이날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유엔군 참전과 정전협정은 엄연히 다르다. 유엔의 파병 결의는 개전 이틀 뒤인 6월 27일 이뤄졌고, 정전협정은 그 3년여 뒤인 1953년 7월 27일 체결됐기 때문이다. 날짜상 관련이 없는데도 정전협정일에 유엔군 참전의 날을 덮어씌우면서 둘 다 의미가 반감됐다.

정부는 올해 열린 정전협정 71주년에서도 미국에 감사를 전했다.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는 한국전참전기념비재단(KWVMF) 주관으로 미국에서 열린 기념행사 기념사에서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영웅’과 ‘4대 영웅’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7월 20일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연합군사령부와 공동으로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에 크게 기여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0대 영웅에는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父子), 윌리엄 쇼 부자(父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영옥 대령을 포함해 미국인이 8명이고, 한국인이 백선엽 장군 등 4명이다.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처럼 보수세력으로부터 대우받는 인물이다. 가수 진미령씨의 부친으로도 잘 알려진 김동석 대령은 미 8군 정보 연락장교였다. 김두만 장군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했고,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도 참여했다. 박정모 대령은 서울탈환작전 당시 시가전을 전개하고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에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처럼 10대 영웅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는 미군이거나 미군과 밀접한 협조 관계에 있던 한국군이다. ‘10대 영웅’의 구체적 선발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 71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눈길을 끄는 대목은 ‘10대 영웅’ 명단에서 미국 정부가 앞서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영웅’ 중 한 명인 리지웨이 장군이 빠졌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이전에 선정했다는 한국전쟁 4대 영웅은 맥아더,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과 백선엽 육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등 4인이다.

사실 미국 정부가 선정했다는 한국전쟁 4대 영웅은 2005년 10월 이선호 예비역 해병대 대령과 주정연 창원대 교수가 공저한 <전쟁영웅 김동석, 이 사람(This man)>의 출판기념회에서 갑자기 등장했다. 저자는 6·25전쟁 때부터 북파공작 임무를 수행했던 김 대령의 평전을 소개하면서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맥아더와 리지웨이 그리고 백선엽과 김동석 네 분을 선정한 것은 1998년부터 휴전 50주년이 되는 2003년까지 한·미 양국이 5개년 계획으로 한국전쟁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국내 언론은 앞다퉈 4대 영웅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지금도 6·25전쟁 4대 영웅으로 회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 4대 영웅’을 공식 선정했다거나, 이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공식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전쟁 중 해임된 전쟁 영웅

6·25전쟁 4대 영웅의 원조는 전두환 정부 때인 1983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휴전 30주년을 맞아 발표한 김홍일 중장, 김종오 대장, 맥아더 원수, 워커 대장이다. 당시 선정 작업을 주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재향군인회를 통한 여론조사에서도 당시 생존했던 예비역 장군 등 한국전 참전 당사자들이 4대 영웅 선정에 동의했다”며 “백선엽 장군과 김동석 대령은 10인의 후보 명단에도 없었다”고 전했다.

김홍일 장군은 개전 초기 국군 패잔병을 모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북한군 공세를 저지했다. 또 중동부 전선에서 지연작전을 끈질기게 전개해 유엔군의 낙동강 반격 교두보 구축을 가능케 했다. 미군은 미 고문단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던 김 장군의 해임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요구해 그는 전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대한민국 1호 장군이자 태극무공훈장과 건국공로훈장 수훈자인 그는 1951년 전역한 후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자유중국 대사로 떠났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는 그를 기념하는 ‘김홍일 홀’(대강당)이 있다. 세계적으로 전쟁 영웅은 전쟁이 끝나면 나라를 이끄는 국가급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미군은 일찌감치 그 후보를 제거한 셈이다. 대신 미군은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는 젊은 만주군 지휘관을 선호하고 지원했다.

일본군 출신인 김종오 장군(당시 대령)은 춘천, 홍천 전투에서 6사단장으로서 북한군 선봉 부대를 사흘간 저지했다. 1952년 한국전 사상 최고의 전투로 불리는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9사단을 이끌고 중공군을 격파, 승리를 이끌었다. 두 장군이 지킨 사흘 덕분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한국전 개입 선언과 유엔군 참전도 가능했다.

정부는 두 사람의 일대기를 펴냈고, 맥아더와 워커 장군의 다큐멘터리도 방송됐다. 김홍일 장군은 광복군 참모장뿐만 아니라 중국 국부군 중장(별 2개)을 역임했고, 한국군 전역 당시 계급이 중장(별 3개)이어서 ‘5성 장군’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KBS는 1985년 건군 37주년 특집으로 <오성 장군 김홍일>이라는 3부작 드라마까지 제작했다.

맥아더 원수는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고, 워커 대장은 절체절명의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사수했다. 정부는 이미 1963년 서울 광장동에 조성한 유엔군 휴양시설의 이름을 ‘워커힐’로 명명해 그를 기렸다.

전두환 정부가 1983년 선정한 전쟁 영웅들은 30년 후 정전협정 체결일에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에 의해 지워졌다.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도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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