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3만 바퀴… 케이티, 그렇게 ‘女수영 전설’이 됐다
“4년 뒤 LA서도 계속할 것”
“2등 선수가 카메라 안에 잡히지를 않네. 도대체 얼마나 빨리 들어온 거야?”
31일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수영장에서 열린 여자 자유형 1500m 경기를 지켜보던 미국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의 케이티 러데키(27)는 이날 15분30초02의 기록으로 본인이 갖고 있던 올림픽 신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는데, 2위 주자와의 격차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유명 래퍼 ‘스눕 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선그라스를 들어 올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러데키는 2일 여자 계영 8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 통산 13개의 메달(금 8·은 4·동 1)을 수확해 올림픽 수영 종목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 바이든 “케이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러데키는 만 15세 나이로 참가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자유형 800m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어느새 네 번의 올림픽을 치렀다. 이 기간 미국 수영의 간판은 금메달 23개 포함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수영의 전설’ 마이클 펠프스였다. 러데키가 올림픽 두 달 전 펴낸 회고록 ‘저스트 애드 워터’를 보면 2016년 AP가 펠프스의 은메달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처리하며 그녀의 자유형 800m 세계신기록 수립은 소제목(단신)으로 다룬 적도 있었다. 하지만 러데키는 묵묵히 본인이 할일을 했고 소리 없이 강하게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올해 5월엔 수영 선수 최초로 최고 영예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훈자가 됐다. 27세의 나이에 네 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러데키를 놓고 “나이가 너무 많다”는 시선이 있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이봐 케이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러데키는 “이 농담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후술했다)
러데키가 특히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건 데뷔 후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고 늘 겸손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데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지만 사람들은 인간 러데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내성적이고 예의 바르며 소셜미디어에서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는 점도 한몫한다”고 했다. 심지어 애인조차 없다. 물론 본인은 “‘훈련 중이라 데이트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1500m 경기에서 압도적 레이스를 펼친 뒤 공을 다른 사람에 돌린 수상 소감도 압권이었다. “나는 그저 우리 나라를 대표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먼저 길을 닦은 여자 선배들에게 감사하다. 경기를 하며 나와 함께 훈련한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강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당신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여러분은 내 삶이 너무 쉽게 흘러가도록 만들어줬다.”
◇ 1년에 13만 바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 설정하면 동기 부여돼”
러데키가 전설이 된 특별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결코 왕도는 없었다. “일주일에 6만 5000야드, 1년에 13만 5000바퀴 정도 수영한다”고 했다. 워싱턴DC 태생으로 메릴랜드주에서 자란 그녀는 6월 한 지역지와의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통해 헌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에 대해 배웠다”며 “그 수준에 도달하는 데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목표 설정이었다”며 “처음에는 두렵고 거의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목표가 오히려 열심히 일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했다. 다만 물이 두렵지 않은 유전자는 타고났던 것 같다. 회고록에서 “물을 무서워하거나 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걱정했던 기억이 없다” “물에 뛰어들었던 행복한 기억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길이 50m인 수영장을 15번 왕복해야 하는 1500m 장거리 수영은 인간의 원초적 한계를 극한으로 시험하는 고통스러운 종목이다. 러데키는 “랩(lap) 수를 세고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랩에 집중하는데 꽤 능숙한 편”이라고 했다.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면 몇 바퀴가 남았는지 생각하며 레이스를 세분화하고, 막판에는 팔이나 다리 등 작은 부위 하나에만 집중하며 ‘젖 먹던 힘’까지 짜는 게 러데키의 수영 방식이다. ‘긍정의 힘’도 믿는 편이다. “옆구리에 쥐가 나거나 팔에 피로가 느껴질 때 누군가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클래식 록을 즐겨듣는 러데키는 수영하면서 브루스 스프링스턴, U2, 본 조비의 멜로디를 머릿속에 떠올린다고 한다.
◇ 러데키는 아직도 배고프다… 4년 뒤 도전 시사
러데키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2028년 모국에서 열리는 로스앤젤레스(LA)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녀가 수영을 계속할 계획이라 메달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러데키는 “마지막 레이스가 언제가 될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번 여름이 지나면 한 해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가장 많은 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수영 선수는 금메달 23개를 포함해 통산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인간 물고기’ 펠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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